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6 (월)

카드사 수수료 인하 후폭풍, VAN업계 덮쳤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정부의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 정책에 대한 부작용이 본격화하고 있다. 업계 예상보다 수수료 인하 범위 폭이 넓어지면서 카드사와 부가통신사업자(VAN·밴), 밴 대리점 세 곳의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갈등은 업계 종사자들의 대규모 구조조정과 함께 영세 가맹점에 대한 비용 전가로 이어질 전망이다.

24일 한국신용카드밴협회와 여신금융협회, 금융업계 등에 따르면 다음달부터 밴 업계는 대리점에 지급하는 수수료를 건당 최소 3분의 1 이하로 줄이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에 매입수수료 등을 포함해 대리점이 밴사에서 건당 100원가량을 받았다면, 이 금액이 20원 안팎으로 급격히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신용카드 결제는 가맹점과 밴사, 카드사가 함께하는 삼각 구조로 이뤄진다. 고객이 가맹점에서 카드를 사용하면 밴사 전산망을 통해 이 내용이 카드사로 전달된다. 카드사는 회원 정보 등을 확인한 뒤결제승인 정보를 다시 밴사 전산망으로 가맹점에 전달한다. 밴사는 이러한 결제 승인 업무를 중개하면서 카드사에서 별도로 수수료를 받는다.

밴사 전산망을 이용하는 가맹점에 대한 관리는 밴사가 직접 하지 않고 별도 계약을 맺은 대리점을 통해 진행된다. 대리점은 신규 가맹점을 모집하거나 기존 가맹점을 관리하는 일을 맡는다. 여기에는 월 1회 이상 가맹점을 방문해 전표를 공급하는 것부터 단말기 고장 시 긴급 애프터서비스(AS) 등을 진행하는 것까지 포함된다.

신용카드 사용이 꾸준히 늘면서 밴 업계는 그동안 호황을 누려왔다. 과거에는 카드사가 사용 건당 일정 금액 수수료를 지급하는 정액제를 채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가 2007년부터 2018년까지 9차례에 걸쳐 가맹점 수수료를 꾸준히 내리는 과정에서 카드사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밴사에 지급하는 수수료를 정액제에서 정률제로 전환했다. 소액 신용카드 결제 건수가 많은 국내에서 정률제 전환은 일거리는 변함없는데 수입은 크게 줄어드는 구조로 이어진다. 이에 따라 영세 가맹점의 평균 결제금액 5000원을 기준으로 할 때 올해 결제 건당 밴 수수료는 2016년 대비 85% 이상 떨어질 전망이다.

최근 확정된 가맹점 수수료 인하는 카드사들로 하여금 전표매입을 직매입으로 전환하는 정책을 추진하게 하고 있다. 직매입이 이뤄지면 매입수수료 부담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직매입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최근 한국신용카드밴협회 소속 11개 밴사가 직매입 방식을 확대하는 롯데카드를 대상으로 불공정계약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기로 했을 정도다.

밴사 업계가 소송 근거로 제시하는 것은 2016년 4월 금융당국과 카드사, 밴사 삼자가 맺은 '무서명 거래 실시에 따른 비용 분담 협약'이다. 이는 매입수수료를 카드사와 밴사가 분담하기로 한 것으로, 해당 수수료는 전액 대리점으로 전달되는 구조다. 직매입이 확대되면 밴사는 대리점에 매입수수료를 줄 수 없다는 주장이다.

수수료 인하로 카드사는 밴사에, 밴사는 대리점에 비용을 전가하는 구조가 되면서 불똥은 가맹점으로 튀게 됐다. 대리점이 다음달부터 자신의 비용 부담을 가맹점에 전가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밴 대리점 관계자는 "수수료 인하로 연 매출 3억원 이하 영세 가맹점 한 곳에서 발생하는 월 매출은 3000원 수준으로 예상된다"며 "이들에게는 기본적인 서비스조차 공급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대리점은 영세 가맹점을 시작으로 전표 공급과 단말기 AS 등 관리 업무에 대해 별도로 비용을 받기로 했다. 또 영세 가맹점에 무상으로 제공하던 20만원 상당 카드 단말기나 80만원가량 하는 판매정보관리시스템(POS) 기기 등도 모두 유상 판매하기로 했다.

위 관계자는 "일정 규모 매출이 나는 대형 가맹점에는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할 수 있지만 영세 가맹점은 유료 전환이 불가피하다"며 "수수료 인하 혜택보다 월 관리비용 부담이 이들에게 더 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국 5000여 개, 3만여 명의 영업·관리 인력으로 구성된 밴 대리점 업계의 구조조정도 예상된다. 대리점 업계 수익 감소로 인해 업계에서는 최소 30%가량 인력 구조조정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의 일자리 창출 정책이 결국 다른 곳에서는 일자리 뺏기 정책이 된 셈이다.

밴 업계 관계자는 "정부 규제로 수수료 수입이 줄어드는 지금과 같은 구조가 지속된다면 혁신기술 개발을 위한 투자는 꿈도 꾸지 못할뿐더러 수익이 나지 않는 영세 가맹점에 대한 외면 현상이 확산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승훈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