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대표의 발언은 그동안 대북정책 조율을 위한 한미 워킹그룹을 이끌면서, 그리고 지난주 평양에서 북-미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실무협상을 하면서 느낀 솔직한 소회일 것이다. 다음 주엔 합의문 마련을 위한 본격 실무협상을 벌인다. 정상회담 의제가 12개로 정해졌다지만 하나하나가 다른 의제와 맞물려 치열한 줄다리기 협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와중에 한국이 북한에 섣부른 기대만 부풀린다면 미국으로선 얼마나 힘 빠지는 일이겠는가.
특히 북한이 요구하는 대북제재 해제는 합의문 반영 여부를 떠나 북-미 간 핵심 의제가 될 수밖에 없다. 호기롭게 핵·미사일 도발을 하던 북한이 결국 비핵화 협상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은 미국과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와 압박 덕분이었다. 이제 대북 군사적 압박은 내려놓은 상태에서 제재는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어낼 사실상 유일한 지렛대가 됐다. 미국이 ‘선(先) 비핵화, 후(後) 제재 해제’ 원칙을 거듭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고 미국이 비핵화 완료 때까지 현행 제재를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것은 아닌 듯하다. 비건 대표는 방북 전 “우리가 ‘비핵화 완료 전엔 제재를 해제하지 않겠다’고 얘기하지만 ‘모든 것을 할 때까지 아무것도 않겠다’고 말하진 않는 것을 유심히 보아 달라”고 했다.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 조치에 따라 일부 면제, 유예, 완화 같은 융통성 있는 조치를 취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우리 정부 안팎에선 벌써부터 북-미 정상회담에서 금강산관광·개성공단 재개와 관련된 긍정적 신호가 담길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더는 한미 간에 딴소리가 나와선 안 된다. 부모 중 한쪽은 호되게 꾸짖고 타이르는데, 한쪽은 감싸면서 생색이나 낸다면 자식은 버릇을 고치기는커녕 더욱 삐뚤어질 뿐이다. 북-미 정상회담 이후도 마찬가지다. 회담이 성과를 거둬 비핵화 이행단계로 들어갔을 때, 한미 조율 없이 앞질러 보상조치가 나온다면 북한이 딴마음을 품게 만들고 결국 비핵화는 실종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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