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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이게 나라냐"…`캐러밴 나라` 온두라스, 대통령 퇴진 요구 시민들·야권 1주일간 시위 돌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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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를 (사실상)빼앗긴 나라' 온두라스에선 20일(현지시간) 일요일 눈물의 시위가 시작됐다. 수도 테구시갈파 시(市) 거리에는 이날 집권2기 2년차에 접어드는 후안 올란도 에르난데스 대통령(50) 사임을 외치는 시민들과 야권 정치인들이 몰려들었다.

온두라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싫어하는 '캐러밴(caravan·중미 출신 이주민 행렬)'의 나라다. 과테말라, 엘 살바도르와 함께 캐러밴 3국으로 꼽힌다. 캐러밴은 지난해 11월 6일 미국 중간 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10월 중순부터 열심히 반(反)이민 정서·이슈를 동원하는데 이용된 사람들이다. 지난 16일 AP와 CNN 등 미국 언론은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 출신 캐러밴 각 1700명, 300명이 미국 국경을 향해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민주당은 '미국·멕시코 간 국경장벽' 이슈로 미국 역대 최장기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 정국을 끌고가고 있다. 미국 이민법 상 '캐러밴들이 멕시코 국경을 통해 미국으로 유입되는 것을 막냐, 마냐'와 직결된 사안이다.

온두라스는 지난 2009년 6월 일어난 군사 쿠데타를 결정적인 계기로 사실상 무정부 상태로 전락했다. 마약 밀매·폭력조직과 시민을 적대시하는 정부를 둔 온두라스 시민들에게는 '웰빙(well-being)'은 사치다. 가난과 더불어 마약 밀매조직 폭력이 자행하는 인신 매매와 잔인한 살인 행각 속에 하루 하루 '생존(being)' 자체가 걸린 사람들이 줄지어 과테말라와 멕시코를 건너 미국으로 향한다.

'폭력과 살인의 온상'이라는 악명을 떨치는 라틴 아메리카 대륙 나라 중에서도 온두라스는 살인율 4위다. 미국 조직범죄 연구소 인사이트 크라임(InSight Crime)의 가장 최근 데이터에 따르면 2017년 인구 10만명 당 살해당한 사람 수는 온두라스가 42.8명으로 베네수엘라(89명), 엘 살바도르(60명), 자메이카(55.7명) 다음이다. 확인되지 않은 사망자를 포함하면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

온두라스의 인권 변호사인 호아킨 메히야씨는 "온두라스에선 많은 사람들이 극심한 폭력에 시달립니다. 사실상 사형선고를 당해 추방당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민'을 강요당하는 셈입니다. 정부가 치안을 전혀 보장하지 못합니다"라고 지난 13일 영국 가디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토로했다. 어린이들마저 마약 밀매·폭력 조직원이 되길 강요 당하는데, 조직원이 돼도 범죄에 동원돼 죽고, 조직원 되기를 거부해도 살해당하는 식이다. 국제 어린이 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은 2015년을 기준으로 인구 10만명 당 살해당하는 어린이 수는 라틴아메리카 국가 중 온두라스가 1위라는 보고서도 낸 바 있다. '큰 정부'든 '작은 정부'든 정부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은 시민들의 목숨과 안전을 보장하는 치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온두라스엔 정부가 사실상 없는 셈이다.

지난해 1월 27일 에르난데스 대통령은 대선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민들 항의 시위를 뒤로 하고 테구시갈파 시 국립 경기장에서 열린 의회 특별회의에 참석해 취임선서를 했다. 시민들이 반대한 이유는 앞서 2017년 11월 26일 치러진 대선 부정선거 때문이다. 부정 선거 논란은 개표 초반 야권 '독재 반대 연합' 살바도르 나스라야 후보가 선두를 달리자 갑자기 36시간 동안 개표가 중단된 것부터 본격적으로 달아올랐다. 그러던 중 온두라스 선거관리위원회가 기습적으로 에르난데즈 대통령 승리를 선언했다. 미주기구(OAS)와 유럽연합(EU)은 "선거 절차와 진행이 비민주적이고 불법적"이라면서 선거를 다시 하라는 권고도 했다.

당시 대선 발표이후 열흘 간 정부는 기자를 포함한 시민들이 저녁6시 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 야간 외출을 하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위반하면 보안군더러 체포하게 했다.

에르난데스 대통령(임기 2014년 1월 27일~)은 4년 단임제 제한도 풀었다. 에르난데스 1기 집권 시절인 2015년, 온두라스 대법원은 대통령 단임 제한을 무효화시켰는데 그래서 에르난데스는 2017년 말 대선에 다시 출마할수 있었다.

'불법·비민주적 선거'의혹으로 얼룩졌다는 점에서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나 에르난데스 온두라스 대통령이나 차이가 없어보인다. 그런데 왜 베네수엘라만 비난 받을까 ? 에르난데스는 2009년 쿠데타 당시 수천 명을 감옥에 가두거나 죽이면서 정권을 장악한 군부가 후원하는 정치인이다. 쿠데타 정권은 미국의 지지를 받았다. 온두라스 민주주의 위기는 미국의 암묵적인 동조와 관련있다고 가디언 등 외신이 지적한 바 있다.

앞서 2006년 대선에서 승리해 대통령에 오른 마누엘 셀라야 전 대통령(임기 2006~2009년)은 굳이 따지자면 온두라스 내에선 좌파·진보적 인물로 분류됐다. 임기 동안 빈곤율을 7.7% 포인트 떨어뜨리고, 법정 최저임금을 하루 6달러에서 9달러 60센트로 올렸고, 여성 피임도 허용했다. 대기업이기도 한 다국적기업의 특권과 노동 착취를 금지했다. 이전 군사정권기에 만들어진 헌법과 제헌의회도 바꿔보려고 했는데 이런 행동들이 온두라스 집권·기득권층 불만을 샀다. 이들의 불만은 2009년, 셀라야 정권에 대한 쿠데타로 이어졌다.

당시 미국은 '진보적'이라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 집권기였다. 미국 정부는 온두라스 정권 전복에 대해 쿠데타라고 언급하지 않았고 지원도 계속해왔다. 미국은 온두라스 입장에선 최대 지원국이자, 교역국이다. 2017년 미국은 온두라스에 1억8170만 달러(약 2053억 원)를 지원했다.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지원금이 줄어드는 추세이긴 하지만 온두라스 연간 정부 예산은 100억 달러가 안 되기 때문에 적지 않은 돈이다.

아직도 온두라스에서는 "선거를 도둑맞았다"면서 대통령 선거 재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야권과 시민들은 20일 부로 1주일간의 시위에 들어갔다고 이날 스페인 통신사 EFE가 보도했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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