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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조용헌 살롱] [1178] 大伽倻 古墳과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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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콘텐츠학


오래된 무덤을 보면서 배운다. ‘인생은 이렇게 끝나는 것이구나!’ 죽은 자와 산 자의 대화가 이루어지는 곳이 무덤이다. 경북 고령의 지산동 산자락에 둥그렇게 솟아 있는 대가야 시대의 봉분들은 지금부터 1500년 전인 5~6세기에 조성된 무덤들이다.

왜 이 산자락에다 집중적으로 왕과 귀족들의 묏자리를 썼을까? 이 시기는 도선국사 풍수가 유행하기 훨씬 전이다. 400년 무렵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73호 고분은 이산(耳山)에서 내려온 중앙 자락이 아니고 곁가지 자락에 자리를 잡았다. 이게 고단자의 솜씨이다. 곁가지 줄기에 명당이 많기 때문이다.

73호분은 앞의 안산(案山)도 좋고, 청룡 백호도 좋다. 풍수 이론은 몰랐겠지만 땅의 서기(瑞氣)를 눈으로 보고 몸으로 감지했던 고대의 제사장들이 잡았던 터임에 틀림없다. 이 고분군이 자리 잡은 산 이름이 왜 하필 이산(耳山)일까? 성터의 모양이 귀[耳]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라고 하지만, 필자 해석으로는 이산의 할아버지 산에 해당하는 합천 가야산 때문이다.

가야산에는 대가야의 시조모(始祖母)이자 여산신인 정견묘주(正見妙主)가 살고 있다고 믿었다. 원래 가야산 해인사 터는 불교가 들어오기 이전에 대가야의 시조모를 제사 지내는 신전 터였을지도 모른다. 앞일을 정확하게 내다보는 신령스러운 할머니가 바로 정견묘주였다. 고대의 제사장들은 대개 여자가 많았던 것이다. 이산에서 보면 가야산이 잘 보이는 멀지 않은 거리이고 지맥이 연결되어 있다. 가야산에 신령스럽게 계시는 정견묘주가 보내주는 메시지를 귀로 잘 들을 수 있는 산이 이산 아닐까. 이산은 정견묘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신령한 산이었다. 그래서 여기에다가 대가야의 왕들과 집권층의 묘가 집중되지 않았을까.

일본 건국 신화의 신들이 살던 고향이 고천원(高天原)인데, 일본의 고대언어학자 마부치 가즈오(馬淵和夫) 교수는 이 고천원이 경북 고령이라고 주장한다. 가야산 정견묘주의 메시지가 들리는 고령의 이산이야말로 신들의 고향이다.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콘텐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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