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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이것은 고기인가, 콩인가…실험실 고기 ‘네이밍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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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류대체품 시장 22% 급성장

스타트업 뛰어들어 고급화 덕분

축산업계 “고기라 부르면 안 돼”

“표시 바꾸면 소비자 더 혼란”

중앙일보

덴마크 육류대체품 제조업체 나투리가 만든 ‘완두콩 성분 고기’. 갈아 놓은 형태로 슈퍼마켓 정육 판매대에서 판매된다. [사진 나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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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으로 만든 고기’는 고기일까, 콩일까. 실험실에서 배양한 고기는 고기일까 아닐까.

미국과 유럽에서 식물성 고기, 실험실 고기 등 육류대체식품이 최신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그 정체성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문제를 제기하는 쪽은 신제품에 맞서 시장을 지켜야 하는 기존 육류·축산업계다. 인조고기를 과연 ‘고기’라고 부를 수 있는지를 둘러싼 ‘네이밍 전쟁’이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미국 내 육류·축산업계가 식물성 원료로 만든 햄버거나 소시지 등에 ‘고기’라는 단어 사용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해 달라고 상·하원 의원들을 압박하고 있다”고 전했다. 행동에 나선 지역은 미시시피·네브래스카 등 10여 개 주에 달한다.

축산농가와 육류업계는 “소·돼지 등 가축에서 얻은 산물만 ‘고기’로 불러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육류대체식품업체와 유통업계는 “새롭고 낯선 표시와 포장은 오히려 소비자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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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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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산농가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육류대체품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지난해 식물성 육류대체품 시장은 2017년보다 22% 성장한 15억 달러(약 1조6800억원)로 집계됐다.

임파서블 푸즈, 비욘드 미트 같은 스타트업의 약진 덕분이다. 이들은 막대한 투자를 바탕으로 기술 개발에 집중해 사람이 만든 고기의 품질과 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 진짜 고기와의 차이를 점점 좁히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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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두콩 성분 고기(사진 위) 다짐육으로 만든 패티를 넣은 수제 햄버거. [사진 나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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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양과 맛이 비슷할 뿐 아니라 빨간색 채소인 비트 루트를 넣어 핏물까지 돌게 한다. 고기를 좋아하지만 개인적 신념, 환경 문제, 건강상 이유 등으로 진짜 고기는 피하고 싶은 사람들이 주 소비층이다. 문경선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 수석연구원은 “서구 슈퍼에서는 일반 육류 제품과 함께 진열해 소비자가 비건 제품을 육안으로는 구분하기 어렵게 하는 전략을 써서 소비자 관심을 끌었다”고 말했다.

콩으로 만든 다진 고기와 햄버거 패티류가 가장 대중적인 유형이다. 동물 세포를 배양해 만든 인공육을 사용한 치킨 너겟이나 소시지는 시판 준비 중이다. 이던 브라운 비욘드 미트 최고경영자(CEO)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도, 소비자도 식물성 성분으로 만든 고기 제품을 ‘고기’로 부르는 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직은 육류대체품 시장이 작지만, 제품 완성도를 높이고 대량 생산으로 가격이 내리면 기존 육류 시장에 위협이 될 것을 축산업계는 우려하고 있다. 앞서 우유와 계란에서 벌어진 ‘네이밍 전쟁’을 교훈 삼아 선제 대응하겠다는 의도도 있다. 최근 트랜드세터들에게 인기인 아몬드 우유는 우유가 안 들어 있으면서 우유라는 이름을 사용해 시장을 넓히는 데 성공했다.

뜻밖에도 카길·타이슨 등 대형 육류유통업체들은 누구 편도 들지 않고 논쟁에서 빠져있다. 시장 변화를 감지하고 발 빠르게 실험실 고기 제조업체들에 지분 투자를 했기 때문이다.

축산농가 입장에서 성과도 있었다. 이달 초 애리조나주와 아칸소주에서 고기 품목 표시에 관한 법안이 제정됐다. 미주리주는 지난해 가축의 산물이 아닌 것을 고기라고 표현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반면 버지니아주에서는 전미슈퍼마켓협회와 식물성식품협회 등의 의견을 받아들여 관련 법안을 부결시켰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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