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7 (토)

할리우드 스타는 왜 유축기 화보를 찍었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파격 화보에 담긴 워킹맘의 애환에 공감 줄이어
WHO 생후 6개월 완전 모유 수유 권고하지만, 현실 녹록지 않아

조선일보

명품 옷을 입고 양 가슴에 유축기를 단 레이첼 맥아담스의 패션 화보./인스타그램


지난달 할리우드 배우 레이첼 맥아담스의 사진이 소셜미디어를 뜨겁게 달궜다. 영화 ‘노트북’ ‘어바웃 타임’ 등으로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배우다. 사진에서 그는 짙은 화장에 명품 재킷을 걸치고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착용한 채 양쪽 가슴에 유축기를 달았다.

다소 파격적인 이 사진엔 사연이 있다. 지난해 4월 아들을 출산한 레이첼 맥아담스는 한 잡지 사진 촬영 현장에서 모유 수유를 위해 유축기를 사용했고, 이 모습을 본 사진작가가 연출을 제안한 것이다. 작가는 "모유수유는 세상에서 가장 정상적인 일인데, 왜 그것에 눈살을 찌푸리거나 두려워하느냐"며 촬영 이유를 밝혔다. 이에 많은 사람이 공감했고, 일부 여성들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화보를 흉내 낸 사진을 찍어 올렸다. 지난 10월 딸을 출산한 배우 힐러리 더프도 유축기를 착용한 자신의 사진과 맥아담스의 사진을 나란히 배치해 지지를 표했다.

◇ 모유 수유가 좋다는데, 현실은…

모유 수유는 아기와 엄마 모두의 건강에 유익한 것으로 알려진다. 모유 수유를 받은 아동이 인공 수유를 받은 아동에 비해 호흡기 질환이나 소화기계 질환, 변비, 습진, 알레르기 질환에 걸리는 비율이 낮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따라서 세계보건기구(WHO)는 생후 6개월 동안 모유만을 먹이는 것(원전 모유 수유)을 권장하며, 2025년까지 이 수치를 50%까지 올린다는 목표도 세웠다.

하지만 현실에서 모유수유를 하는 데는 많은 제약이 따른다. 특히 공공장소에서의 모유 수유는 ‘가슴 노출’을 이유로 종종 논란이 된다. 식당에서 모유수유를 하던 여성이 직원에게 화장실이나 다른 층으로 갈 것을 요구받거나, 비행기 안에서 아이에게 젖을 먹이던 엄마가 옆자리 승객에게 "역겹다" "내 남자친구를 유혹하려 한다"라고 폭언을 듣는 식이다. 이는 양성평등 지수가 높다는 서양에서도 마찬가지. 사진·영상 공유 SNS 인스타그램이 모유 수유 사진을 음란물이 아닌 정상적인(?) 게시물로 허용한 것도 2015년이다.

조선일보

배우 힐러리 더프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레이첼 맥아담스와 화보와 유축하는 자신의 사진을 함께 올렸다. 이 게시물엔 93만 개가 넘는 ‘하트’가 달렸다./힐러리 더프 인스타그램


일하는 엄마는 더 어렵다. 완전 모유 수유가 좋다지만, 6개월 이상 출산 휴가를 낼 수 있는 여성은 소수에 불과하다. 이런 가운데 유축기는 엄마 역할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로 쓰인다. 1991년 처음 유축기가 등장한 이후, 유축기 시장은 급성장해 2022년 30억 달러(약 3조4000억원)까지 커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유축기를 들고 다니며 수유하는 게 번거롭고, 직장 내 수유 공간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화장실이나 후미진 창고에서 몰래 유축해야 하는 등 이마저도 쉽지 않다. 그런 탓에 생후 6개월간 완전 모유 수유율은 세계적으로 38%(2013년 기준)에 불과하다.

◇ 모유 수유, 이제 당당하게 하자

인식도 제도도 따라주지 않자 엄마들이 나섰다. 최근 소셜미디어에서는 모유 수유 정상화(#normalizebreastfeeding) 캠페인이 확산되고 있다. 엄마라면 언제 어디서든 당당하게 모유 수유를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자는 운동인데, 인스타그램에서 이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만도 28만7천 건에 달한다. 모유 수유하는 사진을 직접 올린다고 해 ‘브렐피(brealfie, 모유 수유(breastfeeding)와 셀피(selfie)의 합성어)’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대부분 아이에게 젖을 물리거나 유축기로 젖을 짜내는 엄마들의 모습으로, 수유 장소도 침실, 식당, 마트, 해변가 등으로 다양하다. 가슴을 드러냈지만 민망하고 어색하기보다, 숭고하고 행복해 보인다.

조선일보

지난해 미국 매체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가 주최한 수영복 패션쇼에서 모델 마라 마틴이 5개월 된 딸을 안고 모유 수유를 하며 무대에 올랐다. 행사가 지연되고 수유 시간이 가까워져 오자, 주최 측이 이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다./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인스타그램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유명인들도 동참했다. 영화 ‘반지의 제왕’으로 유명한 할리우드 배우 리브 타일러, 모델 지젤 번천과 나탈리아 보디아노바 등이 모유 수유 모습을 공개했으며, 캐나다의 카리나 굴드 민주제도 장관은 의회 질의응답 중 아이에게 젖을 물렸다. 지난해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한 수영복 패션쇼에서는 아이의 귀에 소음 제거 헤드폰을 착용한 채 모유수유를 하며 런웨이를 걷는 엄마가 등장하기도 했다. 국내 배우 봉태규도 아내의 모유 수유 모습을 공개해 화제를 모았다.

이런 흐름 뒤에는 모유 수유를 권장하면서도, 관련 정책에는 소극적인 정부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담겨 있다. 실제로 지난해 세계보건기구총회에서는 미국이 자국의 분유 이유식 업체의 이익 보호를 위해 모유 수유 결의안에 반대한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안긴 바 있다.

[김은영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