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7 (토)

반려견과 함께 알프스 170㎞…그 짜릿함이란!

댓글 2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애니멀피플]

몽블랑 트레일 완주한 ‘프로등산러’ 반려견 장군이와 이수경씨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우리의 여행은 붉은 노을을 커튼 삼아, 은하수를 조명 삼아 함께 춤을 추는 것.”

사람 혼자서도 힘든 ‘투르 드 몽블랑’(Tour de Mont Blanc) 트레킹 170㎞를 반려인과 함께 완주한 개가 있다. 등산·백패킹이 취미인 이수경씨와 현재 7살이 된 골든리트리버 장군이의 이야기다. 이들은 제주도 등 전국 산과 바다, 계곡을 누비는 모습을 기록한 일상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로 공유해 23만6천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인스타 스타’이기도 하다.

이런 수경씨와 장군이가 지난해 9월 10박11일의 일정으로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위스 국경을 가로지르는 알프스 산맥 최고봉인 몽블랑(4810m) 둘레길을 완주했다. 6주간의 유럽여행을 마치며 수경씨는 “이 여행이 성공적일 수 있었던 것은 장군이 너와 함께였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16일 서울 송파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이번 여행은 특히 서로가 더 닮아가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국내 백패킹만도 100회가 넘는 ‘프로등산러’인 이들의 첫 국외 원정 트레킹과 여행 이야기를 들어봤다.

_______
‘가족의 개’에서 ‘절친’으로


-장군이와의 여행,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고등학교 2학년 때 다리가 부러졌어요. 제가 워낙 활동적인 성격인데 깁스를 하고 있으니 너무 답답한 거예요. 깁스를 하고도 자전거를 타고 다닐 정도였죠. 장군이랑은 이때 산책하면서 친해졌어요. 이전에는 그냥 ‘가족의 개’였다면 이때부터는 매일 산책하면서 ‘절친’이 된 거죠. 고 3 때는 야자 끝나고 밤 11시에 와서도 장군이 산책시키려고 동네 골목에서 뛰어놀고 그랬어요.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대학에 들어가니 국토대장정 같은 것을 떠나더라고요. 대장정을 떠나면 거의 한 달 동안은 장군이 산책을 못 하니까 그럴 바에는 아예 같이 걸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그렇게 시작된 첫 여행이 제주 올레길 걷기였어요. 제가 스무살, 장군이는 3살 때였죠. 그때 1코스부터 10코스까지 열흘 동안 약 200㎞를 완주했어요.”

-반려견과의 여행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처음엔 고생 많이 했어요. 모자도 안 가져가서 태양 볕 때문에 고생하고, 장군이 밥그릇도 안 가져가서 종이컵에 밥 주고 그랬죠. 숙식도 게스트하우스에서 해결했어요. 반려견 동반 가능한 숙소를 알아보고 장군이는 마당에서 재우고. 잘 지낼 수 있을까 걱정 많았는데 장군이가 어디 가서나 잘 자고, 잘 따라줬어요. 수능 마치고 3~4개월간 많이 친해져 있어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_______
여행을 아는 반려견


-그때 이후 꾸준히 여행을 다니게 된 이유가 있나요?

“서울에 다시 오니까 장군이가 며칠간 실의에 빠져있는 거예요. 그때 ‘아, 얘도 여행이란 게 어떤지 아는구나’하고 깨닫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그 해 여름방학 때 아예 제주도 승마장에서 알바를 시작했어요. 두 달간 승마장에서 먹고 자면서 일하고, 장군이랑 같이 제주도 구석구석을 누볐죠.”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아예 숙식을 직접 해결하는 백패킹을 시작했군요?

“한국에서는 대부분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못하니까, 오빠 차를 빌려서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애견 전용 동반 캠핑장에서 자보고, 다음엔 거제도 내려가서 해수욕장 캠핑을 해보고, 또 그러다가 점차 온전한 백패킹을 하게 됐어요. 이전부터 장군이랑 산에 다녔으니까 이번에도 장군이랑 가면 되겠다 생각했어요. 저는 제 가방 메고, 장군이는 자기 사료 든 가방 메고.”

-그러다가 점점 반경이 넓어진 거네요. 유럽까지.

“처음부터 꼭 유럽을 가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어요. 장군이와의 여행이 쌓이다 보니 자연히 국외여행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 국내 어디를 가도 첫 여행 때처럼 고생스럽지도 않고 설렘도 덜한 거예요. 처음 느꼈던 미숙하고 설던 그 느낌을 되찾고 싶었어요. 그러다가 몽블랑 트레킹을 접하게 됐어요.”




-왜 몽블랑 트레킹이었나요?

“장군이 나이가 이제 7살, 더 늦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고 싶다. 꼭 가야겠다. 지금이 기회다 생각했죠. 원래 몽블랑 트레킹 성수기는 6월 말~8월까지인데, 저희는 더위를 많이 타는 장군이를 생각해서 9월 중순을 택했어요. 거의 시즌오프 기간이라 산장들이 거의 문을 닫는 시기였죠. 그래서 씻고 먹고 자는 것은 아예 기대 않고 열흘치 장군이 사료와 제 동결건조 식량까지 20㎏ 달하는 배낭에 짊어지고 갔어요.”

한겨레

-고생스러웠을 것 같은데요.

“처음에는 배낭 허리벨트를 너무 졸라매서 허벅지에 피가 통하지 않아서 상, 하체가 분리된 것 같았어요. 그래도 며칠 걸으니 고통도 점점 사라지고 점점 가방도 가벼워져서 다행이었죠. 3일 차 밤에는 문 닫은 산장 앞에서 홀로 캠핑을 했는데, 해가 지자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는 거예요. 너무너무 추워서 옷을 죄다 껴입고 장군이도 추울 것 같아서 서로 껴안고 잤어요. 일정의 마지막 날엔 해발고도 2600m에서 텐트 폴대가 망가진 걸 뒤늦게 알아차린 거예요. 챙겨간 케이블 타이와 부목이 없었더라면 어찌할 뻔 했는지. 아찔한 밤이었어요.”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장군이는 어땠나요.

“먼 길을 오래 걸어서 힘들 텐데도 장군이는 엄청 좋아했어요. 제가 보면 그냥 광활한 들판 같은 언덕인데 새로운 냄새가 나타나면 하나라도 더 맡으려고 하고, 숨겨뒀던 사냥 본능이 나타나는지 여기저기 누비고 다니더라고요. 힘들어도 좋아하는 것이 그대로 느껴진달까. 억지로 따라오고 그런 게 아니라 올레길 걸을 때 느꼈던 것처럼 여행이란 걸 알고, 완주라는 개념이 있는 것 같았어요. 끝까지 같이 간다, 그런 짜릿함이요.”

_______
장군이의 다음 여행지는?


-장군이의 의젓한 성격이 반영된 게 아닐까요.

“많은 분이 장군이는 얌전하다, 잘 걷는다, 말 잘 듣는다 그렇게들 말씀하시는데 그건 산책에 대한 모자람이 없어서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와 산책 나왔다, 신나’ 이런 게 아니고, 당연히 매일 밤 산책을 하고 제가 옷을 입으면 벌써 자기도 같이 나가는구나 아니까요. 서로 알고 있는 거죠. 그러다 보니 편안하고.”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경험이 곧 훈련이 됐군요.

“많이 같이 해봐서 수월했던 거라고 생각해요. 처음 제주도 여행 때는 짧은 구간에 있는 임시 다리를 건너는 것도 어려워해서 그 앞에서 10분간 망설인 적도 있어요. 제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 기다려줬어요. 그랬더니 처음으로 장군이 스스로 용기를 냈고 성공한 거예요. 그때부터 조금씩 조금씩 장군이에게도 성취감이 생겼던 것 같아요. 이제는 바위산도 엉덩이만 받쳐주면 잘 올라가요. 몽블랑 트레일에서도 2m 직벽을 오르는 구간이 있는데, 못 올라가면 어쩌나 했는데 뒤에서 엉덩이를 밀어주니 올라가더라고요.”

-다음 도전이 궁금해지는데요?

“장군이와의 몽블랑 여행기를 책으로 쓰고 있어요. 올 봄에 출간 예정이고요. 올 여름엔 미국으로 트레일러 캠핑을 떠날 계획이에요. 이번에는 장군이와 미국의 캐년을 보고 올 거예요. 장군이는 좀 막 굴려야 해요.”(웃음)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네이버 메인에서 한겨레 받아보기]
[▶한겨레 정기구독] [▶영상+]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