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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뉴스 깊이보기]정부는 왜 미세먼지를 중국에 ‘항의’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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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2일 오후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3차 한·중 환경협력 국장회의에 한중 양국 대표가 참석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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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부터 한·중 환경환경협력 회의가 열리는 등 양국간 미세먼지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논의는 일반 국민들이 생각하는 ‘항의’가 아닌 ‘협력’에 방점이 찍혀있다. 국민 감정대로 ‘중국 탓’을 하는 것이 문제 해결에는 아무런 실익이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양국은 이날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리는 환경부의 한·중 환경협력 국장회의에 이어 23~24일에는 외교부 주도로 한·중 환경협력 공동위원회를 열어 환경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한다. 24일 합의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환경부는 이번 회의에서 대기, 물 토양 분야 등 양국간 환경 협력 추진 상황을 점검하고 신규 협력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하지만 전날 류빙장 중국 생태환경부 대기국 국장이 한국을 겨냥해 “다른 사람이 자기한테 영향을 준다고 맹목적으로 탓만 하다가는 미세먼지를 줄일 절호의 기회를 놓칠 것”이라고 말한 사실이 전해지면서 거센 논란이 벌어졌다. 지난달 28일 중국 생태환경부 류여우빈 대변인이 “서울의 미세먼지는 주로 서울에서 배출된 것”이라고 주장한 데 이어 또다시 ‘책임 떠넘기기’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하지만 22일 문재인 대통령은 “(미세먼지로 인한) 답답함을 속시원하게 해결하지 못하고 있어 참으로 송구스러운 마음”이라면서도, 중국발 미세먼지에 대해 “중국도 고통 받고 있기 때문에 서로 미세먼지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왜 정부는 중국과 ‘협력’을 이야기할까

정부는 중국발 미세먼지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갈등을 키우기 보다는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두고 ‘냉정한 대응’이라기 보다는 ‘굴욕적’으로 보는 여론이 압도적이다.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반중 감정이 심화된 상태에서 중국 영향이 큰 미세먼지 문제가 불거지면서 여론이 급격히 나빠진 것이다. 하지만 정부에선 “중국 탓을 해서는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할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환경부 고위관계자는 이날 경향신문과 전화통화에서 ‘왜 정부는 중국에 항의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국민 감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항의를 하는 것이 실제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서 “이미 중국이 엄청난 저감 노력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문제를 지적하면 미세먼지 얘기 자체를 꺼낼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중국 정부가 2013년부터 대기오염 감소를 위해 국가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은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전날 중국 생태환경부 국장도 “중국 오염물질이 2013년 대비 40% 줄었는데 한국의 대기질은 그대로거나 나빠졌다”며 국내의 ‘중국 탓’ 여론을 반박했다. 다만 중국 미세먼지의 절대 수치 자체가 높다보니 여전히 한국에 나쁜 영향을 주고 있는 상황이다.

환경부 고위관계자는 “이미 중국에서도 자국 영향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면서 “행정 관료가 일일이 논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자들이 밝혀낸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이야기하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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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1월에는 중국발 미세먼지의 책임 소재를 가릴 것이라는 기대를 모은 ‘동북아 장거리이동 대기오염물질 공동연구 보고서’도 공개된다. 지난해 공개될 예정이었지만 중국 측의 거부로 무산된 것이다. 당시 중국 측에선 보고서에 인용된 데이터가 오래돼서 최근의 급격한 변화를 반영하지 못해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애초 미세먼지 이슈는 중국이 불리한 이슈라 중국에선 언급 자체를 피해왔다. 최근 잇따라 입장을 내는 것은 중국에서 이미 강력한 저감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데도 고농도 미세먼지가 발생할 때마다 비난받는 데 대한 반발의 성격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보고서 공개 시점이 다가오면서 자국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대응에 나서는 측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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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후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3차 한·중 환경협력 국장회의 시작 전 우리측 수석대표인 황석태 환경부 기후변화정책관(오른쪽)이 중극 측 수석대표인 궈징 생태환경부 국제합작사 사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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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항의하면 미세먼지가 사라질까

그렇다면 중국에 항의를 하면 미세먼지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해외 사례를 참고해볼 수 있다.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는 우리보다도 앞서 미세먼지로 인한 갈등을 겪은 나라들이다. 인도네시아에서 플랜테이션을 위해 밀림을 태워 개간을 할 때마다 독성 연기가 주변국으로 퍼져나가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특히 바다 건너편 싱가포르가 이러한 ‘연무(Haze)’ 문제로 심각한 고통을 겪었다.

한국과 달리 책임 소재가 분명해보이는데도 20년 넘게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애초에 ‘가해국’에서 순순히 문제를 인정하는 상황 자체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싱가포르 정부에선 국내법이라도 만들어 기업과 개인을 처벌하기로 하고, 2014년 9월 ‘월경성 연무오염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해외에서 연무를 일으켜 싱가포르에 영향을 끼친 기업이나 개인을 찾아내 민형사상 책임을 묻는다는 게 골자다. 영토 밖에서 일어난 화재에 대해 책임자를 찾아내 처벌하는 일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결국 ‘상징적 조치’에 그쳤고, 연무법에 따른 기소는 지금까지 단 한 건도 이뤄지지 않았다. 싱가포르 내에선 불매운동까지 벌어졌지만, 문제를 들여다볼 수록 간단치 않았다. 인도네시아에서 플랜테이션을 하는 팜유와 제지 회사들이 실제로는 싱가포르에 본부를 두고 있던 것이다. 한국의 상황에 대입하면 중국 산둥성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한국 기업들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게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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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끝에 싱가포르가 찾은 해법은 ‘협력’이었다. 지난해 9월 경향신문 취재팀과 만난 앨런 기진 탄 싱가포르국립대 법학 교수는 “연무법으로 첫 번째 처벌받는 사람은 싱가포르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결국 국내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싱가포르에서 인도네시아에 책임을 묻기 위해 만든 연무법에 대해 “냉소적으로 보면 그냥 대중을 행복하게 한 것뿐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풀지 못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기진 탄 교수는 “한국 사람들이 중국을 국제사법재판소에 데려간다면 중국이 응하지 않고 상황은 더 악화될 것”이라면서 “중요한 것은 과학적 근거다. (한국의 미세먼지가) 어디에서 오는지를 알아내기 위해서라도 중국과 계속 협력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기오염 문제는 이미 선진국들도 홍역을 치른 문제다. 유럽에선 1950년대부터 스칸디나비아반도의 숲이 산성비로 파괴되면서 논란이 됐다. 1971년 영국과 서독의 산성비가 주요 원인이라는 연구결과가 공개돼 처음으로 국경을 넘나드는 오염물질 문제가 불거졌다. 당시 영국과 서독도 책임을 부정했지만, 여러 국가들이 참여하는 공동 논의가 시작되면서 실마리가 풀렸다. 냉전 때문에 다자 협의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는데도 1979년 유럽 31개국이 참여해 ‘월경성 장거리이동 대기오염에 관한 협약(CLRTAP)’을 맺으며 문제를 풀 수 있었다. 북미에서도 ‘미국-캐나다 간 대기 질 협약’으로 월경성 오염물질 문제를 푼 사례가 있다. 애초에 갈등과 항의로 문제를 해결한 나라들은 없던 셈이다.

한국 정부도 지난해 10월 ‘동북아청정대기파트너십(NEACAP)’를 만드는 등 다자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미세먼지 저감의무를 명시하고, 국가별 저감목표를 설정하는 ‘국가 간 미세먼지 저감 선언’을 만드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환경부 고위관계자는 “국제법상으로 환경 문제를 국가에 책임을 묻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협력이 사실상 문제를 푸는 유일한 방법”이라면서 “바깥에서 보는 것보다 내부적 논의는 잘 진행되고 있고, 올해 말 보고서가 공개되면 순차적으로 문제가 풀려나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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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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