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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강찬수의 에코파일] 4000㎞ 이동하는 북미 제왕나비…남하 땐 급행 북상 땐 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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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멕시코 갈 땐 물 안 먹고 이동

알 낳고 부화하며 다시 북쪽으로

태양 나침반·생체시계 활용

먹이 모자라 개체수 90% 감소

중앙일보

매년 캐나다와 멕시코 사이 4000㎞를 오가는 모나크나비. 멕시코 월동지가 훼손되고, 경유지에서는 경작지 확대로 먹이식물인 밀크위드가 줄면서 모나크나비 숫자도 전보다 크게 줄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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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미국-멕시코 사이 4000㎞를 오가는 모나크나비(Monarch Butterfly·제왕나비), 북미 자유무역협정(NAFTA)을 상징하는 나비다. 모나크나비가 이동할 때는 날개 색깔대로 주황색-검은색 구름이 흘러가는 것 같은 장관을 연출한다.

숫자가 90%나 줄었던 모나크나비가 올겨울 크게 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리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나비 생존을 위협하는 요인이 많기 때문이다.

모나크나비(Danaus plexippus)는 나비목(目), 네발나빗과(科)에 속하는 나비로 날개 넓이는 10㎝ 안팎으로 큰 편이다. 캐나다 동부와 미국 중부·동부 등에 살다가 늦은 여름이나 초가을 남쪽 멕시코 중부 산악지대를 향해 이동을 시작한다. 또, 미국 로키산맥 서부에 사는 모나크나비는 캘리포니아 남부에서 겨울을 나기도 하지만, 멕시코까지 내려가기도 한다. 미국 동부와 서부 모나크나비 집단은 유전적으로 서로 구별되지는 않는다.

남쪽으로 이동하는 것은 여름에 태어난 나비다. 여름 나비는 생식기관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아 봄까지 번식을 미룬다. 대신 수명은 7~8개월에 이를 정도로 ‘장수’한다. 멕시코로 남하할 때 나비들은 물이나 수액도 전혀 마시지 않고, 몸에 축적한 지방만을 이용해 곧장 날아간다.

모나크나비가 월동지인 멕시코 미초아칸 주에 도착하면 떼를 지어 전나무에 다닥다닥 붙어 겨울을 난다. 월동지의 숲은 얼지 않을 정도의 차가운 온도와 충분한 습도를 유지한다.

멕시코에서 겨울을 난 모나크나비는 봄이 되면 다시 북쪽으로 이동한다. 북쪽으로 이동하라고 명령을 내리는 신호는 ‘온도’다.

2013년 미국 캔자스대학 연구팀은 가을에 남쪽으로 날아가는 모나크나비를 붙잡아 월동지 기온에 맞춘 실험실에서 24일간을 보내게 했다. 그렇게 한 다음 풀어줬더니 모나크나비는 남쪽이 아니라 북쪽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북상할 때 나비는 3~4세대에 걸쳐 알을 낳고 부화하면서 천천히 이동한다. 북상하는 나비의 수명은 몇 주에서 길어야 두 달이다.

모나크나비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을 향해 유전자에 기록된 대로 움직인다. 모나크나비는 생체 시계와 ‘태양 나침반’ 두 가지로 길을 찾는다. 지금 시각이 하루 중 언제쯤인지를 따지는 생체시계는 더듬이 속에 있다. 더듬이를 자르면 나비는 방향을 찾지 못한다. 태양 고도를 파악하는 태양 나침반은 뇌 속에 있다.

알에서 부화한 모나크나비의 애벌레는 박주가릿과(科) 아스클레피아스 속(屬)에 속하는 10여 종의 밀크위드(milkweed)를 먹고 자란다. 암컷 모나크나비는 박주가리 식물에 한 번에 400~1000개의 알을 낳는다. 애벌레가 먹는 박주가리 식물 중에는 ‘카데놀리드(cadenolid)’라는 화학성분을 다량 함유한 종이 있다. 카데놀리드 성분은 애벌레가 부화해 성체가 된 후에도 몸속에 남는다. 포식자인 새가 모나크나비를 잡아먹으면 카데놀리드 성분 때문에 몸에 탈이 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커다란 집단을 이루는 모나크나비 숫자를 하나하나 직접 세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과학자들은 모나크나비가 멕시코 월동지에서 나비 집단이 차지하는 면적을 조사한다. 모나크나비 개체 수 조사는 1993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1996년에는 월동지 면적이 약 18㏊로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점차 감소해 2014년 1월에는 0.67㏊에 불과했다. 지난해에는 2.48㏊였고, 올해 1월에는 6.87㏊로 다시 늘었다. 해마다 들쭉날쭉 하지만 지난 20여 년 동안 모나크나비 숫자는 절반 이하로 줄었다. 일부 연구자는 최대 90%까지 줄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모나크나비를 위협하는 것은 월동지 훼손과 이동 경로 내 먹이 부족이다. 이동 경로 상에서 박주가리가 줄면 모나크나비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미국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모나크나비 숫자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36억2000만개의 밀크위드 줄기가 필요하지만, 미국에 남아있는 밀크위드 줄기는 13억4000만개에 불과하다. 멕시코 당국은 월동지의 전나무 벌목을 금지하는 등 보호 노력을 펼쳤고, 2008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올렸다.

한편, 모나크나비가 국내에서는 ‘제주왕나비’로도 불리지만, 제주에는 왕나비가 별도로 존재한다. 왕나비는 학명이 ‘파란티카 시타(Parantica sita)’로 모나크나비와는 다른 종이다. 왕나비는 제주도에서 겨울을 나는데, 한여름에는 중부지방에서도 관찰된다. 일부에서는 왕나비가 제주도에서 출발해 태백산맥을 넘어 북한 원산까지 왕래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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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선두리왕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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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모나크나비와 같은 속(屬)인 별선두리왕나비(Danaus genutia)가 제주도나 홍도 등 한반도 남부 섬 지역에서 관찰됐지만, 한반도에서는 미접(迷蝶·길 잃은 나비)으로 취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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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점표범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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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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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나비 집단은 지구온난화 영향을 받는다. 북방계 나비인 봄어리표범나비·왕은점표범나비·상제나비는 보기 힘들어졌다. 반대로 일본·대만 등 남쪽에서만 출현하던 남방계 ‘물결부전나비’는 국내에 자리 잡았다. 2015년 국립산림과학원 권태성 박사는 지난 60년 동안 한반도 나비 분포지역이 해마다 1.6㎞씩 북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극부전나비 등 남방계 나비 10종의 북방한계선이 해마다 그만큼씩 북쪽으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결국 지구온난화가 계속되면 그동안 흔히 볼 수 있던 나비는 사라지고, 낯선 나비가 자리 잡을 수밖에 없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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