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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9 (월)

[fn스트리트] 임세원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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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에서는 기부, 공동체에 대한 헌신은 지도층의 덕목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1·2차 세계대전 때 영국의 고위층 자제가 다니던 이튼칼리지 출신 중 2000여명이 전사한 게 상징적 사례다. 미국에서도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전 회장,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 등 당대 부호들이 카네기·록펠러 재단 등이 뿌린 유서 깊은 자선활동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전통을 프랑스 정치가 가스통 피에르 마르크가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로 이름 지었다. 부와 명예든, 권력이든 '가진 자에게 요구되는 도덕적 책무'라는 정의였다. 그 어원은 그리스·로마 시대 사회 고위층 인사들의 높은 도덕성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게 다수설이다. 혹자는 그리스·로마 사상인 헬레니즘(Hellenism)과 함께 서양 문화의 양대 흐름인 그리스도교 사상, 즉 헤브라이즘(Hebraism)에서 기원을 찾는다. 하긴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 취임사의 "많은 걸 받은 사람은 많은 책무가 요구된다"란 표현도 누가복음 12장 48절에서 따왔다.

얼마 전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진료 중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숨졌다. 그의 유족들이 조의금 1억원을 기부했다는 소식이 뒤늦게 알려졌다. 전액을 기부받은 대한정신건강재단이 20일 "안전한 진료환경과 마음이 아픈 사람이 편견과 차별 없이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고인의 유지"라는 기부 취지를 전하면서다. 학회는 이 기부금을 토대로 정신의학계 후학 육성을 위해 '임세원상'을 제정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한다.

고인은 불의의 사고 당시에도 살신성인의 자세를 보여줬다. 자신보다 동료 간호사의 안위를 살피다가 유명을 달리하지 않았나. 갈수록 팍팍해지는 듯한 세태다. 인사청문회 때마다 고위직 후보자들이 이런저런 모럴해저드가 드러나고, 불우이웃을 돕는 자선의 손길도 시들해지면서다. 창졸간 피붙이를 잃은 유족들이 고인의 유지를 살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다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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