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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45년 전부터 평화협정 주장한 北···종전선언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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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의 Mr. 밀리터리]

200년간 협상으로 내전 해결 20%

한반도, 체제갈등·북핵 복잡구조

종전선언에 대한 상반된 견해

평화의 킹핀 vs 위험한 비탈길

핵 위협 현실화에 군 대비책 미흡

북, 신뢰 지키고 완전 비핵화해야

북한, 평화 원하면 유엔사 해체와 미군 철수 요구 말라





종전선언, 독일까 약일까

종전선언이 독일까 약일까. 이달 말 베트남 하노이의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다뤄질 북한 비핵화 의제는 깜깜이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서울을 다녀갔지만, 청와대는 입을 봉하고 있다. 그러나 두 가지는 확실한 것 같다. 완전한 북한 비핵화 합의는 어렵다는 점, 종전선언과 관련된 모종의 조치가 나올 것이란 예상이다. 비건 대표를 비롯한 미 정부·군 인사들의 발언으로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두 가지 모두 우리에게 부담이다. 반쪽 비핵화는 핵무장한 북한을 사실상 인정하는 것이다. 종전선언도 위험을 안고 있다.

그동안 미국이 반대해오던 종전선언은 가시화될 전망이다. 비건 대표가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전쟁은 끝났다’고 했다”며 종전선언을 제기한(1월 31일) 점이나,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의 “평화협정 체결 때까지 주한미군 주둔”(상원 군사위, 2월 13일) 등에서 종전선언이 전면에 부상했다. 지난해 11월 에이브럼스 사령관 취임 때 “한반도 안보 상황이 변해도 유엔사 해체나 주한미군 철수는 없을 것”이라는 말과는 뉘앙스가 사뭇 다르다. 종전선언-평화협정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 변하고 있다. 국민대 박휘락 교수(정치대학원)는 “트럼프-김정은 2차 정상회담에서 종전을 선언하면 그만”이라고 했다. 북·미는 1차 정상회담 때도 종전선언을 시도한 적 있다. 그래서 이제 평화협정의 입구인 종전선언이 현실로 다가왔다.

중앙일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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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종전선언이 한국에 함정이 될 수도 있고, 기회로 작용할 수도 있다. 냉전 이후 동유럽·중동·아프리카 등 40여개 국에서 300개의 평화협정을 체결했고, 이 가운데 내전의 50%가 평화협정을 통해 해결됐다.(김덕주 국립외교원 교수) 그러나 과거 200년 동안을 보면 내전의 20%만 협상으로 해결됐다. 여전히 냉전구조 속에 있는 남북은 자유민주와 공산독재의 체제 갈등과 핵무기까지 걸려있어 훨씬 복잡하다. 그래서 한반도는 그 어느 경우보다 까다롭고 어려운 여건이다. 평화 프로세스가 실패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얘기다.

우선 종전선언을 기회로 보면 북한을 비핵화 입구로 유인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 말처럼 종전선언은 정치적 의미이고, 남북 신뢰 구축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 또한 종전선언은 평화협정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과거 북아일랜드의 평화구축 과정에서도 ‘예비적인 기초협정-실질협정-이행협정’의 3단계 과정을 거쳤다.(황수환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 교수) 종전선언은 기초협정에 해당한다. 갈등 해결 의지와 의도를 탐색하고 서로 신뢰를 형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김연철 통일연구원장은 “종전선언은 평화로 가는 킹핀(kingpin)”이라고 했다. 종전선언이 북한 비핵화와 체제 안전보장을 교환하는 핵심 연결고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함정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한국전쟁의 종식을 뜻하는 종전을 선언하면 한·미연합사의 유지 명분이 떨어진다. 연합사는 북한 남침에 대비한 작전조직이다. 따라서 북한은 종전선언 뒤에 ‘전쟁이 끝났는데 연합사가 무슨 필요가 있느냐’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그러면 한·미 연합훈련은 당연히 하기 어렵다. 훈련하지 않는 주한미군은 전투부대로서 존재 가치가 없어진다. 그 결과는 연합전투력 약화다. 유엔사도 마찬가지다. 유엔사는 한국전쟁 때 남침한 북한군을 퇴치하기 위해 구성한 부대다. 또한 종전선언으로 한국 내에서도 주한미군 철수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 웨인 에어 유엔사 부사령관은 지난해 10월 워싱턴의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에서 “종전선언이 합의되면 이성보다 감정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유엔사는 물론 주한미군 철수까지 주장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종전선언을 ‘위험한 비탈길(slippery slope·발을 들이면 돌아오기 어려운 길)’에 비유했다.

따라서 북한 입장에선 굳이 평화협정까지 가지 않더라도 종전선언만으로도 연합사와 유엔사를 해체할 수 있는 명분이 선다. 한·미 연합방위시스템이 와해한다는 뜻이다. 에이브람스 사령관의 ‘파이트 투나잇(fight tonight·오늘 밤에도 싸울 준비가 돼 있다)’ 구호가 무색해진다. 종전선언이 유엔사 해체와 무관하다는 정부 입장과도 배치된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종전선언은 유엔사 지위나 주한미군 철수 등에 전혀 영향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그렇지만 북한은 1974년부터 평화협정 체결과 유엔사 해체 및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해왔다. 정전협정을 무실화시켜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면서 유엔사를 해체하기 위한 북한의 숨은 모략도 있었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이 큰소리치던 완전한 북한 비핵화는 요즘 온데간데없다. 한·미 정부 관계자나 전문가조차도 완전한 비핵화에 희망을 걸지 않는다. 브루킹스연구소 마이클 오핼런 선임연구위원은 이번 정상회담을 두고 “대북제재 부분 해제의 대가로 북한 장거리미사일(ICBM)과 더 많은 핵폭탄 생산능력 제거에 협상해야 한다”며 “현존하는 북핵의 즉각 제거는 걱정할 필요 없다”고 지난 11일 주장했다.(브루킹스연구소 블로그) 그가 워싱턴 외교가에 영향력 있는 전문가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정상회담에서 북한 비핵화의 최대 기대치는 미국의 직접 위협인 북한 ICBM과 미래 핵능력 폐기다.

또한 오핼런의 기대대로면 정상회담에서 한국을 위협하는 북한 핵무기는 단계적 해체로 협상이 이뤄질 전망이다. 북한이 끝내 거부하면 영영 폐기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필립 데이비슨 미 인도태평양사령관도 지난 13일 미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북한이 모든 핵무기와 생산능력을 포기하지 않고, 부분적 비핵화 협상을 모색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핵 위협이 현실화되는데도 국민을 안심시킬 대책은 미흡하다. 국방부는 북핵에 대비한 합참의 핵·WMD 대응센터(대령급)를 대응작전처(준장급)로 약간 확대키로 했을 뿐이다. 올해 방위분담금도 1년짜리 잠정합의여서 한·미동맹 유지에 논란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완전한 북한 비핵화가 장기간 소요되는 지금 상황에서 종전선언의 함정은 한두 군데가 아니다. 베트남 공산화 원인인 파리협정(1973)이나 히틀러에게 제2차 세계대전 기회를 준 뮌헨협정(1938)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먼저 북한에 ‘전 한반도 공산화 통일’ 목표 삭제를 요구해야 한다. 더는 유엔사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지 않는다는 북한의 약속은 필수다. 문 대통령도 지난해 “김정은 위원장도 저와 같은 개념으로 종전선언을 (정치적 의미로) 이해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진정한 의도는 비핵화가 아니라 남한을 무장해제하는 것”이라며 “북한을 믿지 않는다”는 지난 12일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말을 새겨듣기 바란다. 진정한 신뢰와 실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확실한 대비태세만이 한반도 평화의 길이다.

김민석 군사안보연구소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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