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히또의 고장은 몰디브가 아니다. 쿠바다. 엄청난 양의 사탕수수와 엄청난 양의 럼이 만들어낸 칵테일이다. 헤밍웨이가 특히 모히또를 좋아했다. 손민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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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 아바나에 있는 엘 플로리디따의 다이끼리. 온종일 어마어마한 숫자의 관광객이 이 칵테일을 마시러 찾아온다. 헤밍웨이가 즐겼다는 바로 그 다이끼리다. 맛은 모히또보다 못했다. 손민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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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은 일종의 테제다. 헤밍웨이가 전 세계 관광객에게 내린. 헤밍웨이가 쿠바에서 남긴 문장 가운데 관광객이 달달 외우는 하나의 구절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아바나 구도심 ‘올드 아바나’에 헤밍웨이가 자주 들렀다는 술집 두 곳이 있다. 라 보데기따와 엘 플로리디따. 두 집 모두 온종일 관광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다른 술집보다 비싼 편이어도, 인파를 뚫고 들어가 모히또와 다이끼리를 주문한다. 모히또는 럼에 설탕과 민트를 넣은 칵테일이고, 다이끼리는 슬러시처럼 생긴 럼 칵테일이다. 헤밍웨이가 당뇨와 고혈압을 앓았던 탓인지 두 집의 칵테일 모두 다른 집보다 독한 편이다. 쿠바에서 보낸 열흘, 평생의 모히또와 다이끼리를 다 마신 듯하다.
아바나 시내에 있는 또 하나의 헤밍웨이 명소 '라 보데기따'의 모히또. 이 집도 엄청난 인파가 몰려든다. 맛이 다른 집의 모히또보다 강하다. 손민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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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보데기따 내부 모습. 전 세계에서 찾아온 관광객들이 온 벽에 낙서를 해놨다. 2층도 꽉꽉 차 있었다. 손민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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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 아바나 맘보스 문도스 호텔의 헤밍웨이 객실. 객실 구석에 싱글 침대 하나가 달랑 놓여있고, 창문을 향해 낡은 타자기가 있다. 이 방에서 헤밍웨이는 책 3권을 집필했다고 한다. 손민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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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보스 문도스 호텔 옥상 레스토랑에서 내다본 올드 아바나 풍경. 거리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헤밍웨이는 창문으로 내다보이는 이 거리의 풍경을 좋아했다고 한다. 손민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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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아바나 외곽의 농장 저택은 호사스러웠다. 헤밍웨이는 1939년 저택 ‘핀카 비히아(Finca Vigia)’를 샀다. 전망대가 있는 농장이란 뜻이다. 1961년 쿠바를 떠날 때까지 그는 여기에서 살았다. 건물 면적만 4000㎡(약 1200평)이라고 했다. 미국 여배우가 알몸으로 물놀이했다는 수영장에서는 차라리 실망했다. 『노인과 바다』가 태어난 성지라기엔 너무 호화로웠다.
쿠바가 미국의 신식민지였던 시절, 헤밍웨이는 쿠바에 별장을 뒀던 여느 미국인 부르주아처럼 귀족 생활을 영유했다. 미국 본토에서 금주법이 시행됐을 때는 쿠바에서 양껏 술을 마셨다. 알코올에 중독된 미국인 소설가에게 쿠바는 천국이었을 터이다.
헤밍웨이 단골집 엘 플로리디따에 있는 헤밍웨이 동상. 실물 크기라고 한다. 엘 플로리디따에 들른 전 세계 관광객이 기념사진을 찍겠다고 다이끼리 한 잔 들고 긴 줄을 선다. 손민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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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카 비히아에서 헤밍웨이는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이 상을 받는 최초의 입양 쿠바인입니다.” 노벨상 메달도 산티아고 데 쿠바의 꼬브레 성당에 기증했다. 헤밍웨이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노인과 바다』에 이 성당이 2번 등장한다. 그 중 한 구절을 옮긴다.
“저에게는 신앙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고기를 잡게 해주신다면 주기도문과 성모송을 열 번씩이라도 외겠습니다. 만약 고기를 잡을 수만 있다면 코브레의 성모 마리아님을 참배하기로 약속드리죠. 정말로 약속합니다(『노인과 바다』 66쪽, 김욱동 역, 민음사).”
헤밍웨이의 농장 저택 핀카 비히아. 이 호화 저택에서 헤밍웨이는 귀족처럼 살았다. 손민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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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카 비히아 내부 모습. 들어갈 수는 없고, 문을 열어놓은 입구에서 사진을 찍게 해준다. 아프리카 사냥에서 잡아온 동물들의 박제가 벽에 걸려 있다. 손민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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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는 가장 미국적인 작가였다. 미국으로부터 가장 호된 시련을 받은 쿠바가 가장 미국적인 작가의 추억을 팔아 연명하고 있다. 아이러니일까. 쿠바혁명이 성공한 이태 뒤인 1961년 1월 미국은 쿠바와 국교를 단절한다. 국교 단절 직후 헤밍웨이는 쿠바를 떠난다. 그리고 약 6개월 뒤 미국 북서부 아이다호주의 자택에서 엽총으로 자살한다. 62년 인생 중에서 33년을 헤밍웨이는 쿠바와 연을 맺었다.
꼬히마르 해변. 노벨문학상 수상작 『노인과 바다』의 실재 배경이 된 장소다. 한갓진 갯마을 풍경이 왠지 정겨웠다. 손민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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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는 꼬히마르의 늙은 어부 그레고리오 푸엔테스(Gregorio Fuentes)의 일화를 모티브로 한다. 핀카 비히아에서 꼬히마르는 약 15㎞ 떨어져 있다. 헤밍웨이는 자주 꼬히마르에 가서 바다 낚시를 즐겼다. 거기에서 그는 늙은 어부의 무용담을 들었다. 헤밍웨이의 낚싯배 이름이 ‘필라 호’다. 핀카 비히아 수영장 옆에 그 배가 전시돼 있다. 늙은 어부는 필라 호의 선장이었다. 헤밍웨이는 1952년 『노인과 바다』를 발표했고, 이듬해 퓰리처상을, 그 이듬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꼬히마르의 카페 라 테라짜. 『노인과 바다』에 등장한 동네 카페다. 늙은 어부 산티아고가 이 카페에서 커피 한 잔으로 속을 달래고 바다로 나간다. 아바나 시내의 헤밍웨이 명소들처럼 관광객이 긴 줄을 선다. 손민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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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의 모델이 된 꼬히마르의 늙은 어부 그레고리오 푸엔테스. 그는 헤밍웨이의 낚싯배 '필라 호'의 선장이기도 했다. 손민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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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 산티아고의 집은 언덕 위에 있다. 바다에서 돌아온 산티아고가 돛대를 걸머메고 겨우겨우 언덕을 오르는 장면은 그래서 십자기를 짊어진 예수를 연상하게끔 한다. 실재 인물 푸엔테스의 집은 마을 안에, 평지의 다른 집과 나란히 있었다. 너무 평범해 되레 낯설었다. 여태 헤밍웨이의 상상력을 너무 얕잡았었다.
코히마르 해변의 녹슨 방파제. 너무 낡아 이제는 쓸모가 없어진 방파제에서 맨몸으로 바다와 싸운 늙은 어부가 연상됐다. 추레하고 남루해서 좋았다. 손민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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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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