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9 (월)

다보스포럼이 미는 `세계화 4.0`…한철 유행어가 될까 새 비전될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비즈니스 인사이트-224] ◆"세계화 4.0이라고?…그렇다면 1.0, 2.0, 3.0은 뭘까"

'4차 산업혁명' '인더스트리 4.0'이 세계적인 유행을 타더니 이제는 '세계화 4.0'이란 신조어가 나왔다. 4에 꽂힌 이 수상한 유행어를 제시한 곳은 '4차 산업혁명'을 주창한 세계경제포럼(WEF)으로 매년 1월께 스위스 다보스에서 전 세계 정·재계 거물들을 불러 모아 전 세계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외신들에 따르면 살아 생전 스티브 잡스,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단 한 번도 다보스포럼을 찾지 않았고, AFP 같은 매체는 "부자들의 놀이터인 다보스에서도 빈부 격차가 드러났다. 헬리콥터로 날아온 억만장자와 정치인, 유명 인사들은 비공개로 밤마다 파티를 열었다"고 조소하기도 했다.

요즘 청년들은 유튜브로 볼 수 있는 글로벌 강연행사 'TED(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에 열광하지만 다보스포럼의 오늘날을 있게 한 '세계화'란 고유 영역에서 그 역할을 대체할 장소를 찾긴 어렵다.

1971년 유럽 기업인들이 휴양지에 모여 미국식 신경영 기법을 배우고 정보와 네트워크를 확보하기 위해 '유럽경영포럼(EMF)'으로 출범한 다보스포럼은 1987년 세계경제포럼(WEF)으로 이름을 바꾸며 전 세계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오일쇼크, 냉전 종식, 중동분쟁 등 문제 해결에 기여했던 다보스포럼은 올해 주제로 '세계화 4.0'을 꺼내들었다.

리처드 발드윈(Richard Baldwin) 제네바대학원 국제경제학 교수는 세계경제포럼 홈페이지에 기고한 글을 통해 '세계화 4.0'을 설명했다. 그는 '세계화 4.0'이 기존 3가지 세계화와는 근본적으로 다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1차 세계대전 이전의 제국주의…'세계화 1.0'

발드윈 교수에 따르면 '세계화 1.0'은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세계화였다. 증기기관과 운송 수단 발달은 제국주의 열강들이 해군과 동인도회사, 은행을 앞세우며 식민지로 진출하는 형태로 세계화를 진전시켰다. 세계화는 정부 지원 없이, 글로벌 거버넌스 없이, 세계화로 인한 국내 산업부문별 불균형 심화를 완화하는 정책 없이 이뤄졌다.

'세계화 1.0' 시대 자유방임 경제 체제와 제국주의 아래 식민지에서 벌어진 독재 정치는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과 대공황, 공산주의와 파시즘의 부상으로 인해 수천만 명을 죽이는 참담한 결말로 끝났다.

◆글로벌 거버넌스의 확립…'세계화 2.0'

제국주의와 자유방임 자본주의를 두 축으로 한 '세계화 1.0'의 대안으로 등장한 건 '세계화 2.0'이다. 발드윈 교수는 '세계화 2.0'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상품 무역 중심 세계화와 그에 따른 이득과 고통을 공유하는 보완적인 국내 정책과 결합된 단계라고 설명한다.

'세계화 2.0'에서 시장은 효율성을 맡고, 정부는 공공성을 담당했다. '세계화 2.0'은 국제무역에서도 유엔(UN), 국제통화기금(IMF),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세계무역기구(WTO), 국제노동기구(ILO) 등 글로벌 거버넌스가 확립되는 무대가 됐다.

◆국외 생산기지 이전으로 대표되는 '세계화 3.0'

발드윈 교수는 '세계화 3.0'의 핵심은 공장이 국경을 넘는 것이라고 전한다. 혹자는 이를 '초세계화' '글로벌 가치사슬 혁명' '오프쇼어링(off-shoring)'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1990년대 들어 정보통신기술(ICT) 발전은 국외 공장에서 제품을 판매하는 다른 형태의 무역을 가능케 했다. 선진국의 첨단 기술과 자본은 개발도상국의 저임금 노동력과 만나 새로운 제조업 세상을 창출했다. 이 과정에서 제조업에 종사하는 선진국 저임금 노동자들 삶과 공동체가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서비스업에 밀려오는 '세계화 4.0'…외국 기업 다니며 재택근무도 가능하지만 전문직도 안전하지 않은 세상

발드윈 교수는 '세계화 4.0' 시대에는 노동자들이 물리적으로 이동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글로벌 노동시장에서, 특히 서비스 산업에서 차익 거래가 가능할 것이라 말한다. 현재 전 세계에 남아 있는 가장 큰 차익 거래 기회는 서비스 부문 노동시장과 임금이다. 국가별로 비슷한 서비스업 임금은 최대 10배에 달하는 격차가 존재한다. 지금까진 기술적인 한계로 인해 이런 격차를 조정할 수 있는 기업은 거의 없었다. 왜냐하면 서비스업과 전문직의 특성상 면대면 상호작용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은 이제 한 나라에 있는 사람들이 다른 나라 회사에서 일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미 웹 개발자 같은 글로벌 노동 시장에서는 재택근무가 매우 일반적이다. 발드윈 교수는 이를 '원격 이민(telemigration)'이라 부른다. '업워크'(Upwork.com)와 같은 국제 자유근로계약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임금 기반 차익거래가 가능해졌다. 수백만 명에 달하는 선진국 서비스업 종사자들과 전문직 종사자들이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화의 도전과 기회에 노출될 것이다.

문제는 인공지능(AI)과 자동화가 많은 서비스업 노동자들을 대체할 수 있는 시대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오히려 '세계화 3.0'으로 고통받은 노동자가 '세계화 4.0'으로 고통받을 노동자들과 힘을 합친다면 '제2의 러다이트 운동'이 벌어질 가능성도 충분하다.

결국 폭발적인 경제적 변화가 사회적 대변동을 초래했듯이, 정부는 모든 것이 너무 빨리 변하는 세상이라면, 사람들이 적응할 시간을 주고, 변화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역사는 반복된다…세계화와 '사다리 걷어차기'

가이 스탠딩(Guy Standing) 런던대 교수는 발드윈 교수의 설명에 대해 보다 대안적인 견해를 제시했다. 스탠딩 교수에 따르면 '세계화 1.0'은 국민국가 시장경제가 구축되는 시기였다. 이는 자유방임주의 경제 체제 아래 국가 기반 금융 자본에 의한 지배와 상품 무역을 중심으로 삼았다.

그에 따르면 세계대전과 대공황을 거치며 늙어가던 유럽은 떠오르는 세계 자본주의 중심인 미국을 겨냥해 지식재산권을 훔친다고 비난했고, 영국과 프랑스, 독일은 보호무역주의와 '무역 전쟁'을 비판했다.

스탠딩 교수는 '세계화 2.0' 시대는 새로운 민주주의 제도와 재분배, 사회보장제도 강화 등을 골자로 한 사회민주주의 시대로 규정했다. 지대 추구형 자본주의는 억제됐고 노동 기반이 안정성이 강화됐으며 짧은 기간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전반적인 삶의 수준이 공통적으로 개선된 시대였다.

그러나 이후 신자유주의가 연 '세계화 3.0' 시대에 진행된 시장 개방 압력은 사회민주주의적 규제와 부의 재분배 장치를 약화시켰다. 특히 전례 없는 글로벌 금융 자유화는 미국 금융기관의 금융자산 규모를 1970년대 GDP(국내총생산) 대비 100% 수준에서 오늘날 GDP 대비 350%를 초과하는 수준으로 키워냈다. '세계화 1.0' 시대와 마찬가지로 미국 주도 금융자본이 지대 수입을 흡수했다는 설명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세계화 3.0'과 신자유주의는 가장 자유롭지 못한 시장 체제를 만들어 낸다. 1994년 WTO가 주도한 '지식재산권에 관한 무역협정(TRIPS)' 이후 미국 다국적 기업들과 세계은행(WB), IMF 등 다른 국제기구들은 함께 3000건이 넘는 무역·투자 협정을 체결하게 된다.

TRIPS는 미국식 지식재산권 제도를 세계화시킬 수 있었고 다국적 금융, 제약, 기술 회사들은 이제 전 세계를 무대로 막대한 이윤을 얻을 수 있게 됐다. 특히 특허 제도가 확산됐는데 1994년 한 해 100만건 미만이던 전 세계 특허출원 건수는 이제 300만건을 넘어섰다. 또한 각 특허마다 최소 20년 넘는 독점 이윤을 보장한다. 이게 어딜 봐서 '자유시장'일까.

'세계화 3.0' 체제 아래 잠시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한국이 이득을 봤다. 그러나 이들은 중국을 과소평가한 나머지 2011년 중국은 미국보다 더 많은 특허를 출원하게 됐다. 2015년이면 중국은 한 해 동안 미국, 한국, 일본, EU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특허를 출원하게 됐다.

오늘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은 과거 산업혁명기 유럽이 미국에 대해 산업 기밀을 훔쳤다고 비난한 것처럼 중국이 지식재산권을 훔쳤다고 비난하고 있다.

18세기 앤드루 잭슨 대통령이 '미국 산업혁명의 아버지'라 칭한 새뮤얼 슬레이터(Samuel Slater)는 1789년 수력방적기 기술을 미국으로 가져간 뒤 영국에서 '배신자 슬레이터'로 불렸다. 스탠딩 교수는 슬레이터 사례를 들며 '놀라울 정도의 위선'이라고 비판했다.

◆'세계화 4.0' 시대 무역 구조는?…서비스 산업 임금인상률·노동생산성·노동비용 3개 변수 종합해 풀어내야

발드윈 교수에 따르면 국외 공장 이전이 특징인 '세계화 3.0' 시대는 국가별로 상대적인 인건비 차이로 인해 전례 없는 무역 수준을 달성했다. 모든 정부는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이기 위한 노동구조 개혁과 WTO 규정이 제재할 수 없는 세금 공제 같은 보조금을 통해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이 같은 '근린궁핍화(beggar-my-neighbour) 무역정책'은 '세계화 3.0' 시대 상품 생산을 위한 생산요소 교역 규모를 성장시켰다.

스탠딩 교수는 '세계화 4.0' 시대 무역이 '서비스 부문 임금상승률' 차이에 의한 '글로벌 차익거래 기회'에 달려 있다는 발드윈 교수 견해를 지적한다. 중요한 건 임금 상승률뿐 아니라 노동생산성과 임금 외 노동비용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저렴한 임금상승률을 바탕으로 대미 흑자를 기록 중인 중국이 앞으로 OECD 평균 수준으로 임금상승률을 끌어올릴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노동생산성을 더 높이 끌어올리고, 임금 외 노동비용도 효과적인 보조금 정책을 편다면 무역 거래는 상대적 임금 수준에만 의존하진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는 '세계화 4.0' 시대 OECD 국가들이 커다란 도전 과제에 직면했다고 진단한다. 신흥국 경제가 임금 외 노동비용 증가를 더욱 잘 감당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화 4.0' 지속 가능하려면…'N포 세대' 노동자 '프레카리아트(precariat)' 정책 필요

스탠딩 교수는 '세계화 4.0' 시대에 새로운 대중 계층 혹은 새로운 계급으로 '프레카리아트(precariat)'가 형성됐다고 말한다. 프레카리아트는 '불안정한'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프레카리오(precario)'와 노동자 계급을 의미하는 '프롤레타리아(proletariat)'를 합성한 말로, 스탠딩 교수가 저임금, 저숙련, 비정규직, 파견직, 실업자 등 평생 불안정한 고용 상태에 처한 노동자를 지칭한 신조어로 2004년 유럽 노동자의 날 행사(유로메이데이) 때 처음 등장했다.

그에 따르면 새로운 계급으로서 기존 '엘리트-월급생활자-연금생활자-프롤레타리아'로 이어지는 계급보다 더 하층부에 '프레카리아트'가 존재한다. 스탠딩 교수는 바람직한 '세계화 4.0'을 위해 정부가 지속 가능한 경제 체제를 구축하고 기술 진보로 인한 이익과 손해를 공정하게 분배하는 데 나서야 한다고 촉구한다.

[안갑성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