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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옥칼럼] 한중관계의 신뢰적자를 회복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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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미가 비핵화 해법 찾는 동안

中변수는 잊혀진채 관계 진전없어

2차 북미회담후 새 국면 맞을수도

'제2 사드' 없게 대중외교 신경써야

성균관대 중국연구소장·정치외교학과 교수·서경 펠로

서울경제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릴 제2차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막판 협상과 조율이 전개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이 핵을 버리고 나오면 밝은 미래가 보장된다고 제의했지만 북한은 “미국이 움직인 만큼 움직인다는 비례의 법칙은 바뀌지 않는다”고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북미관계의 기 싸움이 아니라 냉전의 유산, 배타적 이데올로기, 역사적 경험을 다르게 기억하면서 형성된 신뢰적자에 있다. 신뢰의 사전적 의미는 “상대가 나의 존재를 인정해준다는 것을 내가 확신하는 것”이다. 즉 내가 생각하는 바대로 상대가 행동해줄 때 신뢰가 형성된다. 그러나 북미관계에는 정직한 중개자가 없고 다자보장체제도 작동하지 않은 상태에서 신뢰적자를 메우는 것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이런 점에서 북미정상회담도 한반도 비핵화로 가는 긴 과정의 한 단계로 볼 수 있다.

한편 북중 양국은 지난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네 차례 중국 방문 이후 신뢰적자를 본격적으로 메우기 시작했다. 북미관계와의 차이가 있다면 중국이 역사·이데올로기·지정학 등 모든 자산을 총동원해 신뢰복원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체제 전환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하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사회주의 북한에 대한 중국의 지지는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고 ‘하나의 참모부’에서 서로 이탈하지 않도록 하는 저선(bottom line)을 그었다. 이후 북중 사이에는 한반도 비핵화 로드맵과 대미 협상전략에 대한 내밀한 정보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2차 북미정상회담 이후에는 잠복해 있던 한중관계의 신뢰적자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에 관한 한중 간 협의 결과’를 통해 한중관계의 최대 이슈였던 사드 배치의 불은 끄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후 전략적 소통을 제도화하지 못한 채 중요하고 까다로운 문제에 대한 공동인식보다는 전략적 회피(aversion)에 머물러 있었다. 실제로 한반도 비핵화가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했지만 한국 정부가 남북미 협력으로 해법을 찾는 동안 중국 변수는 한동안 잊혀졌고 북중정상회담 등 한반도 정세에 대한 정보를 중국에서 받고 있다는 소식도 들리지 않는다. 중국도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을 풀었다 하지만 관광객을 태운 전세기는 아직 한국으로 오지 않고 있고 한국 제품에 대한 세관관리는 오히려 강해지는 등 한중관계 발전에 대해 성의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러한 한중 양국의 상호인식이 하나의 프레임으로 고착되면 중국의 혐한론과 한국의 혐중론이 동시에 확산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한반도 비핵화 국면이 진전되면 북한과 중국이 함께 사드 배치 철회를 요구하는 게 수면 위로 떠오르고 미국 내에서 확산되는 ‘화웨이 포비아’가 한국으로 불똥이 튀면서 선택의 어려움에 처한 한국을 보다 압박하는 상황이 나타날 수도 있다. 신뢰가 부족하고 회복력이 취약한 상태에서는 작은 불씨가 광야를 태울 수도 있다. 이미 주중 한국대사의 부재가 길어지고 있고 미래 한반도의 설계를 위한 남북중 협력논의도 미국 변수 때문에 좀처럼 운신의 폭을 넓히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제2차 북미정상회담의 성공이 곧바로 한중관계의 발전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중 양국이 상호 핵심이익을 존중하고 한국의 대중국정책이 한반도 미래 비전과 어떻게 닿아 있는지에 대한 공동인식을 넓혀가는 한편 제2의 사드 사태가 발생할 경우, 한중관계는 회복불능의 치명상을 입는다는 점에서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하는 경계를 분명히 설정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차제에 당당한 협력외교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가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선의에 기댄 채 돌파력을 잃고 있지 않은지, 관료주의와 보신주의에 빠져들고 있지 않은지 근본을 되돌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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