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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매경이 만난 사람] 정만기 자동차산업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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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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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노동규제는 물론이고, 사고 한번 나면 강화되는 안전규제, 여기에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환경규제까지 우리나라 기업들은 삼중 규제에 꽁꽁 묶여 있다. 자동차업계는 심지어 글로벌 수요 부진과 통상 마찰까지 견뎌야 한다. 역설적이지만 이렇게 안 좋은 상황에서 차업계가 버텨내는 게 신기할 정도다." 이달 초 취임한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장은 어깨가 무겁다. 국내 자동차 산업 위기가 좀처럼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밖에서 보던 것보다 상황은 더 심각하다. 지난해 국내 완성차 생산·내수·수출은 모두 2017년보다 감소했다. 국내 최대 자동차 기업인 현대·기아차의 합산 영업이익은 4조원을 넘지 못했다. 정 회장이 자동차 산업의 위기를 걱정하는 건 자동차산업협회장이라는 자리 때문만은 아니다. 차 산업이 흔들리면 대한민국 경제 전체가 위기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5년에 한 번 조사해 발표하는 경제총조사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자동차 산업은 국내 제조업 총생산의 13.6%, 고용의 11.8%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상당하다. 한국 제조업의 근간이자 한국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는 자동차 산업을 살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최근 정 회장을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어봤다.

―우리나라 자동차업계가 언제부터 이렇게 어려워졌을까.

▷우리나라 차가 가격 경쟁력을 잃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도요타 캠리와 현대 쏘나타 가격을 비교해보자. 2005년 캠리 가격을 100이라고 치면, 2018년 캠리 가격은 135였지만 쏘나타는 144가 됐다. 10 정도 괴리가 생긴 건데 그동안 우리나라 차가 그만큼 가격 경쟁력을 잃은 것이다.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면 연구개발(R&D)도 떨어지지 않나.

▷우리나라 고급차 기술 경쟁력이 선진국의 88% 수준이라고들 한다. 차업계에서 가장 R&D 투자를 많이 한다는 현대·기아차도 R&D 비용이 매출 대비 2.5% 수준이다. 도요타가 보통 5% 정도 쓰니까 한참 못 미치는 것이다. 그런데 R&D 투자가 왜 부진한지 원인을 봐야 한다. 인건비 부담이 높기 때문이다.

―인건비 부담이 어느 정도로 심각한가.

▷자동차업계의 고임금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현대차 1인당 평균 연봉이 9000만원이라고 하는데 독일 폭스바겐은 8300만원 수준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1인당 GDP는 3만달러, 독일은 5만달러대다. 경제 규모를 놓고 보면 우리나라 차업계 임금이 지금보다 내려가는 게 맞지 않겠나. 여기에 최저임금 인상, 주휴수당 편입 등 각종 임금 상승 요인을 감안하면 차업계가 버텨낼 재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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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강성노조 문제로 귀결되는데.

▷최근 자동차업계 노조 관계자들을 만났다. 젊은이들이 일자리가 없어 취직하지 못하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기 일자리만 생각하는 지극히 이기적인 발상이다. 한국GM·르노삼성 등 한국에 들어와 있는 차업계 사장들을 최근 만났는데 다들 신규 직원을 뽑고 싶다고 하더라. 기업이 영속성을 갖고 유지되려면 새로운 사람을 충원해야 하는데 지금 우리 차업계는 그게 안 된다. 회사 입장에서는 비정규직이라도 뽑고 싶은데 해고가 쉽지 않아 할 수가 없다. 노동경직성이 이렇게 심한 나라는 한국뿐이다.

―한국의 노동규제가 가장 심각하다는 얘기인가.

▷미국은 직무와 직위분류 등을 견고하게 만들어놓고 쉽게 바꾸지 않는다. 누가 들어와도 일할 수 있게 돼 있으니 해고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일본은 우리나라처럼 연공서열에 종신고용까지 갖췄지만 대체근로, 파견근로, 전환배치 등을 허용하면서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게 해놨다. 그런데 우리는 임금이 높고, 해고는 안 되고, 파견근로·탄력근로도 다 안 된다. 사업장 전환배치도 안 된다. 작업 전환배치도 노조와 상의해야 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법으로 다 허용되는 게 우리나라에선 하나도 안 된다. 여기에 안전기준·환경기준까지 더해져 삼중 규제에 꽁꽁 묶여 있다.

―환경기준은 유럽이 더 강하지 않나.

▷우리나라 환경규제가 미국 캘리포니아나 프랑스보다 더 강력하다. 각국에서 시행하는 환경규제가 한국에 짜깁기 식으로 도입되다 보니 한국이 가장 강력한 환경규제를 갖추게 됐다. 친환경차 의무판매제가 그 예다. 친환경차를 일정 비율 이상 판매하지 못하면 제조사에 과태료를 물리겠다는 것이다. 친환경차를 사고 안 사고는 철저히 소비자 문제다. 그런데 그걸 제조사에 의무적으로 팔아야 한다고 하는 게 말이 되나. 심지어 일정 비율 이상 못 팔면 제조사에 벌금을 물리겠다니 소비자에게 강매라도 해야 한다는 말인가. 안전규제도 정말 사고 하나 터질 때마다 하나씩 추가로 생겨난다. 자동차업계가 환경규제·안전규제에 맞추다 보면 차 설계에 반영하기도 힘들고, 완성차가 나와도 인증받기가 힘들다. 자동차업계가 이 정도 규제에서 버텨내고 있는 게 신기할 정도다.

―그래도 우리나라 자동차 부품사들 경쟁력은 세계 최고 수준 아닌가.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들의 경쟁력은 가격뿐만 아니라 빠른 생산, 기술력 등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 완성차 업체 사장을 만났더니 "한국에서 공장을 돌리는 메리트는 완성차만 따지면 하나도 없지만 부품업체 때문에 버티고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 말을 거꾸로 해석하면 부품업체 경쟁력이 떨어지면 더 이상 국내에 완성차 공장이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부품업체들도 요즘 근로시간, 임금 인상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주 52시간 근무가 중소 부품사에 부담이 된단 말인가.

▷지난해 하반기에 국내 부품업체들을 많이 만나봤다. 완성차업계나 대형 부품사들은 규모가 커서 바로 주 52시간 근무제가 정착됐다. 하지만 300인 미만 사업장이 대부분인 중소형 부품사들은 작업 시간 조정이 안 돼 애를 먹고 있다. 부품사가 밤새워 물건을 만들어 보내도 완성차업계에서 받을 사람이 없다. 직원이 이미 다 퇴근했다. 우리나라 부품사 고유의 경쟁력인 가격·스피드 등을 다 잃어버리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실제로 많은 기업이 해외로 나간다.

▷자동차만의 문제가 아니다. 제조업의 해외직접투자(FDI) 증가율이 지난해 170% 정도 된다. 국내 제조업체들이 줄줄이 해외로 탈출하고 있다. 심각한 문제다. 제조업 일자리가 다 사라지는 것이다. 제조업체들이 한국에서 공장을 돌릴 이유가 점점 없어지고 있다.

―정부가 수소경제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데 차업계에서도 기대가 크다.

▷현재 정부가 수소생태계를 확대하고자 하는 게 업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수소차 산업은 수많은 협력업체가 필요하고 산업의 전후방 연관 효과가 큰 시스템산업이다. 수소 생산에서 저장, 이동, 충전과 관련된 산업, 수소전기차 생산에 들어가는 관련 부품산업, 그리고 수소 판매와 수소전기차 유통에 필요한 산업 등을 고려하면 수소차의 전후방 연관 효과는 상당하다. 수소차 관련 산업에 큰 기대를 갖고 있다.

"美 25% 관세 적용땐 11조원 수출감소…반드시 막을것"
워싱턴 찾아 韓입장 적극 설명

매일경제

지난 24일 정만기 회장이 자동차산업 노사정 포럼 출범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연합뉴스]


한미 통상 문제는 정만기 회장이 한국자동차산업협회장 취임 후 해결해야 할 여러 과제 중 가장 시급한 것으로 꼽힌다. 미국은 무역확장법 232조에 의거해 수입 자동차에 대해 25% 관세를 조만간 부과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정 회장이 취임 후 첫 출장지로 미국을 선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26일 미국으로 떠난 정 회장은 미국 자동차업계와 정·관계 인사들을 만나 우리 자동차업계 의견을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정 회장은 "우리뿐만 아니라 미국 자동차업계도 무역확장법 232조를 반대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며 "미국 정부가 한국산 자동차·부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지 않도록 업계 의견을 잘 전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무역확장법 232조란 외국산 수입 제품이 미국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될 때 긴급하게 수입을 제한하거나 고율 관세를 매길 수 있도록 한 조항이다. 1962년 제정 이후 50여 년 동안 실제 적용된 사례가 단 2건에 불과할 정도로 사실상 사문화된 법이었지만,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보호무역주의 수단으로 부활시켰다. 미국은 작년 4월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철강·알루미늄에 각각 25%와 10%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한 데 이어 작년 5월에는 수입 자동차와 부품 조사에 착수했다. 수입산 자동차에 고율 관세를 매겨 자국 자동차 산업을 살리고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복안이다.

미국은 일단 다음달 17일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한 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인 가운데 정 회장을 대표로 한 국내 자동차업계도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채널을 활용하고 있다. 현재 미국 상무부가 작성 중인 232조 보고서에는 크게 3가지 안을 두고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수입산 자동차·부품에 최고 20~25% 관세를 부과하는 법과 미래형 자동차 기술인 자율주행(Automated), 커넥티드(Connected), 전기화(Electric), 차량공유(Shared) 등 ACES 차량 기술 수입을 제한하는 방안이 두 번째다. ACES 차량 또는 ACES 관련 부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이 두 가지 안을 절충한 중간 방식으로, 일부 부품에만 선별적으로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방식이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미국이 수입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에 관세 25%를 부과하면 우리나라 자동차산업 무역수지는 최대 98억달러(약 11조원) 감소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정 회장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 그는 "25% 관세가 부과되면 미국 시장에서 우리나라 자동차·부품은 가격경쟁력을 잃게 된다"며 "사실상 대미 자동차 수출은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심지어 국내 자동차산업 생태계가 붕괴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라고 본다"며 "반드시 예외를 인정받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정만기 회장은… △1959년 강원 춘천 출생 △중앙고, 서울대 윤리교육학과 △파리 제10대학 경제학 박사 △행정고시 27회 △산업자원부 무역진흥과장 △청와대 경제보좌관실 행정관 △산업자원부 산업정책관·산업통상기획관 △지식경제부 무역정책관·정보통신산업정책관·대변인·기획조정실장 △산업통상자원부 산업기반실장 △청와대 산업통상자원 비서관 △산업통상자원부 제1차관 △제17대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

[한예경 기자 / 문지웅 기자 / 용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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