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지난해 한글 공부를 시작했다가 흐지부지된 경험이 있다. 시간이 흐른 만큼 아이가 여러 면에서 성장했지만 공부 이야기를 꺼내려니 걱정되는 점이 있다. 한 번의 실패였을 뿐인데 아이가 한글 공부가 어렵다고 여기는 눈치기 때문이다. 아이가 여섯 살이 되자 한글을 익힌 친구들이 점점 늘어났다. 자신이 먼저 의사를 밝힌 만큼 우리 아이도 다른 친구들처럼 잘 해내겠거니 기대했다.
우선 낱말카드를 이용해 놀이처럼 접근하려고 했고 집에 한글 벽보를 붙여 자연스럽게 한글에 노출되도록 이끌었다. 이후 엄마표 한글 교육서로 입소문 난 책을 사서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불과 며칠 뒤 아무 소득 없이 공부를 접고 말았다. 엄마가 잘한다 칭찬해도 어린아이에게는 벅찬 공부였다. 아이로서는 힘든 공부를 고집할 이유가 없으니 포기가 빨랐다. 과감하게 더 밀어부칠 수도 있었겠지만 하기 싫다는 공부를 억지로 시키고 싶지 않아서 쿨하게(!) 책장을 덮었다.
'넌 할 수 있어'라는 말이 힘이 될 때도 많지만 한편으로는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도 사실이다. 우격다짐으로 할 수 있다, 밀어넣기보다 못해도 되고 다른 선택지도 있다는 걸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다. 하지만 이 때문에 아이가 근성을 갖고 도전하기보다 쉽게 포기를 선택할까 걱정도 된다.
아이를 훈육할 때 때때로 고민에 빠지는 지점이다. 여러 선택지 사이에서 엄마는 줄타기하듯 고민을 이어간다. 아이를 한 해 두 해 키울수록 육아의 지혜가 커질 줄 알았는데 아이 키우는 일은 어느 것 하나 수월한 게 없다.
한글 공부, 고군분투한 흔적 ⓒ한희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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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출발은 여기서부터다. 시작은 미약했지만 결과는 놀라웠다. 이후 아이는 다양한 점의 세계에 빠져 멋진 작품을 만들어낸다. 그림책 마지막에 이르면 점 작품들로 가득한 전시장이 펼쳐진다. 아이의 발전에 마음이 찡해진다. 교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그림책이지만 부모에게도 역시 유의미한 책이다. 부모로서 아이를 북돋아줘야 하는 수많은 순간 어떠한 자세를 견지해야 좋을지 생각해보게끔 이끈다.
며칠 전부터 아이에게 다시 이름 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이제는 꽤 많이 써봤음에도 아이는 제 이름 석 자 쓰기를 어려워한다. 특히 받침이 있는 자는 내가 먼저 시범을 보이고 바로 따라서 써보라고 해도 망설인다. 획 하나씩 알려주는데도 쉽게 연필을 움직이지 못하니 답답하다. 아이가 머뭇거리는 이 순간 나에게 필요한 건 재촉하지 않는 것, 그리고 내가 기다리고 있음을 아이에게 내색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이런 순간이 반복되더라도 인내하는 것이다. 글씨를 썼다기보다 그렸다고 보는 게 옳은 결과물을 아이가 내놓더라도 칭찬으로 힘을 실어주는 일도 엄마 선생님인 내 몫이다. 하얀 도화지를 보고 '눈보라 속에 있는 북극곰'을 발견하는 엄마, 새로운 배움 앞에서 아득함을 느낄 아이에게 점을 찍을 수 있게 용기를 주는 엄마가 돼야지 다짐해본다.
올 한 해 아이와 지지고 볶다 보면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결국 한글을 배울 수 있으리라 믿는다. 지난해 도전을 통해 아이가 한글을 많이 익혔다면 나는 영어라든가 수학이라든가 다른 공부에 눈을 돌렸을 것이다.
아이에게 공부 스트레스를 안 주고 싶다, 노는 게 최고다,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아이가 잘하는데 욕심을 안 냈을 거라고 자신할 수 없다. 한글 공부가 늦은 덕분에 아이는 공부에 힘빼지 않고 한 해 더 즐겁게 놀았다. 또래 친구들보다 뒤처졌지만 충분한 보상이다.
*칼럼니스트 한희숙은 좋은 그림책을 아이가 알아봐 주지 못할 때 발을 동동 구르는 아기엄마이다. 수년간 편집자로 남의 글만 만지다가 운 좋게 자기 글을 쓰게 된 아기엄마이기도 하다. 되짚어 육아일기 쓰기 딱 좋은 나이, 일곱 살 장난꾸러기를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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