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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지방 사립대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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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윤 건양대학교 병원경영학과 교수

충청일보

[안상윤 건양대학교 병원경영학과 교수] 비관적 예측이 낙관적 예측보다 현실로 다가올 확률은 두 배 정도 더 높다. 그 이유는 비관적 예측은 냉정한 현실에 근거해 있고 낙관적 예측은 기대 섞인 상상에 의존해 있기 때문이다. 2020년 이후 지방 사립대의 대거 소멸은 이미 10년 전부터 고교생 감소 추이와 정치⋅경제⋅문화 권력의 서울집중 현상에 따라 예견되었던 사실이다. 일찌감치 살길을 찾아 지방캠퍼스를 버리고 수도권으로 떠난 일부 대학들은 입시위기에서는 벗어났다는 평가이다. 그것은 분명히 미래의 생존을 위해 현재의 이익을 과감히 포기한 '사즉생(死卽生)' 전략의 대가이리라.

지방 사립대들이 2019학년도 신입생 모집에서는 그래도 가까스로 선방할 수 있으리라는 예상은 여지없이 깨졌다. 비인기 학과들을 중심으로 대거 미달사태를 빚거나 작년보다 평균 2대 1 정도는 경쟁률이 낮아졌다는 것이 입시학원가의 분석이다. 그 이유는 수험생들이 지방 사립대를 선택하기보다는 내년에 수도권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재수전략을 택했기 때문이다. 지금 서울의 재수학원가는 예상치 못한 초호황을 누리고 있다.

종말의 그림자는 저 남쪽의 지방대들부터 습격하고 있다. 실제 한 대도시에 위치한 전문대는 5년 전 일부 공과계열 학과들을 폐과시키고 보건계열 학과로 전환했으나 지난해부터 미달 인원이 40%가 넘었다. 한 4년제 대학의 비인기학과는 1학년 47명을 모집했는데 3학년 시작 때 27명밖에 남지 않았다. 나머지 20명이 재수, 편입, 학업포기 등의 이유로 학과를 등진 것이다. 역시 지방 대도시에서 정시 신입생 400여명을 선발하는 한 4년제 사립대는 100명 정도가 아예 미달되었다. 학생 100명의 1년 등록금은 약 7억 원이고 4년이면 30억 원이다. 이런 재정손실은 앞으로 눈덩이처럼 커질 것이다.

특히 대학역량평가에서 탈락한 사립대들은 체력약화와 함께 이런저런 이유로 위기에 휩싸여 있다. 평가탈락의 책임소재 문제로 갈등을 겪기도 하고, 이해집단이 뒤엉켜 명분싸움이나 권력투쟁을 벌이기도 한다. 쇠퇴하는 조직이 결국 망하는 이유는 대통합보다는 내부 구성원 간의 총질 때문이라는 사실은 익히 잘 알려져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재학생들은 여차하면 다른 대학으로 편입해 달아날 태세이다.

지방 사립대 구성원 대부분은 성실하게 자신의 맡은 바 직분을 다하고 있다. 묵묵히 열심히 일하면 조직은 저절로 발전할 것이라고 믿는 듯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망한 조직의 구성원들은 늘 이렇게 말한다. "나는 정말 묵묵히 열심히 일했어. 그런데 어느 날 보니 조직이 망해서 문을 닫아버렸어! 도대체, 누구 책임이야?" 조직이 망하는 것은 그 누구의 책임도 아닌 동시에 모두의 책임이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시장이 외면하면 조직은 망한다.

망하는 것을 피하는 방법은 분명히 있다. 당연히 지방 사립대 중 절반은 살아남을 것이다. 하지만 살아남을 수 있는 조건이 있다. 판을 새로 짜야 하고 희생이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실천적 창조적 파괴가 요구된다. 그러나 누가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으랴? 결국 지방 사립대의 생사는 주체가 아니라 객체인 수험생의 선택에 달려있는 셈이다.

충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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