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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구관이 명관'…수십년째 각광받는 무기들은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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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관이 명관이다.” 무슨 일이든 경험이 많은 사람이 잘 한다는 의미를 담은 이 속담은 새로운 것 못지 않게 옛날의 것도 좋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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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공군 F-16 전투기가 기지에서 비상상황 대응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미 공군 제공


이 속담은 세계 무기 시장에서도 여전히 효력을 발휘한다. 적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스텔스 성능을 자랑하는 미국의 F-22와 F-35, 러시아의 SU-57, 중국의 J-20 전투기들이 등장해 미래 전쟁의 주역으로 거듭날 채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개발된 지 수십년이 지난 무기들이 ‘마르고 닳도록’ 쓰이고 있다. 심지어 최신 기술을 적용받아 신무기와 다를 바 없는 수준의 성능을 갖춘 무기로 다시 태어나기도 한다.

◆수십년째 일선 지키는 무기들

일선에 배치된 지 수십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핵심적인 지위를 유지하는 무기로는 미국의 F-15와 F-16 전투기가 꼽힌다.

1970년대 미 공군에 처음 도입됐던 F-15와 F-16은 여러 차례 개량을 거듭하며 성능이 향상됐다. 그 결과 공중전 등 제한적인 임무만 가능했던 F-15, F-16은 공중전뿐만 아니라 지상표적 및 함정에 대한 공격, 정찰, 전자전 등을 모두 수행할 수 있는 ‘슈퍼맨’으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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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록히드마틴의 F-16V가 무장을 장착한 채 지상에 주기되어 있다. F-16V는 F-16의 최신 개량형이다. 록히드마틴 제공


두 기종 가운데 F-16은 세계 각국 공군으로부터 주문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스테디셀러’다. 제작사인 미국 록히드마틴은 F-16의 최신 개량형인 F-16V를 개발, F-35A를 구매할 여력이 없는 중소국가를 대상으로 판촉활동을 펼치고 있다.

F-16V는 최신 AN/APG-83 다기능위상배열(AESA) 레이더와 신형 컴퓨터를 탑재, 동시에 다수 목표를 탐지하고 탐지 거리도 현재의 F-16A/B에 비해 2배 정도 늘어난 160㎞에 달한다. 조종사 헬멧에 장착된 헬멧 장착 자동조준장치(JHMCS)를 이용해 공격에 필요한 의사결정도 한결 쉬워졌다. AIM-9X 사이드와인더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 대 (對) 레이더 미사일 AGM-88B HARM 등 100가지가 넘는 무장을 장착할 수 있으며 전자전 능력도 높여 2020년대 전장에서도 충분히 운용가능하도록 성능을 개량했다.

록히드마틴은 F-16V 신규 주문량을 200대로, 기존 F-16 개량 수요를 700대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실제로 F-16V를 구매하는 국가들이 최근 등장하고 있다. 불가리아는 지난 10일 미국과 F-16V 도입 협상에 나서기로 결정했다. 불가리아는 신형 전투기 8대를 도입해 옛 소련 시절 들여온 러시아제 미그-29 전투기를 대체할 계획이다. 18억달러(약 2조원) 규모의 불가리아 전투기 교체사업에는 스웨덴 그리펜과 유럽 에어버스의 유로파이터도 참가했으나 F-16V가 협상 대상자로 낙점됐다.

슬로바키아도 지난해 12월 F-16V 14대를 13억달러(약 1조4710억원)에 도입키로 결정했다. 슬로바키아 국방부는 성명을 통해 “F-16V가 2040년까지 운용 가능한 기종이고 도입 총액도 다른 경쟁 전투기보다 싸기 때문에 구매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F-16V는 슬로바키아가 옛소련과 동구권 붕괴 이전에 배치한 러시아제 미그-29 전투기를 대체하게 된다.

대만도 F-16 143대를 F-16V 수준으로 개량하는 작업을 진행중이다. 지난해 1차분 4대가 인도되어 올해부터 작전에 투입될 예정이며, 나머지 139대는 1년에 20~24대의 개량 작업을 거쳐 2022년에 개량사업을 모두 마칠 예정이다. 대만은 F-16V가 중국 J-20 전투기의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전력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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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F-15K 전투기 편대가 지상 표적을 향해 폭탄을 투하하고 있다. 공군 제공


미국에서는 F-15 개량형인 F-15X의 미 공군 도입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12월 21일(현지시간) 블룸버그 리포트는 미 국방부가 주방위공군 F-15C를 대체하기 위해 F-15X 12대 도입예산 12억달러(1조3482억원)를 내년도 국방예산에 포함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F-15C가 노후화해 창정비 비용이 높아지자 새로운 기체를 도입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미 국방부 일부 인사의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미 국방부 장관 대행인 패트릭 섀너핸 국방부 부장관은 F-15 제작사인 보잉 출신으로 미 국방부에 대한 보잉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는 관측을 낳기도 했다.

◆과도한 무장 ‘NO’, 스테디셀러급 성능도 한몫

이같은 상황은 첨단 전자장비가 다수 탑재되는 현대 무기의 특성이 강화된데 따른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첨단 전자장비는 가격이 매우 높다. 이는 무기 도입 및 운용비용 급상승으로 이어져 최신 무기 구입에 부담을 느끼게 한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국가들 입장에서는 개발된 지 오래됐으나 성능 개량 작업으로 기존보다 위력이 강해진 무기들이 더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이같은 추세가 강화되면 첨단 무기 위주의 세계 무기 시장에서 저렴하고 신뢰성이 높은 무기를 찾는‘틈새시장’이 형성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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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공군 F-22 스텔스 전투기가 활주로에 대기하고 있다. 스텔스 전투기가 현대전에서 주목받고 있으나 높은 비용 등으로 빠르게 확산되지는 못하는 실정이다.


냉전 종식으로 대규모 전면전 위협이 크게 낮아진 것도 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항공작전의 경우 수백대의 전차와 장갑차로 구성된 기계화부대의 전진을 저지하거나 제공권을 장악하는 등의 대규모 작전이 필요한 국가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대신 테러리스트에게 납치된 항공기의 자살테러나 우발적 충돌 방지 등을 담당하는 공중치안유지 임무가 중소국가들을 중심으로 부각되고 있다. 공중치안유지 작전에서는 빠른 시간내에 이륙해 사태를 수습하는 것이 중요하다. F-35A 같은 첨단 전투기보다는 싸고 신뢰성이 입증된 F-16V가 더 적절할 수 있다.

후속군수지원이 용이한 것도 중소국가들에게는 매력적이다. 많은 나라에서 운용된 장비들은 막대한 부품 재고가 존재한다. 저렴한 가격에 부품을 구할 수 있는 통로가 열려있는 셈이다.

선진국에서 성능개량을 거친 중고무기들이 많은 것도 첨단 무기 구매 대신 기존 무기 도입을 선택하게 하는 요인이다. F-16은 서방세계에서 수천대가 운용된 전투기다. 서유럽 국가들이 F-35A를 도입하면서 기존에 사용했던 중고 F-16이 싼값에 개발도상국으로 재판매되고 있다. 스펙상으로는 생산된 지 오랜 기간이 지났으나, 성능개량 및 후속군수지원이 꾸준히 진행되면서 군사적 긴장이 낮은 곳에서는 충분히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네덜란드의 F-16이 칠레로, 싱가포르의 F-16 초기형이 태국에 판매됐으며, 미국의 수출 승인 거부로 이뤄지지 못했지만 이스라엘의 F-16이 크로아티아에 인도되는 방안이 거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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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육군 병사가 M2 중기관총을 사격하고 있다. 미 육군 제공


전장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도 효용성을 잃지 않는 ‘스테디셀러급’ 성능을 갖춘 무기도 있다. 미 육군과 해병대는 물론 미국의 동맹국 군대에서 널리 쓰이는 M-2 브라우닝 중기관총은 개발된 지 100년이 됐지만 일부 개량이 이뤄진 것을 제외하면 여전히 일선에서 쓰이고 있다. 적은 수의 명중탄으로도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어 현대전에서 사용되는 대구경 저격총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미군은 앞으로도 M-2 중기관총을 당분간 주력 총기로 운용할 예정이다.

기술 발전과 유행의 속도가 눈부실 정도로 빠른 현대 사회에서는 잠깐 등장했다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무기들이 많다. 심지어 개발에 성공하고도 제대로 쓰이지 못한 채 창고에서 먼지를 뒤집어쓰는 신무기도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등장한 지 수십년이 넘은 무기들이 성능개량을 거듭하며 계속 사용되는 것은 그만큼 ‘명품’ 수준의 성능과 신뢰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많다. 국방예산 증액이 쉽지 않은 현실을 감안하면 첨단 무기 대신 기존 무기를 개량한 무기들이 가성비와 신뢰성을 앞세워 세계 방산시장에서 상당한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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