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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태평로] 美·이스라엘 공직자들의 '직업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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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션스 美 법무장관 쫓겨나고 FBI 국장들 연쇄 경질돼도 물러서지 않고 '원칙' 지켜

이런 가치관이 세상 전진시켜

조선일보

조중식 국제부장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는 총리를 두 번 지내며 14년째 장기 집권 중이다. 그를 이스라엘 검찰과 경찰이 3년째 물고 늘어지고 있다. 지난달엔 경찰이 또 네타냐후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1년 사이 세 번째 기소 의견 송치다. 이번엔 통신업체에 규제 완화 혜택을 주고, 그 업체 계열 신문사에 정권 홍보 기사를 쓰게 했다는 혐의다. 검찰은 더 독하다. 네타냐후 부인이 총리 공관에 전속 요리사가 있는데도 3년간 외부 식당에서 약 1억원어치 음식을 주문해 세금을 유용했다는 혐의로 기소했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진행되고 있다. 뉴욕 남부 연방검찰이 트럼프 대통령 취임준비위원회의 모금과 자금 유용 혐의를 수사하고 있다. 취임준비위에 100만달러를 기부한 사람이 트럼프 정부로부터 50억달러의 대출 지원을 받은 과정을 뒤지고 있다. 트럼프 개인 변호사였던 마이클 코언을 기소해 3년 징역형을 받도록 한 것도 뉴욕 남부 검찰이다. 그가 트럼프와 성관계를 가진 여성 2명에게 대선 운동 기간 폭로하지 못하도록 돈을 지불한 것을 밝혀냈다.

뉴욕 남부 검찰청 수장(首長)은 트럼프가 임명한 제프리 버먼이다. 전 청장을 "오바마 사람"이라며 자르고 새로 앉힌 인물이다. 그런 버먼이 트럼프의 뒤통수를 쳤다. 트럼프 관련 수사가 시작되자, "그 사건 수사 지휘에는 관여하지 않겠다"고 발표해 버렸다. 트럼프 정부의 초대 법무장관으로 임명된 제프 세션스도 마찬가지다. 그는 트럼프 대선 승리의 '일등 공신'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러시아 스캔들' 수사가 시작되자, 그 사건 수사 지휘에서는 손을 떼겠다고 선언했다. 트럼프는 그를 계속 비난하다가 결국 경질했다.

이스라엘과 미국의 검경은 어떻게 살아 있는 권력에 가을 서릿발(秋霜) 같을 수 있을까. 권력의 언저리에만 가도 봄바람(春風)처럼 포근하기만 한 검찰과 경찰의 행태만 봐온 터라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라고 권력에 휘둘리지 않을까. 제임스 코미 전 FBI 국장, 뒤를 이은 앤드루 매케이브 전 FBI 국장대행이 트럼프에 의해 모욕적으로 경질된 것을 보면 그들도 마찬가지다. 매케이브는 연금 수령 조건을 충족하기 불과 26시간 전에 해고됐다.

물론 전통과 문화, 제도적인 배경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버먼, 세션스, 코미, 매케이브 사례를 보면 더 본질적인 것은 '직업정신'이다. 그 업(業)과 직(職)이 요구하는 원칙을 지키려다 보니, 모욕당한 전임자를 목격하고도 그 길을 따라 걸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직업이 요구하는 원칙과 가치에 어긋나거나 지킬 수 없을 때는 직(職)을 버렸다.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이 그랬다.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인 시리아의 미군 철수 명령을 따르는 것 대신 "당신은 자신과 더 잘 맞는 생각을 가진 국방장관을 가질 권리가 있다"는 편지를 보내고 사임했다.

원칙과 가치에 충실한 사람의 장렬한 퇴장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트럼프의 시리아 미군 '즉각 철수' 명령은 시간이 지나면서 "천천히 철수"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직을 던진 매티스의 반대에 여론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현업에 있는 직업인들, 전문가들이 뚜렷한 직업정신을 갖고 행동하니 여론이 변한 것이다.

정권 교체와 제도 개편도 세상을 변화시킨다. 그 변화가 꼭 진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앞으로 전진시키는 더 확실한 힘은 각양의 직업인들이 자신의 현장에서 직업정신을 구현해내는 일이다. 최근 몇 건의 내부 고발 사건과 사람 사냥하듯 진행되는 검찰 수사, 직분에 맞지 않게 처신한 몇몇 군인들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조중식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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