컨텐츠 바로가기

04.27 (토)

[전영기의 시시각각] 사조직이냐 공조직이냐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언론의 자유 영역에 개입한 판사들

행태는 사조직 대접은 공조직 요구

중앙일보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국제인권법연구회(회장 이인석 판사)는 대법원의 ‘전문분야연구회의 구성및 지원에 대한 예규’에 따라 설립된 판사들의 15개 단체 중의 하나다. “대법원의 예산지원과 활동평가를 받는 공적인 단체”라는 게 이 조직의 간사인 최창석 판사의 설명이다.

인권법연구회의 소속 판사들은 ‘공적인 단체’라고 느낄지 모르지만 행태면에서는 ‘사조직’의 패턴을 보이곤 했다. 왜냐하면 전체 집단인 법원의 인사나 정책, 의사결정 등에서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난 주 문재인 정권의 일방통행적 정치를 비판하는 “못난 정치는 형벌로 겁주고 최악의 정치는 국민과 다툰다”는 의견 기사를 쓴 바 있다(14일자 전영기의 퍼스펙티브). 그런데 연구회측에서 이 기사 중 ‘법원내 사조직 국제인권법연구회’라는 표현을 집어서 사실 왜곡이며 명예를 훼손했으니 ‘공적인 단체’로 정정보도 하라고 요구해 왔다.

필자는 이를 거부하였다. 인권법연구회가 대법원의 예산으로 운영된다 해도 법원조직법에 따라 국가 업무를 수행하는 공식 조직이 아니고 보조금을 받는 판사 연구모임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법원의 조직도와 홈페이지에서도 이 연구회의 이름은 없다. 실제 그들의 활동 양상이 종종 구성원의 인사상 이익이나 특정 정치노선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인 점도 필자의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 단순히 사조직이라는 표현만으로 인권법연구회의 명예가 훼손됐는지도 의문이다.

연구회의 500명에 이르는 구성원들은 사익추구나 권력남용,부패·탈법 문제가 없는지 끊임없이 감시받아야 할 막대한 권한을 지닌 공인들이다. 이 조직은 김명수 대법원장 외에도 대법관 1명,헌법재판관 1명,청와대 비서관 1명을 배출했고, 대법관및 헌법재판관 후보추천위원회에 자주 참여했다. 연구회 소속 판사들이 법원행정처를 비롯한 법원 요직에 속속 진출한 것은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최근엔 인권법연구회 멤버들이 주도하는 전국법관대표회의라는 대법원장 자문단체가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이 단체는 집행부 13명 가운데 부의장을 포함한 5명이 인권법연구회 소속이라고 보도됐다. 대표 법관 119명 중 인권법연구회 출신들이 상당하다고 하는데 구체적인 숫자는 확인이 안된다.

이런 법관대표회의가 지난해 11월 사법농단이라는 정치성 짙은 명분으로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헌법 65조)’한 경우에만 탄핵할 수 있는 판사 동료들을 위법이 아직 법정에서 최종 증명되지 않았는데도 탄핵해야 한다는 반헌법적 결의를 하였다. 자유민주적 법치국가를 표방하는 나라에서 듣도 보지 못한 충격적인 3권분립 파괴행위가 벌어졌다.

판사는 국민의 생명과 자유를 한 순간에 빼앗을 수 있는 절대 형벌권을 갖는 헌법기관이다. 그런 판사 수백여명이 모여 헌법이 본연의 업무로 정한 ‘법 과 양심에 따른 판결’ 업무 이외의 일에 열심을 내는 듯 하니 걱정이 크다. 오직 법과 양심이 아니라 여론과 정파적 사고, 집단 이념에 따라 판결할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생긴다.

세상의 우려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이 공조직으로 표현되어야 한다는 연구회측의 요구는 언론 자유의 영역에 속하는 가치평가와 판단에 일부 권력 집단이 개입하는 헌법정신 위반이라고 생각된다. 행동은 사조직처럼 하더라도 대접은 공조직처럼 받겠다는 것일까. 필자는 연구회측에 국가로부터 지원받는 예산 내역과 회원의 명단을 제시해 달라고 요청하였으나 아직까지 응답이 없다. 공조직이라면서 내부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정상적인 언론이라면 이런 행태를 보이는 단체를 공조직이라고 쓸 수 없을 것이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