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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쿠바 기행](6)100년 전 애니깽의 삶…한국·쿠바 ‘슬픈 인연’ 기리는 추모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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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의 애니깽-마탄사스에서 본 한국과 쿠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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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아바나 근교 마탄사스에 있는 애니깽 한인 이민자 추모비. 일제강점기 시절 감언이설에 속아 멕시코까지 온 한인 이민자들은 지옥 같은 애니깽 노동을 피해 1921년 이곳으로 왔지만 사탕수수 농장의 일자리를 찾지 못해 다시 애니깽 재배를 해야 했다. 손호철 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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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잃고 멕시코 정착한 선조들

땡볕 애니깽 농장서 노예 노동

착취 못 견뎌 쿠바로 이주했지만

다시 지옥 같은 애니깽 재배

훗날 미국 한인단체 추모탑 세워


<야만의 멕시코(Babarous Mexico)>. 언론사에서 일하던 1980년 봄, 광주학살이 일어났다. 광주시민들을 폭도로 보도하라는 군부에 대항해 제작거부 운동을 벌이다 언론사를 떠나 미국 텍사스주립대학으로 유학을 가야 했다. 유학시절 수업 외에 유일한 낙은 중고서점을 뒤지는 것이었는데 어느 날 이 같은 제목의 책이 눈에 띄었다. 들여다보니 1920년대 텍사스의 한 진보적 언론인이 멕시코를 여행하며 쓴 글이었다. 재미있을 것 같아 사서 읽다가 충격을 받았다. 유카탄반도를 여행하던 중 노예처럼 발에 족쇄를 차고 땡볕의 애니깽 농장에서 일하고 있는 동양인들이 있어 물어보니 “한국인”이라고 답하더라는 것이었다. 놀라서 기자를 하던 친구에게 책을 전해주며 취재해보라고 했다. 그 덕인지 모르지만, 이후 20세기 초 멕시코로 팔려갔던 우리 선조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 출간되어 애니깽이 널리 알려졌다.

옛 소련 기술자들이 건설하던

마탄사스 향하는 6차선 고속도로

공사 도중 소련 몰락하는 바람에

산타클라라에서 도로 끊겨


그러나 애니깽 이야기는 멕시코에만 그치지 않는다. 애니깽은 쿠바에도 존재했다. 나는 우리들의 선조인 애니깽의 흔적을 찾아 히론을 떠나 아바나 근교에 있는 마탄사스로 향했다. 히론의 지방도로를 나와 주도로로 들어서자 왕복 6차선의 고속도로가 나타났다. 쿠바에도 고속도로가 있었나? 구소련 몰락 전에 소련 기술자들이 지어준 것인데 아바나에서 산타클라라까지 공사를 끝냈을 때 소련이 망해 거기서 고속도로가 끊겼다고 한다. 소련이 조금만 더 늦게 망했더라면 산티아고데쿠바까지 고속도로가 이어졌을 터인데, 그 몇 년을 못 버티는 바람에 형편없는 도로로 고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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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나와 불과 한 시간 거리인 마탄사스는 바다의 수심이 깊어 스페인이 일찍이 무역항으로 개발한 곳으로 아바나처럼 쿠바의 북쪽에 위치해 플로리다를 마주 보고 있다. 두퐁의 별장이 있던 최고의 휴양지 바라데로와 아바나의 중간에 위치해 있다. 도시에 들어서니 휴양지답게 바닷가를 따라 요트들이 떠 있고 수상스포츠를 즐기는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도로 통제로 인해 길을 돌고 돌아 내륙으로 들어갔다. 차에서 내려 가난한 쿠바에서도 흔치 않은 너무도 누추한 흙집들을 지나가자 기와라고 하기에도 뭐한 국적 불명의 탑이 하나 나타났다. 애니깽 조상들을 추모해 미국의 한인선교단체가 만들어줬다는 추모탑이었다. 그 앞에는 채 자라지 않은 작은 애니깽 나무가 심어져 있어 그 탑의 의미를 상기시켜줬다. 나라를 잃은 상태에서 감언이설에 속아 멕시코에 온 한인 노동자 중 300명은 지옥 같은 애니깽 노동을 피해 조금이라도 나은 편인 사탕수수 농장을 찾아 1921년 두 대의 배에 나눠 타고 쿠바에 왔다. 도착한 곳은 이제는 폐항이 됐지만 당시는 주요 항구였던 쿠바 동북단의 마나티항. 그러나 안타깝게도 마침 미국의 새로운 관세장벽으로 사탕수수 값이 폭락했고 이들은 사탕수수 농장 일을 구할 수 없었다. 이들은 살기 위해 여러 곳으로 흩어졌는데 그중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곳, 마탄사스로 왔다. 이곳에서 이들은 한인촌을 이루고 같이 생활하면서 유카탄반도에서 배운 기술을 가지고 다시 지옥 같은 애니깽 재배에 나서야 했다.

이들은 멀리 쿠바에까지 와서도 애국심을 버리지 않았다고 한다. 2001년 쿠바 이민에 대해 현지 취재를 한 경향신문 김진호 기자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들은 쿠바 입국 당시 자신들을 일본인으로 분류하려는 쿠바 정부에 대항해 입국을 거부하고 10일을 배에서 버텼고 결국 일본인이 아닌 ‘무국적자’로 입국했다고 한다. 나아가 이들은 지옥 같은 애니깽 작업으로 번 돈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모아 상하이로 보냈다. 이 같은 공을 인정받아 이를 주도한 임천택씨는 건국훈장을 받았고 2004년 이장해 대전현충원에 묻혔다. 임씨의 아들인 헤로니모 임 김씨(쿠바는 아버지 성과 어머니 성을 같이 쓴다)는 카스트로와 아바나 법대 동창생으로 혁명 초기부터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 혁명을 주도했다. 특히 그는 산악지역에서 게릴라전을 한 카스트로보다도 더 위험한 도시 게릴라로 활동했다고 한다.

세계를 여행하다 보면 한민족에 대해 몰랐던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세계 주요 혁명에 우리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는 사실이다. 2008년 마오쩌둥이 혁명 과정에서 국민당의 추적을 피해 오지로 도망 다닌 1만㎞의 대장정 루트를 따라가 본 적이 있다. 그 과정에서 마오쩌둥 대장정 당시 30명의 한인이 참가했고 이 중 두 명은 완주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중국의 지배자였던 장제스 국민당 총재를 납치해 공산당과 손잡고 항일투쟁에 나서도록 만든 ‘시안사변’ 당시 장쉐량의 정예부대로 장제스를 체포한 특공대의 정예대원들도 한인이었다. 바이칼호 동남쪽의 울란우테시 광장의 높은 탑에는 “공산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에게”라는 한글이 나타난다. 시베리아 철도 건설 작업에 참여한 한인 노동자들이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자 혁명을 지지했다가 반혁명군인 백군에게 목숨을 잃은 사실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중국 혁명과 러시아 혁명은 한반도와 가까우니 그렇다 치더라도, 태평양 건너 지구 반대편에 있는 쿠바 혁명에도 한민족의 족적이 깊이 새겨져 있다니 놀랍기만 하다. 이제 900여명밖에 남지 않은 애니깽의 3세, 4세들은 사무실까지 만들어 한인 후손회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그곳을 방문해 쿠바 애니깽 후손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빡빡한 일정 때문에 안타깝게도 만날 수 없었다. 망국의 고통 속에 생존을 위해 화물선에 실려 몇 달간 고생하며 태평양을 건너 멕시코까지 왔다가 다시 이곳 쿠바까지 실려와야 했던 조상들의 한 많은 삶을 생각하며 이들의 명복을 빌었다.

애니깽 이민을 통해 인연을 맺은 뒤 어언 백년이 지난 현재, 한국과 쿠바의 관계는 어떠한가? 한국여권은 189개국을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어 세계 여권 중 2번째로 가치 있는 여권이라고 한다. 우리의 외교적 위상이 높아졌다는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우리와 국교관계를 맺지 않은 나라가 있으니 그중 하나가 바로 쿠바다. 쿠바는 같은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과의 의리 때문에 우리와 국교를 맺지 않고 있다. 따라서 쿠바에 입국하면 “문제가 생길 경우 멕시코 대사관이나 아바나에 있는 KOTRA(무역투자진흥공사)를 방문하라”는 핸드폰 문자를 받게 된다. 북한과 쿠바는 ‘반미 자주의 소국’이라는 동병상련의 관계이다. 체 게바라는 혁명 직후인 1960년 평양을 방문해 북한을 “쿠바가 따라가야 할 모델”이라고 칭찬했고 카스트로도 1986년 북한을 방문했다. 카스트로의 뒤를 이어 새 지도자가 된 미겔 디아스카넬 국가평의회의장 역시 최근 첫 해외순방에서 북한을 방문해 김정은을 만난 사진이 국내에 크게 보도됐다.

그러나 북한과 쿠바는 형식적 동맹국일 뿐 실질적인 교류는 거의 없다. 반면 쿠바는 한국인들의 ‘여행 로망’ 중의 하나로 쿠바에는 한국 여행객들이 넘쳐난다. 젊은 쿠바인들 사이에는 한국 드라마와 K팝 등 한류가 유행하고 있고, 거리에는 1950년대 미국 앤티크 자동차, 투박한 소련제 자동차뿐 아니라 현대, 기아 등 한국 자동차도 흔히 발견할 수 있다. 이 같은 모순된 관계를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안내를 맡은 세 명의 현지 가이드이다. 산티아고데쿠바에서부터 아바나까지 종단 여행을 안내한 에벨리오 두에나스와 아바나 안내를 맡은 페트리샤는 남매 사이로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어렸을 때 북한에 가서 한국어를 공부했다고 한다. 이들은 이후 쿠바로 돌아와 관영인 관광회사에 취직해 영어 가이드, 러시아어 가이드로 일하다가 한국인 관광객이 늘어나자 2000년 이후부터는 특기인 한국어를 살려 한국 가이드로 변신해 일하고 있다.

쿠바에는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여행 가이드가 8명 있다. 이 중 일곱 명은 북한에서 한국어를 배운 사람들이다. 두 명은 나이가 많아 은퇴했고 두 명은 미국으로 건너가, 현재 쿠바에는 에벨리오 두에나스와 페트리샤를 포함해 세 명만 남아 있다고 한다. 북한에서 한국어를 배우지 않은 마지막 한명은 호텔에서 공항까지 안내해 준 젊은 가이드인데 한국 드라마 등을 보고 한국어를 배웠다고 한다. 가이드도 북한 유학생 출신에서 한류세대로 세대교체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 “한국, 쿠바의 28번째 교역국…호텔 TV, 거의 한국 제품”

정덕래 코트라 아바나 무역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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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브해 해안도로에는 커다란 슈퍼마켓이 있는데 그곳에 달린 큰 삼성 간판이 눈에 띄어 들러봤다. 잘 꾸며진 삼성 매장은 갤럭시9의 가상현실을 체험해보려는 젊은 손님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그러나 쿠바 기준으로 가격이 너무 비싸 대부분 구경만 하러 온다고 한다. 쿠바 젊은이들은 박물관의 전시품처럼 삼성 제품을 감상밖에 할 수 없는 형편을 빗대어 “‘삼성 박물관’ 구경 갈래”라고 한다고 한다.

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아바나 무역관의 정덕래 관장(사진)을 만나 쿠바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무역 현황과 현지 분위기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 쿠바에 온 지 얼마나 됐는지. 쿠바와 한국의 경제교류는 어떠한가.

“3년 정도 됐다. 한국은 쿠바에 연간 6500만달러를 수출하고 200만달러 정도를 수입해 오는 쿠바의 28번째 교역국이다. 쿠바 호텔의 TV는 거의 한국 제품이다. 한국의 전기·전자제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 쿠바의 주요 교역국은 어느 나라인가.

“우고 차베스 집권 후 쿠바에 석유를 싸게 공급하던 베네수엘라가 제1의 교역국이었는데 베네수엘라 경제가 엉망이 된 뒤에는 2위로 떨어졌다. 지금은 중국이 과거의 소련을 연상케 할 정도로 많은 원조를 제공하는 등 선두를 차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중국과의 특수관계로 인해 쿠바의 관광버스는 전부 중국산이다. 북한은 중요한 동맹국이지만 교역 등은 거의 없다. 쿠바는 70억~80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하는 만성적인 무역 적자국이지만 관광 수입 30억달러, 미국 이민친지들의 송금 30억달러, 의료 수출 등으로 적자를 메우고 있다.”

- 쿠바 현지 상황에 비해 우리 상품이 너무 비싸서 경쟁력이 없다는데.

“쿠바 정부가 무역을 독점하고 가격을 결정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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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아바나에 있는 한 대형 슈퍼마켓 간판 끝에 ‘삼성’이라고 적힌 글자가 눈에 띈다(위 사진). 마켓 안의 삼성 매장 모습. 쿠바인들에겐 너무 비싸 구경만 하는 ‘삼성박물관’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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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바에서 한류 인기는 어떤가. 쿠바에서의 한국어 교육은.

“약간 과장된 측면이 있다. 외국 것에 대한 동경으로 중국·일본 문화도 이미 유행한 바 있다. 국제교류재단이 교수 한 명을 보내 50명 정도 규모의 한글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외국어대학에는 중국어과와 일본어과가 있는데 우리도 처음에는 대학에서 강의를 열었다가 외압에 의해 대학 강의는 폐쇄했고 대학 밖에서 저녁에 강의를 하고 있다.”

-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부정부패는 늘 문제이지만, 특히 사회주의 국가들은 법치가 약하고 권력이 집중돼 부정부패 문제가 심각하다. 쿠바는 어떤가.

“20달러의 월급으로는 생활이 불가능해 작은 부정부패들이 일상화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일상화되어 있지만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 일종의 ‘부패 카르텔’이라 할까. 국영식당에서 계산하면 카드가 되는데도 안된다고 하고 현금으로 받아 챙기는 식이다.”

- 하지만 사회주의는 고질적으로 고위층 부패가 특히 문제인데 쿠바의 경우엔 카스트로 등 고위층의 부정부패는 상대적으로 많이 거론되지 않는 것 같다.

“상류층은 이미 시스템으로 특권화되어 있어 부정을 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

- 베트남, 중국 등은 최고위층이 특권에도 불구하고 주기적으로 엄청난 규모의 부패 스캔들이 터지는데 쿠바는 그런 것은 없었던 것 같은데.

“그런 것 같기는 하다.”

- 라틴 특유의 유희 문화, 쿠바인들의 낙천성 등을 고려하면 중국이나 베트남 같은 경제모델을 쿠바에 적용하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어떤가.

“나도 어렵다고 생각한다. 라틴 중에서도 특히 카리브해가 그런 것 같다. 잘살기 위해 일을 좀 더 할 수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삶의 기본가치가 훼손되지 않는 선에서 그럴 뿐 그 이상으로는 일하지 않을 것이다. 개성공단 같은 근면한 노동 같은 것은 어려울 것 같다. 가난해도 자기 삶을 즐기려 하기 때문에 행복지수는 우리보다 높다.”


손호철 | 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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