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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기간제 교사 뽑는데…여전히 "아부지 뭐하시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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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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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 기간제 교사 자리를 알아보고 있는 김 모씨(38)는 최근 황당한 경험을 했다. 채용 면접을 보러 간 지방 소재 한 중학교에서 시험 당일 아무런 사전 예고도 없이 평가 방식을 변경한 것이다. 이 학교는 당초 지원자들에게 10분간 진행되는 수업실연을 평가하겠다고 예고했지만 당일에 5분간 수업을 구상하고 2분간 설명하는 방식으로 평가 방법을 바꿨다. 공들여 준비한 수업실연이 허사로 돌아가자 김씨는 학교 측에 항의했지만 "기간제 교사 채용은 학교장 재량이고, 강제성 있는 관련 규정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냐"는 답변만 돌아올 뿐이었다.

김씨는 "아무리 기간제 교사 선발이 학교 재량이라지만 면접 당일 시험 형태를 바꾸는 게 말이 되느냐"며 "'을' 신세라 강하게 항의할 수도 없어 참담했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개학을 앞둔 전국 중·고등학교에서 기간제 교사 채용이 한창인 가운데 학교 측이 재량권을 앞세워 지원자들을 애먹이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이력서에 지나친 개인정보를 요구하거나 김씨의 경우처럼 예고된 채용 방식을 갑자기 변경하는 사례도 나온다. 학교 상황에 따라 자율적 선발권을 보장해야 하지만 채용의 공정성을 확보할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통상 기간제 교사를 채용하는 학교는 이력서(지원서)와 자기소개서, 교원자격증 사본, 개인정보 제공 동의서 등을 기본 제출 서류로 받는다. 서류를 간소화하고 최소한의 개인정보만을 수집해 학교와 기간제 교사 모두의 불편을 덜자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여전히 상당수 학교에서 주민등록등·초본, 가족관계증명서, 가족의 직업 및 근무지 등 지나친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전국 각 시도교육청 '인력채용공고' 게시판에 올라온 학교별 채용공고만 보더라도 불필요한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학교는 수두룩하다.

지원자의 외모, 출신지, 집안 배경을 요구하는 학교도 있다. 경기도 안양시 소재 한 고등학교에서는 기간제 교사 이력서에 키와 몸무게를 기재하도록 했고 충남 계룡시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는 출신지를 적도록 요구하기도 했다. 이는 교사로서 능력과는 무관한 사항인 데다 능력 중심의 공정한 채용을 강조하는 정부의 '블라인드 채용' 기조와도 배치되는 사례로 해석된다.

자기소개서를 자필로 작성하도록 하는 학교도 있다. 실제 대전 소재 A고등학교에서는 지난달 말부터 이달 초까지 진행된 기간제 교사 채용에서 자필로 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요구했다. 대전 소재 B여자고등학교도 마찬가지다. 특히 이 학교는 자필 이력서뿐 아니라 지원자들에게 고등학생들의 취업지도 경력을 적어내도록 했다.

서울 노원구에서 기간제 교사로 일하고 있는 정 모씨(30)는 "기간제 교사들 사이에서는 이미 익숙한 풍경"이라며 "거의 모든 행정 업무가 전자적으로 처리되는 시대에 글씨를 보고 교사를 뽑겠다는 건지 의도가 궁금하다"고 꼬집었다.

일부 학교에서는 지원 서류의 온라인 접수나 우편 접수를 불허하기도 한다. 경기도 안양시 C고등학교에서는 기간제 교사들이 서류를 우편으로 접수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 경우 최대 A4용지 30~40장에 달하는 지원 서류를 들고 직접 학교를 방문해 제출해야 한다. 방학 동안 수많은 학교에 지원서를 제출해야 하는 기간제 교사들 입장에서는 이 같은 자필 이력서, 인편 접수 관행이 부담을 눈덩이처럼 가중시킨다.

이 같은 관행이 불합리하다고 판단한 다수의 기간제 교사들이 합리적인 채용지침을 마련해달라며 교육당국에 수차례 민원을 제기했지만 교육당국은 일선 학교의 자치권을 이유로 미온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실천교육교사모임 관계자는 "채용 과정에서 과도한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고 자필 이력서, 인편 접수 등 시대와 맞지 않는 관행이 팽배하지만 관련 규정이 없어 상황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며 "기간제 교사 채용을 학교장 재량에만 맡겨놓기보다 모든 학교에 적용되는 통일된 규정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일부 학교에서 기간제 교사 채용과 관련해 부적절한 관행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도 "교육 현장의 자치권 측면에서 중앙정부가 어떤 규정을 만들 때에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기간제 교사가 계약직 신분인 것을 생각하면 사립학교의 경우 재단 인사권도 존중해야 하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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