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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분노유발 `중고차 사기`, 블록체인이 해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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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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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車-108] #송 모씨는 중고차 시장에서 현대 투싼을 구입했다. 침수차를 속아 사지 않을까 걱정하는 송씨에게 중고차 딜러는 중고차 성능·상태점검기록부를 보여주며 침수 사실이 없다고 안심시켰다. 송씨는 구입한 뒤부터 차에 문제가 자주 발생해 정비업체를 찾았다가 침수가 원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화가 난 송씨는 곧바로 중고차 딜러를 찾아가 환불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프리미엄 소형차인 미니를 사고 싶었지만 예산이 부족했던 김 모씨는 중고차 쇼핑몰에 무사고 차라고 나온 미니 쿠퍼S를 구입했다. 다른 매물보다 가격이 비쌌지만 무사고라는 말에 믿고 샀다. 그러나 몇 달 뒤 미니 공식서비스센터를 방문해 점검받는 과정에서 엔진룸 부위까지 손상을 입어 제 성능을 발휘할 수 없는 차라는 말을 들었다. 김씨는 중고차 딜러에게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하지만 해당 딜러는 자신이 팔 때는 무사고였다면서 김씨가 사고를 낸 뒤 생떼를 부린다며 적반하장 태도를 보였다.

중고차 시장에서 종종 발생하는 소비자 피해 사례다. 한국소비자원에도 이 같은 피해를 구제해 달라는 소비자들의 민원이 많다.

한국소비자원은 나날이 비싸지는 신차 가격, 자동차 기술 발전에 따른 내구성 향상 등으로 중고차 소비자가 늘어나면서 덩달아 소비자 피해도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소비자원은 2015년부터 2017년 6월까지 중고차 매매 관련 피해구제 신청을 총 807건 접수했다.

피해 유형별로 살펴보면 성능·상태 점검 내용과 실제 차량 상태가 다른 사례가 74.6%로 가장 비중이 컸다. 블랙박스, 내비게이션 등 차량용품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한 뒤 이행하지 않는 피해 사례가 7.8%로 그 뒤를 이었다. 그다음으로 이전등록 뒤 차액을 돌려주지 않는 제세공과금 미정산(6.6%), 계약금 환급 지연·거절(5.6%) 순이었다.

소비자 피해 대부분을 차지한 성능·상태 점검 내용과 실제 차량 상태 상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성능·상태 불량 45.7%, 사고 정보 고지 미흡 17.7%, 주행거리 상이 5.5%, 침수차량 미고지 3.2%, 연식 모델 상이 2.5%로 나타났다.

피해구제 신청 778건(미결 제외) 중 수리·보수, 환급·배상, 계약 이행 등 판매자와 합의가 이뤄진 건수는 339건으로 전체 중 43.6%에 불과했다.

이 같은 피해를 막기 위한 대책은 있다. 2001년부터 자동차관리법에 따라 매매업체에서 차를 팔 때 중고차 성능·상태점검기록부를 교부하도록 의무화됐다. 2005년부터는 1개월 2000㎞까지 품질을 보증하도록 성능 점검 관련 법규가 강화돼 차 상태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게 됐고, 중고차를 속아 샀을 때 보상받을 길도 열렸다.

그러나 성능·상태점검기록부 교부 의무화가 시행된 지 18년이 된 현재도 기록부 자체가 성능을 객관적으로 알려주기에는 부족하고, 형식적으로 발부하는 매매업체도 많다고 지적받고 있다.

성능 점검이 주로 검사자의 육안으로 이뤄지고 주관적 판단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점검 수수료는 의뢰자인 딜러가 낸다. 수수료를 받는 점검자 입장에서는 적당한 선에서 타협할 소지가 있다.

1개월 2000㎞ 품질보증이 소비자 보호 측면에서 기간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중고차를 산 뒤 1개월 이후 문제가 발생하면 보상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SK엔카닷컴, 케이카, KB차차차, 현대캐피탈 등이 중고차 상태를 보다 철저히 진단하고 보증 기간도 대폭 늘린 서비스를 내놨지만 아직은 역부족이다.

보험개발원은 2003년 4월부터 카 히스토리(자동차 사고 이력 조회 서비스)를 서비스하고 있다. 자동차보험으로 처리된 사고 내역을 알 수 있어 중고차 상태를 좀 더 정확히 판단하는 데 도움을 준다. 단 자동차보험으로 처리하지 않고 자비로 수리비를 냈다면 사고 이력을 알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카 히스토리를 모르는 소비자도 많다.

사실 중고차 시장에 대한 불신은 국내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중고차 시장은 레몬시장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구입해서 써보지 않으면 품질을 알 수 없는 제품이 거래되는 시장을 레몬시장이라고 부른다.

레몬은 속어로 '불쾌한 것' '불량품'이라는 뜻이다. 1965년에 생산된 레몬 색상 폭스바겐 비틀이 고장이 많았고 견디다 못한 소유자들이 중고차로 많이 팔았는데, 이때부터 레몬은 결함 있는 중고차를 뜻하기 시작했다.

중고차 시장이 레몬시장이 된 이유는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이다. 정보 비대칭성은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조지 애컬로프 미국 UC버클리대 교수가 선보인 경제학 이론이다.

양측이 갖고 있는 정보에 차이가 있을 때 정보 불균형으로 정보 비대칭성이 발생한다. 정보 비대칭성 때문에 정보를 가지고 있지 못하거나 적게 가지고 있는 측은 자신에게 불리한 의사결정인 '역(逆)선택'을 하게 된다. 역선택은 시장 불신으로 이어져 결국엔 시장 황폐화와 붕괴를 가져온다.

중고차 시장도 정보 비대칭성 때문에 사기·범죄 행위가 빈번히 발생하기 쉬운 곳이다. 소비자는 중고차 상태를 자세히 알 수 없지만 판매자인 딜러는 소비자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

정보 비대칭성 때문에 무사고차를 사려다 오히려 사고차를 비싼 값에 속아 산다. 주행거리가 조작된 차, 침수 흔적을 감춘 차, 사고 규모를 축소한 차를 모르고 구매하기도 한다.

이렇게 역선택으로 피해를 본 소비자들은 시장을 신뢰하지 않는다. '중고차 딜러는 가족에게도 차를 속여 판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로써 중고차 시장은 신차 판매 증가에 힘입어 양적 규모는 커졌지만 질적으로는 성장하지 못하고 오히려 '돈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가는 곳'으로 여겨졌다.

중고차 정보의 비대칭성은 블록체인으로 해결할 수 있다. 블록체인이 정보 독점 성향을 지닌 카피라이트가 아니라 정보를 공유하는 카피레프트 기능을 갖춰 정보 비대칭성을 없애주기 때문이다.

정보를 공유하려면 다양한 정보가 있어야 하는데, 중고차 시장에도 이미 다양한 정보가 존재한다. 신차 브랜드가 가진 차량 정보, 정비업체가 보유한 정비·수리 이력, 보험사의 사고 이력은 물론 국토교통부와 교통안전공단이 보유한 자동차 등록정보(차종, 용도, 형식, 저당권 등)와 자동차 정기검사 내역 등이 있다.

흩어져 있는 이들 정보는 블록체인을 통해 공유할 수 있다. 신차가 나올 때, 보험에 가입할 때, 할부금융으로 차를 구입할 때, 정비업체를 이용할 때, 소유권이 이전됐을 때 발생하는 데이터를 블록으로 생성할 수 있다. 이들 블록은 서로 체인으로 연결된다. 블록체인이 '정보 허브' 역할을 맡는 셈이다.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한 중고차 관리 시스템이 도입되면 정보 위·변조를 원천 차단할 수 있다. 소비자는 사려는 중고차가 언제 어디서 어떤 사고가 나서 무엇을 수리했는지, 주행거리는 어떻게 됐는지, 소유권에 문제가 없는지 등 정보를 딜러의 도움 없이도 파악할 수 있다.

주행거리를 조작하거나 수리 상태를 속이는 사기에 당할 걱정도 없어진다. 차 가격이 적절한지도 알아낼 수 있다. 더 나아가 자주 고장나는 부품, 소모품 교환시기 등 정보를 알아내 고장을 사전에 예방해 더 안전하게 차를 탈 수도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블록체인으로 중고차 사기 피해를 막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독일 자동차회사인 BMW는 블록체인 스타트업인 DOVU와 함께 주행거리 조작을 방지하기 위한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차량의 주행거리는 블록체인에 기록되고 운전자들은 BMW에서 차량관리 서비스를 받을 때 화폐처럼 쓸 수 있는 토큰(암호화폐)으로 보상을 받는다.

프랑스 자동차회사인 르노의 관리 시스템에는 블록체인 플랫폼 '비체인'이 있다. 비체인은 자동차 제조 단계에 발급한 ID를 바탕으로 유지보수가 발생할 때마다 데이터를 자동으로 갱신한다.

두바이 도로교통국도 모든 차량의 이력을 기록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IBM 블록체인연구소는 블록체인을 적용한 중고차 매매시스템을 준비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서울시가 연간 1만여 대가 거래되는 '장안평자동차매매시장'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할 방침이다. 서울시는 지난 10월 '블록체인 선도 도시'로 발돋움하기 위해 5개년(2018~2022년) 계획을 발표했다.

이 중에는 '중고차 매매 신뢰체계 구축' 사업이 들어 있다. 중고차 조합에서 쓰는 매매 시스템과 서울시 블록체인 플랫폼을 연계해 소유권 이전, 중고차 성능·상태점검기록부, 주행거리, 사고 정보 등의 위·변조를 원천 차단하는 사업이다.

매입 정보 등록, 성능 정보 등록, 차량 정보 조회, 성능 정보 조회, 매도 정보 등록 등 블록체인화한 데이터는 서울시 서버 4대에 동시 저장된다. 조작이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서울시는 올해 2월까지 중고차 블록체인 시스템을 구축한 뒤 3월부터 연간 1만여 대가 거래되는 장안평시장에서 시범 사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서울시는 이와 함께 중고차 사기 피해를 일으키는 허위 매물을 없애기 위해 장안평시장 중고차 출입 시스템에 입출고 상태와 주차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적용할 계획이다.

[최기성 디지털뉴스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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