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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향우 일본]② 야스쿠니의 벚꽃 뒤에 숨은 일본 우익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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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설 전쟁박물관 유슈칸에는 극우 관점 일제 미화와 역사 왜곡 가득

다큐영화 '잊지 않는다'의 목적어는 전쟁 책임 아닌 '일제의 영광'

죽어서도 징용서 못 풀려난 조선인 2만1천명 봉안…분사 요구 외면

(도쿄=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 일본 수도 도쿄의 겨울바람은 차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날은 많지 않지만, 바닷바람이라서인지 더 강하고 매섭게 느껴진다.

그 찬바람을 이겨내고 봄이 왔다고 알리는 전령을 일본에선 벚꽃으로 삼는다.

일본 사람들은 3월이 되면 벚꽃의 첫 개화 소식을 듣기 위해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에 주목한다.

기상청이 매일 야스쿠니 경내의 표본 벚나무를 관찰해 5송이 이상 발견하면 본격적인 개화를 선언하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일본 열도는 벚꽃놀이에 나서는 상춘 행렬로 몸살을 앓는다.

이처럼 일본인들의 일상생활 속에 아주 평범한 모습으로 자리 잡은 야스쿠니는 여러 얼굴을 하고 있다.

야스쿠니는 '나라(國)를 편안하게(靖) 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런데 야스쿠니에는 역설적으로 일본이란 나라를 오랜 전쟁의 참화 속으로 밀어 넣고, 주변국 사람들에게는 치유할 수 없는 고통을 안긴 흑역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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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 신사 배전(拝殿) 전경



◇ 끝없는 논란…어떤 곳이기에

한 나라의 정상이 다른 나라를 예방하면 통상 그 나라의 국립묘지를 참배한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고인들의 숭고한 뜻을 공유하기 위해서다.

일본에도 그런 국립묘지 같은 시설이 있긴 하다.

야스쿠니에서 500m가량 떨어진 지도리가후치(千鳥ヶ淵) 전몰자 묘원(墓苑)이다.

1959년 조성된 이곳에는 제2차 세계대전(태평양전쟁) 전몰자 중 무명전사자와 민간인 유골이 주로 봉납돼 있다.

그러나 일본인은 이곳보다는 전통종교 신토(神道)의 시설로, 유골은 없고 명부만 안치된 야스쿠니를 더 국립묘지에 가깝게 생각한다고 한다.

신사는 불교가 융합된 신토의 예배가 행해지는 곳이다. 일본 전역에는 크고 작은 신사가 8만여 개 있는데, 그중 야스쿠니(9만9천㎡)가 가장 크다.

그러나 야스쿠니가 일본에서 누리는 독보적 위상은 규모보다는 성격 때문이다.

야스쿠니는 일왕(天皇·덴노) 중심 체제로 탈바꿈한 일본 메이지(明治) 정부가 출범한 이듬해(1869년) 쇼콘샤(招魂社)라는 국가 신사로 출발했다. 말 그대로 혼령을 불러 위로하는 신사라는 뜻이다.

쇼콘샤는 일왕으로의 권력 이양에 맞선 바쿠후(幕府) 군과 싸우다 숨진 황군(皇軍)의 혼령을 달래기 위해 메이지 일왕의 명령에 따라 생긴 신사다.

창건 10년째인 1879년 야스쿠니로 개칭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신사의 외형상 지위는 국가 종교시설에서 1945년 8월 일제 패망을 계기로 정교분리 원칙에 맞춰 민간시설로 바뀌었다.

올해 창건 150주년을 맞는 야스쿠니는 올해 말까지 대규모 개보수 공사를 벌인다. 이미 신사 정문 역할을 하는 높이 25m 크기의 제1도리이(鳥居·기둥문)는 녹을 털어낸 모습으로 방문객을 맞고 있었다.

◇ 봉안 영령 246만6천명…강제징용자 등 조선인도 2만1천명

야스쿠니에는 일반인이 무료 참배하는 배전(拝殿) 뒤쪽에 있는 본전(本殿)에 야스쿠니의 신(神)들로 불리는 총 246만6천 위(位)가 봉안돼 있다. 본전에 참배하려면 개인의 경우 2천엔(약 2만원) 이상의 공물료를 내야 한다.

영령(英靈)이라 불리는 이들 중에는 정한파(征韓派)의 정신적 지주 격인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등 일본 메이지 유신(1868년)을 이끈 인물들이 포함돼 있다.

주류는 메이지 유신 이후 일제(日帝)가 일으킨 수많은 침략전쟁의 주역과 그 전쟁에 동원돼 숨진 이들이다.

특히 전체 봉안 영령의 90%에 가까운 213만3천 위는 일본이 '대동아(大東亞)전쟁'이라 부르는 태평양전쟁(1941년 12월~1945년 8월)과 연관돼 있다.

일제 패망 후 도쿄 전범재판(극동국제군사재판)을 거쳐 교수형 당한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전 총리 등 7명을 비롯해 태평양전쟁을 이끈 A급 전범 14명도 1978년 합사(合祀) 의식을 거쳐 야스쿠니에 들어왔다.

이 때문에 야스쿠니는 일제 군국주의자들이 '성소'처럼 여기는 본거지가 됐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일제 치하에서 군인이나 군속으로 강제로 끌려갔다가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조선인 출신 2만1천181위와 대만인 2만7천864위도 본인이나 유족의 뜻과 무관하게 봉안돼 있다. 사후에도 징용에서 풀려나지 못한 이들에 대해 유족 등의 분사 요구가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지만 야스쿠니 측은 귀를 닫고 있다.

◇ 야스쿠니 속 박물관 '유슈칸'…반성 없고 왜곡과 미화만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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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신사 경내에 있는 '이달의 유언' 게시판



야스쿠니 배전 앞쪽에는 태평양전쟁에 나갔다가 숨진 이들의 마지막 글을 소개하는 '이달의 유서' 게시판이 설치돼 있다.

이곳을 찾는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이 게시판에 눈길을 먼저 주고 배전 쪽으로 다가가 참배하게 된다.

게시판 앞에는 누구나 가져갈 수 있도록 게시 내용을 영문과 일어로 적어 놓은 인쇄물이 비치돼 있다.

유서를 쓴 사람은 매월 바뀌지만, 내용은 거의 한결같다.

일제가 일으킨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호국 정신'을 부각해 후세 일본인들의 애국심을 고양하고자 하는 내용이다.

야스쿠니 경내에는 '유슈칸'(遊就館)이란 이름의 전쟁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종교시설인 야스쿠니 본전은 메이지 유신 이후 일제가 주도한 여러 전란 중 숨진 사람의 혼을 안치해 놓은 곳이고, 유슈칸은 이들의 행적과 역사를 극우 애국주의 관점에 맞춰 전시해 놓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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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신사 경내에 있는 전쟁박물관 '유슈칸'



야스쿠니신사보다 13년 늦은 1882년 문을 연 유슈칸은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이 썼던 무기류를 포함해 10만여 점의 유물을 소장·전시하고 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일제의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모든 역사적 사실을 일본 우익사관에 맞춰 기술해 놓고 있다.

그 중 가장 노골적인 것은 전시물 관람 전에 볼 수 있는 '우리는 잊지 않는다(私たちは 忘れない)'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일본 최대 우익단체 '일본회의'가 기획·제작한 50분 분량의 이 다큐멘터리는 미국의 원폭 공격을 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해 청일전쟁부터 태평양전쟁까지 일제가 전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다며 말도 안 되는 억지 논리를 편다.

메이지 유신이 구미 열강의 위협에서 일본을 지켜냈고, 힘이 전부이던 시기에 일본은 아시아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자존자위 차원에서 태평양전쟁을 수행했다는 것이 억지 주장의 핵심이다.

한국과 관련해선 조선의 국론이 일치하지 않는 상황에서 조선 독립 문제를 놓고 대립하던 중국과 청일전쟁까지 하게 됐고, 그 전쟁에서 이긴 결과로 조선 독립의 길이 열릴 수 있게 됐다는 등 황당한 주장이 난무했다.

또 패전 후에 열린 전범재판에 대해선 정당성을 부인한다.

비장한 목소리의 여성 내레이터는 "지금 야스쿠니신사에는 도조 히데키 전 총리를 포함해 전범이란 오명을 뒤집어쓰고 죽은 1천 명이 넘는 분들이 '쇼와 순난자(昭和 殉難者)'로 모셔져 있다"고 설명한다.

'순난자'는 '국가와 사회가 위난(危難)에 처해 의로이 목숨을 바친 사람'이라는 뜻이다. 전범이 아니라 순국열사라는 주장이다.

이처럼 모든 역사적 사실을 일본 우익의 관점으로 왜곡한 이 다큐멘터리를 오전 10시부터 하루 6차례, 매시 정각에 반복해 틀어준다.

◇ '절대 잊지 말자'는 그들의 말뜻은 '반성'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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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슈칸에서 상영되는 다큐멘터리 영화 포스터. 아래쪽에 '교과서로 가르칠 수 없는 진실의 역사가 지금 되살아난다'는 문구가 보인다.



이 다큐멘터리 영화가 던지는 키워드는 절대로 '잊지 말자는 것'이다.

그런데 잊지 말자는 것이 과거 침략전쟁에 대한 잘못된 판단이나 행위를 기억하고 주변국에 입혔던 크나큰 피해와 고통을 반성하자는 뜻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침략전쟁을 주도하고 그 전쟁을 함께했던 선인(先人)들의 '은혜'를 잊지 말자는 것이다. 그리고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웠던 그 선인들의 '기개'와 그들이 이뤄놓은 소위 '일본의 영광'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유슈칸의 전체 전시 공간은 이 다큐멘터리 내용을 뒷받침하는 전시물로 채워져 있다.

휴게공간조차도 자살공격조인 가미카제(神風) 특공대원의 동상과 이들의 출격 장면을 표현한 부조(浮彫) 작품이 배치돼 있다.

그 옆에는 이런 글이 적힌 추모비도 있다.

"우리나라(일본)가 존망을 건 대동아전쟁에서 일말의 생환을 기대하지 않았던 특공작전이 결행됐다. 17~18세부터 30대까지의 젊은 용사들이 하늘로, 바다로, 육지로 육탄공격을 감행해 위대한 전과를 올리고 산화했다. 그 수가 대략 6천 명. 장렬하기 그지없는 이 공격은 적의 간담을 서늘케 하고 국민은 다 함께 그 순수한 충의에 감읍했다. 특별공격대의 전투는 지고지순한 애국심의 발로로 우리 가슴 깊숙한 곳에 남아 있다. 또 세계인들에게 강한 감명을 주어 일본의 영원한 평화와 발전의 초석이 되고 있다."

야스쿠니와 유슈칸에는 일본인들이 정말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도 드러나 있지 않다. 옛 일제가 일으켰던 수많은 침략전쟁 과정에서 억울하게 침탈당하고 희생된 다른 나라 사람들의 얘기 말이다.

지난 10일 기자가 야스쿠니에 갔을 때 야스쿠니와 유슈칸을 둘러본 한 한국인은 이렇게 말했다.

"마음이 불편하네요. 가해자와 피해자의 역사적 관점이 다를 수 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편향된 줄은 몰랐습니다."

최근 '식민 지배'에 대한 일본의 반성을 거듭 촉구한 성명을 발표한 일본인 지식인들은 "아픔을 준 쪽은 잊기 쉽고, 받은 쪽은 쉽게 잊지 못 한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 야스쿠니신사나 유슈칸은 일본 우익층이 '잊기 쉬운' 가해자 차원을 넘어서 어두운 과거를 아예 지워버린 가해자가 됐다는 느낌을 들게 한다.

야스쿠니와 유슈칸에 가는 보통 일본인들은 그걸 모른 채 강대국 미국과 맞선 일제의 '대단했던' 역사만 보고 듣고 배울 것이다.

parks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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