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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금)

이슈 '위안부 문제' 끝나지 않은 전쟁

‘위안부 피해’ 김복동 할머니마저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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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밤 10시41분 신촌 세브란스병원서 별세

또 다른 할머니도 숨져…생존자 23명으로 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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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가 별세했다. 향년 93.

암 투병 중이던 김 할머니는 28일 밤 10시41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에서 숨을 거뒀다. 경남 양산 출신인 김 할머니는 14살에 일본군에 끌려가 22살에 돌아왔다. 김 할머니는 나라 안팎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해온 평화운동가였다. 2015년에는 분쟁 지역 피해아동 지원과 평화활동가 양성에 써달라며 평생 모은 돈 5000만원을 ‘나비기금’에 기부했다. 나비기금은 이 돈으로 ‘김복동 장학기금’을 만들었다. 김 할머니는 같은 해 국제 언론단체가 선정한 ‘자유를 위해 싸우는 영웅’에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넬슨 만델라,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 등과 함께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공익사단법인 정(이사장 김재홍·김용균)이 제정한 ‘바른의인상’ 첫 수상자로 선정됐다. 당시 공익사단법인 정은 “김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서 아픔을 안고 있으면서도 거의 전 재산을 후진교육을 위해 기부했으며 평화와 통일의 신념과 한일 과거사에 대한 바른 역사관을 전파시켰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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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할머니는 재일동포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다. 어린 나이에 일본군에 끌려간 학교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인지 일본 정부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재일조선학교 학생들이 유독 눈에 밟혔다. 2016년부터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는 재일조선학교 학생 6명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던 김 할머니는 지난해 11월22일 신촌 세브란스 병실에 누운 채로 재일조선학교 학생들의 장학금으로 쓰라며 3000만원을 더 내놓았다. 마지막까지 김 할머니의 소원은 “아베한테 진심 어린 사죄를 받는 일”이었다.



이날 또 다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아무개(93) 할머니도 별세했다.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이 할머니께서) 지난해 끝자락부터 건강이 많이 안 좋아지셨는데 최근에 악화돼 큰 고통을 견디시다 오늘 오전 하늘로 가셨다”며 “아프고 고통스러운 기억, 외롭고 힘든 기억 모두 잊으시고 편안하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윤 대표는 “(이 할머니는) 17살이 되던 1942년께 직장인 방직공장에서 퇴근하다가 그 근처에서 군용 트럭에서 내린 군인에게 동료 2명과 함께 납치됐다. 이후 일본으로, 일본에서 또 만주로 끌려가 끔찍한 피해를 당하셨다”고 전했다. 이 할머니는 해방 뒤 밀수선을 타고 간신히 귀국했다. 윤 대표는 “할머니는 피해 경험으로 얻은 죄책감과 피해의식으로 평생을 괴로워하셨다”며 “찾아뵐 때마다 할머니의 얼굴에 드리운 괴로움과 외로움을 보며 안타깝고 아팠다”고도 적었다.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은 이날 이 할머니의 별세에 애도의 뜻을 전했다. 진 장관은 “얼마 전 할머니를 뵀을 때 건강 상태가 좋지 않으셔서 하루빨리 쾌차하시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를 떠나보내게 돼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며 “할머니 한분 한분을 더 늦기 전에 자주 찾아뵙고 편안한 마음으로 건강하게 지내실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정의기억연대는 이 할머니와 유가족의 뜻에 따라 장례는 비공개로 진행한다고 밝혔다. 두 할머니의 별세로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23명으로 줄었다.

이유진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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