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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박일호의미술여행] 설경이 그리운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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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트인 설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언덕 위에는 개를 데리고 사냥에 나서는 사람이 있고, 그 옆의 사람은 농사일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언덕 아래 있는 집 지붕 위도 눈으로 하얗게 덮였고, 꽁꽁 언 호수 위 에서 사람들이 낚시와 놀이에 열중하고 있다. 그 옆 눈덮인 길을 따라 마을을 지나 멀리 보이는 산으로 향하다 보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하늘을 날고 있는 새가 마치 우리의 시선을 이끌고 있는 듯하다. 이 그림은 ‘사냥꾼의 귀가’로도 불리는 16세기 네덜란드 화가 대(大) 피터 브뤼겔의 겨울 풍경화이다. 아들도 같은 이름의 화가였기에 아버지 이름에는 대(大) 자를, 아들 이름에는 소(小) 자를 붙인다.

세계일보

대 피터 브뤼겔 ‘눈속의 사냥꾼’


서양의 근대는 16세기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에서 시작됐다. 르네상스의 휴머니즘이 인간 중심의 세계에 관심을 두면서 문화예술에서 근대로의 전환을 이뤘다면, 종교는 종교개혁을 통해서였다. 종교개혁은 종교적인 제도와 의식보다 인간 개인의 신앙생활을 강조한 점에서 르네상스의 휴머니즘 정신을 적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북유럽에서 시작된 종교개혁과 신교와 구교의 분리는 미술에도 영향을 끼쳤다. 신교 교회가 교회 안의 회화나 조각을 우상숭배로 금지했기에 신교권 국가 미술가들은 가장 큰 수입원인 교회의 미술작품이란 일거리를 잃게 됐다. 신교 교회가 반대하지 않는 영역을 개척해야만 했고, 그중 하나가 풍속화였다.

브뤼겔은 구교권 국가의 장식적인 미술과 달리 일상적인 풍경을 그려 관심을 끌었다. 표현 방식에서도 브뤼겔은 가까이 있는 사람과 사물을 크고 또렷하게 나타냈고, 멀리 보이는 산과 마을을 작고 흐릿하게 나타냈다. 브뤼겔의 풍속화를 시작으로 북유럽에서 초상화, 풍경화, 삽화 등 다양한 미술작품이 펼쳐졌다.

미세먼지로 전국이 몸살을 앓고 있다. 눈이라도 내려 미세먼지가 씻겨 내려가면 답답함이 덜하려나. 설경이 그리운 1월 아침 브뤼겔의 그림을 보며 생각에 잠겨 본다.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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