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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단독][마르지 않는 간접고용의 눈물]“사고 당해도 도울 사람 없고…10년 일해도 왜 항상 신입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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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소·발전소 등 홀로 근무…살려달라 소리쳐도 소용없어

LG유플러스 서비스센터 등 출근했더니 비어있는 사무실

해마다 하청업체 바뀔까 불안

경향신문

아직 사라지지 않은 ‘위험의 외주화’ 15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김용균씨 분향소 앞에서 민주노총 건설노조 전기노동자들이 ‘위험의 외주화’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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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28일 오후 4시쯤 충남 당진의 현대제철 공장에서 정비 작업을 하던 한승헌씨(당시 38세)가 숨졌다. 한씨는 소음으로 가득 찬 제철소에서 원료를 이송하는 슈트(활송장치)를 점검하던 중이었다. 자신의 몸 뒤로 오던 원료 분배 장치인 트리퍼카를 발견하지 못해 기계 사이에 끼여 죽었다. 사망 당시 한씨는 혼자였다. “살려달라”는 무전을 남겼지만 소용없었다. 이 작업장에선 2010년 5월에도 노동자가 추락해 숨졌다.

한씨의 죽음은 지난해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숨진 김용균씨(24세)의 사망과 닮았다. 컨베이어벨트 주위에 떨어진 낙탄을 치우고 기계를 정비하던 김씨도 한씨와 마찬가지로 어둡고 시끄러운 작업장 안에서 혼자 일하다 사고를 당했다. 한씨와 김씨는 모두 간접고용 노동자였다.

경향신문이 입수한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의 ‘간접고용 노동자 노동인권 실태조사’ 통계를 보면 김씨와 한씨 같은 간접고용 노동자는 346만5239명이다. 실태조사에는 간접고용이라는 이유로 차별과 착취의 대상이 되는 노동자들의 현실이 담겨 있다. 경향신문은 실태조사 면접에 참여한 철강·자동차·조선·통신 업종의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직접 찾아가 만났다. 이들은 위험한 노동환경에서 열악한 처우를 받으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경향신문

■ 노동자 죽이는 간접고용

한씨가 사망한 제철소는 안전사고의 위험이 상존한다. “제철소는 위험한 작업이 많아 한번 다치면 중대재해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안전을 위해 설비를 개선해달라는 현장 목소리는 반영되지 않습니다.” 박광원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 노동안전1부장의 말이다. 안전은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제일 잘 안다. 작업할 때 왜 위험한지, 어떻게 개선해야 안전을 확보하는지 노동자들은 안다. 하지만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환경을 바꾸기 어렵다. 박 부장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고용한 하청업체는 ‘원청에 문의하겠다’고 할 뿐이다. 몇년이 걸려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지난해 8~10월 자동차·조선·철강·유통·통신 업종 노동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비정규직 589명, 정규직 325명 등 총 914명 응답)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에 비해 산재 사고를 당할 비율이 17%포인트 높았다. 비정규직 중 38%가 ‘지난 1년 동안 업무 수행 과정에서 산재 사고로 다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정규직은 응답자의 21%가 산재를 경험했다. 비정규직이 사고를 당할 위험이 2배 가까이 높은 셈이다.

통신업계 노동자의 산재 경험 비율은 44.6%(정규직 포함 설문)로 다른 업종보다 높다. 전봇대를 오르거나, 난간이 없는 고층아파트 외부에서 벽을 타며 인터넷 회선 등을 설치한다. 위험한 일은 주로 간접고용 노동자 몫이다. 제대로 된 안전장비를 지급받지 못하거나 인력 부족으로 2인1조 근무를 할 수 없는 경우가 빈번하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산재 피해를 당해도 본인이 치료비를 부담하는 경우(38.2%)가 정규직(18.3%)보다 두 배 많았다. 산재보험 신청 비율은 비정규직 34.4%, 정규직 66.1%였다. 사고 비율은 간접고용 노동자가 직접고용 노동자에 비해 훨씬 높으면서 치료비는 본인이 부담하는 이중의 고통·피해를 보는 것이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위험한 상황에 내몰리는 건 고용 구조에서 나오는 태생적인 문제 때문이다. 하청업체는 제조 설비 등을 소유하고 있지 않아 안전문제를 개선할 권한이 없다. 원청과의 계약이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노동자 안전에 투자하지도 않는다. 사용자인 원청은 노동자들과 직접고용 계약이 맺어져 있지 않아 책임을 지지 않는다.

■ 은밀히 유지·확대되는 간접고용

지난 3일 오전 서울 은평구의 LG유플러스 서비스센터에 출근한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황당한 장면과 마주해야 했다. 컴퓨터나 책상 같은 집기류가 모두 사라졌다. 사무실이 갑자기 공실이 된 건 지난해까지 이곳에서 서비스센터를 운영하던 하청업체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기존 업체가 신규 업체에 사무 집기 등을 매매하는 과정에서 가격 조정이 이뤄지지 않아 기존 업체가 집기를 모두 가져가버린 것이다.

이 장면은 지금 하청과 간접고용 문제의 일단을 드러낸다. 하청업체는 계약에 따라 수시로 바뀐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처지도 불안정해진다.

LG유플러스는 전국을 행정단위별로 쪼개고 합쳐 72개 서비스센터를 54개 업체가 운영한다. 최영열 희망연대노조 LG유플러스비정규직지부 교육선전부장은 “LG유플러스의 경우 1년에 최대 두 차례 업체가 바뀔 수 있는데, 원청과 하청의 위탁계약이 종료되면 노동자들은 해고된 뒤 새로 온 업체와 채용계약을 맺는다”고 했다. 최 부장은 일하던 업체가 10차례 정도 바뀌었다. 그는 “경력 10년이 넘는 노동자들도 업체가 바뀌면 신입사원이 된다. 계약해지된 하청업체가 마지막 달 월급과 퇴직금을 주지 않고 사라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전했다. 이번 실태조사에서 동일 원청업체에서 근무한 기간은 평균 90.3개월이지만, 이 기간 고용업체가 변경된 횟수는 평균 2.4회로 나타났다.

현대제철 당진공장엔 40여개의 하청업체가 있다. 조선업계도 한 조선소에 100여명의 ‘사장’이 소규모 하청업체를 꾸려 인력을 공급한다. 자동차업계는 업무를 “찢어서” 1·2차 협력사, 아웃소싱 등에 나눠주는 다단계 하도급 형태로 노동력을 공급받는다. 하청업체는 별도의 생산 설비나 기술력 없이 인건비로만 수익을 낸다. 한국지엠 부평공장의 2차 협력사에서 일하는 ㄱ씨는 이런 사내하청 업체들이 “장갑만 들고 들어와서 영업한다”고 했다.

간접고용 노동자는 복잡한 다단계 사내하청 구조 때문에 피해를 본다. 자동차업계는 정규직 연봉이 8000만원이면 1차 업체는 4000만원, 2차 업체는 2000만원 수준이라고 한다. ㄱ씨는 “지난해 받은 돈이 세전 2100만원이다. 돈 쓰기 나름이겠지만 지인들과 소주 한잔하는 것도 부담스럽다. 노후 준비나 자녀들 결혼, 뭐 하나 제대로 준비할 수가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하도급 단계가 하나만 없어져도 임금이 올라 좀 살 것 같은데, 회사 입장에선 비용이 많아지니 그렇게 하지 않을 겁니다.”

이번 실태조사에서 비정규직은 정규직보다 평균 2시간을 더 일했지만 월 급여는 90만원 적었다.

실태조사 책임자인 조돈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대표(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는 간접고용이 점점 더 교묘한 형태로 악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 대표는 “간접고용이 불법파견 등 법적 다툼으로 번지는 경우가 많아졌지만, 실질적 사용자인 원청은 간접고용을 줄이기보다는 이를 감추고 위장하는 방식으로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가고 있다”며 “불법파견으로 보이지 않도록 작업복의 원청 로고를 없애거나 생산라인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간접적으로 분리시키는 식으로 더 은밀하게 유지·확대되고 있다”고 했다.

■ 5년 전 ‘간접고용의 눈물’ 첫 보도…아직도 바뀐 건 없습니다

경향신문

경향신문 2014년 1월6일자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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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향신문 2014년 1월29일자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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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향신문 2014년 1월9일자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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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향신문 2014년 1월 20일자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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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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