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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구민 휴양시설 매입, 새로운 복지 패러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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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다선의 힘, 구정의 완성ㅣ 성장현 용산구청장

20대에 용산 정착, 구청장 네 번째

지난해 4월 개원 용산 제주유스호스텔

반대 뚫고 과감 매입 자랑스러워

369억원 25필지 구 재산 되찾아

자활 겸한 치매안심마을 국·시비 확보

옛 철도병원 터에 역사박물관 건립 계획

퀴논시와 20년 우정 경제 교류로 발전

3연임 이후 출마 금지 규정, 폐기 마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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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현(64) 용산구청장은 보수 성향이 강한 용산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네 번째 구청장을 하고 있다. 용산에서만 40년 살며 아홉 번 선거를 치렀다. 용산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도, 그가 모르는 사람도 없다 할 정도다. 그는 지난해 6월 민선 7기 지방선거에서 ‘더불어 잘사는 용산시대’를 슬로건으로 당선된 데 이어 서울시 구청장협의회와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대표회장직까지 맡았다. 성 구청장은 “선수(4연속 재임) 제한으로 이번이 마지막 임기지만, 시대가 또 역할을 부여하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며 “용산구 자체 사업은 물론 서울시, 중앙정부와 함께 풀어야 할 현안들을 차질 없이 추진해 구민 모두가 ‘더불어 잘사는 용산 시대’를 완성해나가겠다”고 다짐한다.

지난해 지방선거 승리로 3연속 당선에 성공했다. 여기에다 서울시 구청장협의회장, 전국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장까지 맡게 됐다.

“초대·2대 구의원에 이어 1998년 최연소(43살)로 용산구청장에 당선됐다. 지인에게 밥 한 끼 사려 했던 것이 선거법에 걸린다고 해서 2년 만에 자리를 내놓고 꼬박 10년 동안 야인으로 보냈지만, 그 시간을 헛되이 하지 않았기에 다시 구민의 부름을 받을 수 있었다. 용산구는 조상(사육신 성삼문이 용산의 새남터에서 순절했다)의 충의와 절개가 서린 곳이다. 20대 초반 처음 용산에 정착해서 구청장을 네 번이나 하게 된 것도 다 하늘의 뜻이었다고 믿는다. 다행히 지난 10년간 단 한 번의 큰 사고도, 주민 시위도 용산에서는 없었다. 각종 지역 개발 사업 과제들도 대부분 순조롭게 진척됐다. 이런 점들을 구민들께서 높이 평가해주셨다고 생각한다.”

말씀하신 대로 4선의 경륜을 자랑한다. 그동안의 성과 중 가장 자랑할 만한 일을 소개한다면?

“용산구 자매도시인 제주도 서귀포시에 구민 휴양 시설(용산 제주유스호스텔)을 개원했다. 지난해 4월16일 개관한 이래 지금까지 용산구민 2만6천여 명이 다녀갔을 만큼 구민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 구가 다른 지역에 구민 휴양시설을 짓는 일은 처음 하는 일이라 우려와 반대가 있었지만, 구민들을 위해 과감하게 일을 펼치고 싶었다. 용산은 개발 이슈가 많은 동네다. 그동안 개발 지역에 포함된 구유지를 팔아 생긴 대금을 일반 예산에 넣어 사용해왔는데, 저는 이 돈을 그냥 쓰는 것보다 다시 땅에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치구 최초로 ‘공유재산 관리기금 조례’를 만들고 자산을 모아 그 돈으로 제주도에 터와 건물을 살 수 있었다. 구민들이 수준 높은 휴양 시설을 매우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면 이 또한 새로운 복지 패러다임이 아닐까 한다.”

숨어 있거나, 점유당해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구 재산을 발굴해 환수하는 일도 벌인 것으로 안다.

“구청장은 행정뿐 아니라 경영자도 되어야 하는 시대다. 용산에는 국방부 등 외부기관에 점유된 땅이 많다. 2012년부터 그런 숨은 재산 찾기에 나섰다. 25개 필지를 반환받는 등 총 369억원 상당의 재산을 되찾는 성과를 올렸으며, 한 평의 땅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용산구 재산 현황> 책자를 발간했다.”

새로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으로는 어떤 것이 있는가? 치매 문제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다.

“전국 최초로 치매안심마을을 추진하고 있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했다. 65살 이상 어르신 중에서 치매 환자가 10%에 이를 정도로 치매는 이미 심각한 사회적 문제다. 용산은 전체 인구의 16%가 어르신으로, 통제와 격리 위주의 요양 시설이 아닌 일상의 삶을 누릴 수 있는 치매안심마을(가칭)을 통해 치매에 선제적으로 대응키로 했다. 양주 옛 휴양소 터에 건립 예정인 치매안심마을은 전문 요양보호사와 치매 환자가 텃밭도 가꾸고 일상적인 생활을 즐기면서 치료를 병행하는 마을이다. 이미 국·시비 보조금 47억원을 확보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치매를 국가 책임으로 자임하고 있는 만큼 더 많은 예산 확보를 기대하고 있다.”

용산은 이태원 등 다양한 나라의 문화가 공존하는 지역인데, 최근 역사박물관 건립을 계획하고 있다. 취지가 궁금하다.

“용산 기지, 효창공원, 전쟁기념관 등 대한민국 근현대 100년의 역사는 용산을 빼고는 말할 수 없다. 민선 5기부터 용산구 슬로건이 ‘세계의 중심, 이제는 용산 시대’다. 세계 중심도시로 도약하기 위한 성장 동력을 역사, 문화, 그리고 관광에서 찾았다. 용산구는 그동안 효창공원 의열사 재정비, 유관순 열사 추모비 건립, 이봉창 의사 기념관 건립 추진 등 역사 사업에 심혈을 기울여왔다. 이와 더불어 용산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재조명하고, 기록에 남기기로 했다. 옛 철도병원 터에 용산 역사박물관을 지으려는 이유다. 장기적으로는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해 관내 박물관, 미술관과 57개국 대사관 등 지역 자원과 연계해 ‘역사문화 박물관 특구’ 지정을 준비하고 있다. 지역경제 활성화는 물론 용산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큰 몫을 할 것이라 믿는다.”

용산은 20년간 베트남 퀴논시와 우호 관계를 잘 유지해 오고 있는데.

“퀴논은 베트남전쟁 때 맹호부대가 주둔했던 곳이다. 이것을 인연으로 삼아 자매결연을 한 뒤 거의 매년 장학 사업, 한국 유학, 의료 지원, 공무원 교류 등 상호 우호 증진 사업을 해왔다. 이태원과 퀴논에 각각 친선 거리가 만들어질 정도로 관계가 깊어지면서 최근에는 한국 기업의 퀴논 지역 진출 창구로서 용산구가 크게 역할을 하고 있다. 적어도 퀴논에서는 용산구가 한국 정부를 대리한다고 할 정도로 활발하다. 참고로 태양열과 풍력 발전 시설 건설에 한국기업의 참여를 우리가 지원하고 있는데, 베트남 쪽에서 50년간 128만 평의 땅을 무상 제공할 정도로 신뢰 관계를 쌓았다. ”

그 밖에 특별히 관심을 두는 정책 분야가 있다면?

“나라의 경쟁력은 결국 청년이 결정한다. 국가적 문제이지만 용산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시작했다. 청년정책자문단을 구성해 청년들이 정책 결정에 직접 참여토록 했다. 또한 청년들을 위해 100억원을 목표로 일자리기금을 모을 계획이다. 부동산 진입 장벽이 높은 용산이지만 삼각지 인근, 남영역 인근에 역세권 1, 2호 청년주택이 건립되는 만큼 청년층 유입이 많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재개발·재건축 시 기부채납한 터에 청년들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도 마련할 계획이다.”

용산구는 앞으로 미군이 옮겨간 자리에 초대형 공원이 들어서면 더욱 살기 좋은 곳이 될 것 같다.

“물론이다. 용산은 세계적인 명소가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본다. 제가 한-미행정협정을 공부하며 필리핀 미군 주둔기지도 가봤다. 환경오염 문제가 심각했다. 이런 걸 고려해 서둘지 말고 차근차근 생태 환경 조사까지 잘했으면 한다. 무엇보다 다시는 외국의 군사 시설이 넘보지 못하게끔 장기적인 관점에서 공원을 구상하고 설계해야 한다고 본다. 공원 이름도 개인적으로는 평화공원보다는 통일공원이 옳다고 본다. 파리 개선문 같은 통일문도 크게 세우고….”

3선 하신 구청장들께 꼭 물어보는 질문이다. 3선 이후 출마 금지 규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지방자치가 발전한 일본에는 출마 제한 규정이 없다. 미국도 주지사만 제한을 둘 뿐 시장 등 기초 자치단체장들은 제한 없이 출마한다. 출마자에게 선거는 자기 노력의 결실이다. 낙하산이 내려와 남의 추수를 가로채도록 하는 건 제도가 아니다. 일을 잘하는 사람은 계속 더 잘할 기회를 주는 게 맞지, 억지로 출마조차 못하게 하는 것은 국민 이익에도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선수 제한은 마땅히 없어져야 한다.”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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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변에 마당발로 정평…재기까지 세 번 선거 낙선


△민선 5~6기(2010~2018) 용산구청장 △서울시 구청장협의회 회장, 전국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회장(현) △민주당 용산지역위원장(2005~2010) △민선 2기(1998) 용산구청장 △제1~2대(1991~1998)) 용산구의원 △전국웅변인협회 사무총장(1988) △웅변학원 경영(1979~1997) △순천 매산고, 안양대 행정학과, 단국대 행정대학원(행정학 박사) △1955년 전남 순천 출생, 부인 김성희씨와 2남

성장현(64) 용산구청장은 과감한 발상과 두둑한 배짱, 달변과 마당발로 정평이 높다. 1998년 민선 2기 선거에서 당시 최연소(43살)로 구청장에 당선된 뒤, 미군이 군사용으로 받은 땅을 가지고 한국인을 상대로 임대사업을 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미군 당국에 “달걀로 바위 치기식”의 부지 반환 협상을 한 일화가 유명하다(그 땅은 결국 후임자 때인 2004년 돌려받아 오늘날 용산구 신청사 터가 됐다). 2010년 민선 5기에 복귀해서는 용산구 소유이면서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하던 토지, 건물 등을 찾아내 구 보유재산으로 환수했다. “구청장은 선거로 되지만, 역할은 행정가로서 구 살림을 경영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이렇게 생긴 수입을 모아 제주도에 구민 휴양지를 세웠다. 이 역시 “성장현다운 발상”이란 평가를 받는다. 맹호부대 주둔 지역의 베트남 불우 학생과 공무원을 용산구에 있는 대학에 유학·연수를 시키고, 현지의 한-베트남 경제협력 지원 사업을 펼치는 등 양국 우호에 기여한 공로로 베트남 정부에서 민간 최고 우호 훈장을 받을 정도(성 구청장 다음으로 이 훈장을 받은 사람이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이다)로 “한국의 대표적인 친베트남 정치인”으로 인정받고 있다.

성 구청장은 보기 드문 4선 구청장 중 한 사람이다. 선거법 위반으로 구청장직을 박탈당하는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고 10년 만에 다시 당선돼 지난해 민선 7기 선거까지 내리 3선에 성공했다. 선거법 위반은 종교단체 모임에서 후원회장 자격으로 식사비를 제공한 것이 화근이 됐다고 한다. 재기하기까지 “국회의원 선거 2번, 구청장 선거 1번을 떨어졌다.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가장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생각도 전혀 없었다”고 한다.

1955년 전남 순천의 농가에서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1971년 대통령선거에 나선 김대중 후보의 연설에 매료돼 정치가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가난 탓에 대학 진학을 못한 그는 24살에 상경해 웅변 특기를 살려 용산에서 웅변학원을 운영하며 ‘용산 정치’와 인연을 맺었다. 그는 해마다 2400여 장의 연하장을 고향 사람들에게 보낼 만큼 고향 출마에 집념을 가졌으나, 지방자치 민선 시대가 열리면서 단체장 출마로 진로를 수정했다. 1979년 25살에 민주당에 가입한 이래 줄곧 ‘디제이 민주당’을 한 번도 떠난 적 없어 “현 민주당 당원 중 가장 오래 당적을 보유한 현역”을 자처한다. 늦깎이(38살)로 대학에 들어가 한-미행정협정을 주제로 박사 논문까지 썼다. 자서전 제목은 <봄을 이기는 겨울은 없다>.

나를 있게 한 이것

DJ의 명연설, “정치인의 꿈을 심어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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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성장현’을 만든 8할은 ‘젊은 대통령 후보 김대중’의 연설이다. 열일곱 살 때인 1971년 대통령선거에서 김대중 후보가 순천에 유세를 왔을 때, 우연히 그 현장에 있었다. 멋진 외모의 젊은 후보가 토해내는 사자후는 단박에 시골 소년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만약 그날 그 연설장에 가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지금의 성장현은 없었을 것이다.

삽화 김경래 기자 kkim@hani.co.kr

이인우 선임기자 iwl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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