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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4 (화)

[강천석 칼럼] 대통령, 국가 興亡의 이치로 나라 돌아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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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弱해지면 그 백성에게 역사의 惡役 돌아가

이승만 빼고 박정희 빼는 式의 ‘마이너스 歷史觀’ 버려야

조선일보

강천석 논설고문


1948년 12월 23일 도쿄 국제 군사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A급 전범(戰犯) 7명의 형(刑)이 집행됐다. 육군 대장과 외교관 출신 총리 2명, 육군 대장 4명, 육군 중장 1명이었다. 전시(戰時) 일본 정부와 군(軍)을 이끌던 수뇌부였다. 미국은 일본 통치 과정에서 발생할 수도 있는 저항과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전시 일본 ‘수뇌부 위의 수뇌’였던 천황(天皇)을 전범 소추 대상에서 배제하고 계속 재위(在位)를 보장했다.

거의 같은 시기 전쟁 중 일본이 점령했던 각 지역에서 전범 재판이 진행됐다. 재판 결과 조선인 BC급 전범 23명이 총살형 또는 교수형을 받았다. 전원이 포로수용소 감시원이었다. 포로 구타와 학대 혐의였다. 일본 군대에서 포로수용소 감시원 처우는 이등병보다 못했다. 군마(軍馬)나 군견(軍犬)만도 못한 존재로 천시(賤視)받았다.

조선인 포로 감시원 3016명은 타이·자바·말레이반도 지역에 배치됐고 이들 가운데 129명이 전범으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았다. 기소율이 3.4%였다. 일본 역사가들은 군국주의 시대의 가장 악랄한 수족(手足)으로 헌병(憲兵)을 꼽는다. 헌병의 전범 기소율이 4.3%였다. 조선인 전범들은 한국이 독립하고 일본이 미국의 점령에서 벗어난 이후에도 일본 교도소에 남았다. 일본 최고재판소가 '재판 당시 일본 국적'이란 이유로 석방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석방 이후에는 일본 정부의 구군속(舊軍屬)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제는 일본 국적을 상실했다'는 걸 이유로 들었다. 고국으로 돌아가지도 못했다. 일본에 붙어먹은 부역자(附逆者)라는 딱지가 붙었기 때문이다(우쓰미 아이코(內海愛子)·조선인 BC급 전범의 기록).

올 3·1절은 의미가 각별하다. 3·1 독립운동 100주년이자 상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겹쳐서다. 지나간 100년을 돌아보고 미래로 나아갈 방향을 정할 계기다. 걱정거리는 정부다. 작년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70주년이었다. 정부는 제대로 된 기념의 자리 한번 마련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현 정권 주도 세력들은 이승만 시대 12년은 '친일 독재'로 역사에서 지웠다. 박정희 시대 17년은 '군사독재'로 밀어냈다. 전두환·노태우 시대 12년은 '대통령이 감옥에 간 시대', 이명박·박근혜 시대 9년은 '대통령이 감옥에 있는 시대'로 부인하고 보니 70년 역사에서 남는 게 없다. 그렇다고 김대중·노무현 시대 10년을 대한민국 역사의 전부라고 내세우기도 멋쩍었을 것이다. 작년 대한민국 총수출액은 중국·미국·독일·일본 다음이었다. 세계 5위다. 프랑스·영국·캐나다·러시아가 한국 뒤에 있다. 그런 나라의 역사가 10년밖에 안 된다면 세계가 웃을 일이다.

우리의 100년은 고난(苦難)의 역사다. 식민지·해방·폭동·전쟁·혁명·쿠데타의 바퀴가 쉼 없이 돌아갔다. 함석헌의 말대로 '십자가를 진 역사'다. 그 바퀴에 깔려 죽지 않고 살아서 꽃을 피운 게 대한민국의 오늘이다. 역사의 숨은 뜻을 바로 새겨야 한다. 조선인 포로수용소 감시원들의 운명은 나라가 쇠(衰)하면 그 백성이 침략의 피해자에서 가해자(加害者)로 바뀌어 법정에 서는 비극을 보여준다. 히틀러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강제 합병할 당시 두 나라 인구 비율은 10대1이었다. 그러나 전쟁 중 전 유럽에 널린 독일 수용소 감시원의 절반이 오스트리아 사람으로 채워졌다. 역사의 악역(惡役)은 힘없는 나라 백성에게 돌아간다(토니 주트·포스트워(Post war)).

3·1 절에 침략자 규탄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지도자는 대중의 함성(喊聲) 속에서 다른 소리를 듣는 귀를 가져야 한다. 당파(黨派)가 아니라 국가 흥망(興亡)의 이치로 나라 안을 살펴야 한다. 지도자가 국민의 편을 가르는 게 쇠망(衰亡)의 출발이다. 핵무기를 가진 북한을 불신(不信)하는 것과 그런 북한을 신뢰하는 것 사이의 거리는 멀다. 불신에서 신뢰로 건너가려면 '의심의 지팡이'로 두드려 보는 수밖에 없다. 대통령은 지팡이를 든 국민은 '남북 간 적대(敵對)를 원하는 세력'이라고 몰아세웠다.

돈이 일자리의 전부가 아니다. 젊은이에게 직업은 세상을 살아가는 자신감과 독립성의 근본이다. 일자리를 달라는 그들 손에 일자리 대신 현금을 쥐여주는 정부는 무능한 정부가 아니라 죄(罪)짓는 정부다. 젊은이가 땀 흘릴 곳을 찾지 못하는 나라는 미래가 없다.

감옥을 비워야 나라가 가벼워진다. 감옥이 가득찬 나라치고 미래로 나가는 나라는 없다. 3·1절에 대통령에게 이런 실천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강천석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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