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영결식이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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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전 10시 30분쯤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진행된 영결식에는 시민 약 1000여명(주최 측 추산)이 모여 김 할머니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옛 일본대사관 앞은 매주 수요일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집회’가 열리는 곳이다. 김 할머니는 병세가 악화돼 입원하기 직전까지 수요집회에 참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운구행렬이 할머니의 어록이 담긴 만장과 함께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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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헌화가 끝난 후 김 할머니를 태운 운구차는 충남 천안에 있는 국립 망향의 동산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김 할머니는 영면에 든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추모행렬이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을 지나 고 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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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암으로 세상을 떠난 김 할머니는 1940년 14세의 나이로 일본군 위안부에 끌려가 성노예 생활을 했다. 이후 1993년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서는 최초로 유엔인권위원회에 파견돼 성노예 사실을 증언하였고, 2012년에는 전쟁 중 성폭력을 경험한 여성들을 위한 기부 모금인 ‘나비기금’을 발족하기도 했다.
김 할머니의 사망으로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는 23명(전체 피해자 238명)으로 줄었다.
[최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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