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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김한들의 그림 아로새기기] ② 그린란드 빙산이 미술관에 온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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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자초한 ‘환경의 역습’ 사라지는 미래에 경종 울리다/그린란드 빙산, 런던에 옮긴/엘리아손 설치 미술 인상적/관람객들 직접 만지고 느껴/

인간의 열에 녹아 내리게 해/1998년 ‘초록강 프로젝트’ 서/무독성 녹색 안료 강에 부어/치명적 녹조 퍼지는 것 연출

# 북극곰은 해빙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미세먼지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최근 가장 흥미롭게 본 다큐멘터리는 ‘곰’이었다. 제작진이 2년에 걸쳐 곰의 흔적을 좇은 기록이었다. 느리고 순하며 듬직한 이미지로 알고 있는 곰은 자연 속에서 빠르게 움직이고 사나운 본성을 가지고 있어 놀라움을 자아냈다. 지리산을 비롯해 북극, 시베리아, 알프스, 중국 쓰촨 등 세계 각지에 사는 곰들이 차례로 등장했는데, 그중 가장 인상 깊게 본 곰은 바로 북극곰이었다.

다큐멘터리에는 알래스카 최북단 작은 마을 캑토비크(Kaktovik)에서 사는 북극곰 가족이 등장했다. 몸길이 2∼3m에 몸무게 최대 800㎏을 자랑하는 북극곰은 남다른 풍채를 보인다. 하지만 줄어든 서식지에서 새끼를 데리고 다니며 어렵사리 먹이를 구하는 어미 북극곰의 모습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실제로 북극곰을 검색하면 먹이를 구하지 못해 인간의 쓰레기를 뒤지는 모습을 포착한 사진을 쉽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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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계 덴마크 설치미술가인 올라푸르 엘리아손이 영국 런던의 테이트모던 앞에 선보인 그린란드 빙하의 모습. 테이트모던은 발전소 건물이 미술관으로 변신해 도시 재생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는 점에서 의미하는 바가 더 크다.올라푸르 엘리아손 스튜디오 제공


지구온난화와 함께 해빙이 급속하게 진행되며 북극곰의 숨통은 조여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평균 두께 4m에 달해 최후의 보루로 여겨졌던 ‘그린란드 빙하’마저 무너져 내렸다. 과학자들은 이대로라면 2030년에는 북극의 여름에 얼음이 없고, 2050년에는 북극곰의 3분의 1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참 큰일이라고 중얼거리며 집 근처로 산책을 나섰다. 새벽 시간도 아닌데 희뿌연 안개가 몸을 감싼다고 생각한 순간 휴대전화에서 경보 알람이 울렸다. 안개가 아니라 초미세먼지가 습격했으니 외출을 삼가라는 안내였다. 마침 눈도 목 따가워 왔다. 피부도 간질거리며 염증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북극곰이 해빙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는 미세먼지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우리가 공존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나 남았을까.’

지난해 50주년을 맞은 노벨경제학상은 기후변화와 경제적 관계를 분석한 미국 예일대 윌리엄 노드하우스 교수에게 돌아갔다. 인류 복지 공헌자 선정에 가장 영향력 있게 여겨지는 상이 환경을 주제로 연구한 사람에게 돌아간 것이다. 환경 보전을 위해 기뻐할 성과인 동시에 우리는 사태의 중요성과 심각성을 알 수 있다.

북극의 얼음이 녹는 것과 한반도의 미세먼지는 크게 상관없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을 야기하는 중심에는 탄소가 있다. 탄소는 화석연료 사용 등을 통해 대규모 공장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주체다. 믿고 싶지 않지만 우리나라는 탄소 배출국 순위에서 10위 안에 드는 국가다. 북극곰, 나, 그리고 당신이 아프지 않기 위해서는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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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관람객이 영국 런던의 테이트모던 앞에 설치된 그린란드 빙하를 손으로 만지고 있는 모습.올라푸르 엘리아손 스튜디오 제공


# 그린란드의 빙산이 런던 테이트모던 앞에서 녹고 있는 이유

이번 겨울 가장 인상 깊게 본 다큐멘터리가 ‘곰’이었다면 미술 프로젝트는 올라푸르 엘리아손(Olafur Eliasson)의 ‘얼음 보기(Ice Watch)’(2014∼ )다. 작가가 지질학자와 함께 그린란드 빙산 24개를 런던의 테이트모던 앞으로 옮겨 선보인 것이다. 장소의 정확한 명칭은 뱅크사이드(Bankside)이며, 관람 기간은 2018년 12월 11일부터 빙산이 모두 녹아 사라질 때까지다.

빙산들이 1.5∼6t에 이르는 몸에서 푸른빛을 내뿜으며 뱅크사이드에 늘어져 있는 장면은 초현실적이다. 개인적으로는 유성이 떨어진 모습 같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공상과학영화의 컴퓨터그래픽(CG)을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빙산을 바다에서 낚시하듯 끌어올려 트럭으로 운송하는 과정을 담은 영상을 유튜브에서 보고 있으면 더 초현실적이다.

관람자는 빙산을 바라보고, 냄새 맡고, 만져 보고, 맛보고, 빙산 주변을 걸어볼 수도 있다. 작가는 빙산 위에 손을 얹고 서 있어 보기를 추천한다. 인간의 열에 의해 빙산이 녹아 사라지는 것을 가장 직접 체험할 방법이다. 나의 작은 행동 하나에도 지구는 반응하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의 욕심에 의해 지구가 많은 것들을 잃고 있음을 생각해 보게 만드는 은유적 체험방법이기도 하다.

엘리아손은 예술이 사회적 책임을 어떻게 실천하며 세계와 상호작용하는지를 보여주는 작가다. 나이지리아 자원장관을 만나기도 하며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예술가’에게 주는 상을 받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2016년과 2017년에 걸쳐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열린 개인전을 통해 큰 호응을 이끈 바 있다.

덴마크와 아이슬란드의 광활한 자연을 보며 성장했기 때문일까. 그는 자연의 외형과 내면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있으며 작업 주제로 자주 다룬다. 때로는 철저한 과학적 연구를 통해 전시장에 인공자연을 만들기도 한다. 인공자연 안에서의 새롭고 신비로운 경험은 관람자에게 환경 문제와 더불어 많은 것을 인지시킨다.

작가의 이름을 처음 부각했던 작업도 환경 문제와 관련한 ‘초록 강(Green river)’(1998) 프로젝트였다. 그는 강에 무독성 녹색 안료를 부어 강 전체에 치명적 독이 퍼져 있는 듯한 모습을 연출했다. 옥상 위 우레탄 페인트와 같은 물 위를 새들이 걸어가고 있는 당시 사진은 지금 봐도 충격적이다. 녹조에 대한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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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푸르 엘리아손이 강에 무독성 녹색안료를 풀어 연출한 초록 강 프로젝트. 강 전체에 독이 퍼져 있는 것처럼 보여 녹조가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올라푸르 엘리아손 스튜디오 제공


사실 엘리아손이 이번에 그린란드의 빙산을 대도시에서 선보인 것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2014년 코펜하겐의 시청 앞, 그리고 2015년 파리의 판테온광장에서 같은 프로젝트를 펼친 바 있다.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가 일어나는 동안 진행한 것으로 긍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받는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 자발적으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5년마다 이행 현황을 점검하는 협약이 이루어진 회의였다.

세 번째로 빙산을 대도시에 가지고 온 것이지만 그 임팩트는 앞선 두 번보다 크다. 환경 문제가 더 심각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자연을 사용한 것에 방법론적 비판을 던지는 사람도 있지만, 묵직한 메시지를 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요 몇 년 사이에 지구는 많이 변했다. 마스크 없이 외출을 꺼리게 된 나의 생활이 변하였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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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작가인 왕옌 프리스턴이 숲 프로젝트 일환으로 촬영한 2011년 중국 충칭 중앙공원의 모습. 나무들이 먼지를 비롯한 유해물질 등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비닐봉지를 쓰고 있다. 왕옌 프리스턴 제공


# 아기나무를 미세먼지로부터 보호하는 방법

엘리아손처럼 환경 문제와 관련한 미술계 움직임은 꾸준히 일어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 네바다미술관은 2008년부터 미술+환경센터를 운영 중이다. 3년에 한 번씩 예술가, 학자, 교육자 등이 참여하는 학술회의를 열기도 한다. 사람, 자연, 건축, 그리고 가상 환경 사이의 창의적인 상호작용을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그곳의 목표다.

최근 미술관은 작가 조너선 키츠(Jonathon Keats)와 함께 나무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산 나무로 알려진 브리스틀콘 소나무(Bristlecone pine)의 성장 일지를 달력으로 만드는 것이다. 환경 변화가 나무 성장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그 관계를 나이테를 통해 살펴본다고 한다. 5000년을 넘게 산 것으로 알려진 나무가 앞으로 어떻게 커나가는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앞선 긴 시간과 앞으로 마주할 시간의 차이가 너무 크지 않기를 바란다.

키츠의 작업을 보고 있으면 왕옌 프리스턴(Yan Wang Preston)의 숲 프로젝트가 떠오른다. 중국 충칭에서 자연친화적 도시를 만들기 위해 벌였던 나무 산업을 사진으로 기록한 것이다. 분명 좋은 의도였다는 것을 알고 관람하는데도 나무들이 어딘가 불편해 보인다. 불편한 자세를 계속 취하고 있으니 아파 보이며 때론 우울해 보이기도 한다.

숲 프로젝트의 사진 중 특히 내가 잊지 못하는 것은 중앙공원에서 촬영한 나무들이다. 어린 나무들이 먼지 등의 유해물질과 차가운 기온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비닐봉지를 쓰고 있다. 보는 나의 가슴도 답답해지며 이게 가장 나은 방법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결국 이 나무들은 2, 3년이 지난 뒤에도 충칭의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죽었다고 한다.

여린 아기나무들이 브리스틀콘 소나무처럼 5000년의 시간을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기나무가 나의 어린 조카와 닮은 구석이 많아 생각이 깊어진다. 생각하다 보니 탄소 앞에서 나무도 조카도 나도 북극곰도 모두 같은 처지인 것 같다.

엘리아손이 뱅크사이드에 빙산을 펼쳐 놓은 장면을 다시 한번 꺼낸다. 아름답고, 신비롭고, 심지어 숭고하게 느껴지는 것이 녹아 사라지는 것은 슬픈 일이다. 자연으로부터 태어난 인간이 자연을 해치는 일을 반복하며 제 살 곳을 척박하게 만드는 현실을 되짚어본다.

김한들 큐레이터, 국민대학교 미술관·박물관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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