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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세 강은일, 6번 강제입원, 정신장애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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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7일 강은일씨를 경기도 부천시 송내역 인근에서 만났다. 강씨는 조울증을 앓고 있다./이하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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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일씨(33)는 늘 몸이 약했다. 태어나자마자 인큐베이터에 들어갔다. 의사는 은일씨 부모에게 “아이를 포기하라”고 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부모님은 아이를 살려주면 평생 하나님의 종으로 살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은일’은 ‘일평생 변치 않는 은혜를 가지라’는 뜻이라고 했다.

그는 정신장애인이다. 다양한 정신질환 가운데 정도가 심해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울 경우 장애 진단을 받는다. 유형을 묻는 질문에 그는 “대중적인 단어로는 조울증, 어려운 말로는 양극성 정동장애 1형”이라고 답했다. ‘정동’은 기분이라는 의미다. 그는 최근까지 ‘한국정신장애인 자립생활센터’에서, 직전에는 정신장애인들이 운영하는 언론사인 ‘마인드포스트’에서 일했다.

지난 1월 7일 경기 부천시 송내역 인근에서 은일씨를 만났다. 짧게 깎은 머리에 동그란 안경, 검정 롱패딩 차림에 나이키 운동화를 신은 그가 “너무 춥죠?”라며 인사를 건넸다. 옆으로 멘 검은 가방에는 피카츄 캐릭터 인형, 세월호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을 비롯해 다양한 배지가 달려 있었다. 가수 서태지의 기념배지라고 했다. 여느 30대 초반과 다르지 않았다.

경제적 어려움, 고립감, 실망 등이 겹쳐 발병

학창시절, 늘 자잘한 병을 달고 살았다. 셀 수 없을 만큼 조퇴를 했다. 내성적인 성격에 조퇴까지 잦으니 친구가 많을 리 없었다. 그는 “중·고등학교 내내 ‘은따(은근히 당하는 따돌림)’를 당했다”고 조용히 말했다. 대학은 중·고등학교와는 다를 것 같았다. 처음 학교에 갔던 날의 설레는 기분을 잊을 수 없다. 하지만 집에 돌아왔을 때 엄마는 학자금 대출을 취소했다고 했다. “너같이 몸도 약한 애가 대학에 가서 뭐하겠느냐?”

엇나가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다. 처음으로 가출을 했다. ‘내 삶은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조울증 증상이 나타났다. 가치도 없는 삶, 어차피 죽을 거라면 ‘절대 악’을 없애고 같이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늘을 보면 성경에 나오는 천사와 악마의 군대가 싸우고 있었다. 일종의 환시였다. 당시에는 그게 환시인 줄 몰랐다.

자신의 하루하루가 일종의 시험과정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지나가는 자동차가 오른쪽 깜빡이를 켜면 오른쪽으로 걸었고 왼쪽 깜빡이를 켜면 왼쪽으로 걸었다. 이 시험을 통과하면 국가가 집안의 빚을 모두 없애주고 ‘신분’을 바꿔 줄 거라고도 믿었다. 그래서 최선을 다했다. 은일씨는 “그때는 몰랐는데 경제적인 어려움, 고립감, 가족에 대한 실망 등이 겹쳐서 발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처음으로 강제입원을 당했다. 건장한 남성 2명이 집으로 들어와 은일씨를 응급차에 태웠다. 응급이송단이었다. 그는 “응급입원이 필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하지만 이송 당시에는 정신이 없어 인지하지 못했다고 해도 30분, 1시간씩 힘으로 눌렸던 기억은 몸에 그대로 박힌다. 이걸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후 10년 동안 비슷한 패턴이 반복됐다. 증상이 심해지면 가족은 응급이송단을 불렀다. 이런 식의 입원은 은일씨만의 경험이 아니다. 조현병으로 37년 동안 정신병동에 입·퇴원을 반복한 김진수씨(가명·61)는 “길을 걷고 있는데 응급차가 오더니 사람들이 다 보는 곳에서 나를 잡아 차에 욱여넣었다. 너무 부끄러웠고 무서웠다”고 말했다. 퇴원 이후에도 한동안 젊은 남성을 보면 움찔했다. 20년도 지난 일이지만 그는 여전히 강제입원에 대해 말하는 게 쉽지 않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06년 강제입원 비율은 90.6%, 2013년 73.1%에 달했다. 이는 다른 나라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수치다. 영국과 프랑스는 1999년에 강제입원 비율이 각각 12.5%, 13.5%로 조사됐다. 2000년 기준 독일은 17.7%, 포르투갈은 3.2%에 불과했다.

“가장 필요한 것? 주변의 지지”

‘보호병동’ 혹은 ‘폐쇄병동’이라고 불리는 곳의 생활은 어떨까. <주간경향>이 만난 두 사람 모두 “무기력하다”는 답을 제일 먼저 내놨다. 은일씨는 폐쇄병동이 필요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초반 1~2개월은 극도로 올라간 증상을 낮추는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재활은커녕 설거지나 빨래 등 기본적인 생활능력이 떨어지는 게 확연히 느껴졌다.

“그런 상태에서 퇴원한다면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요?” 은일씨가 기자에게 되물었다. 그래서 폐쇄병동에서 퇴원한 이들이 갈 수 있는 공간은 장애인보호작업시설 등 한정적이다. 그나마 장애인 등록이 되어 있어야 하고, 안돼 있으면 알아서 찾아가야 한다. 기본적 생활능력이 저하된 상태에서 이 같은 정보를 얻는 건 쉽지 않다. 그래서 할 일 없이 집에서 지내는 경우가 가장 흔하다고 한다.

정신장애인임을 알고도 취업을 시켜주는 회사는 거의 없다. 장애 판정을 받지 않았다고 해도 취업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중간중간 비어 있는 자신의 이력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신질환자와 정신장애인들이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단기 아르바이트 등에 그치기 쉽다. 은일씨도 PC방, 당구장, 휴대전화 판매, 콜센터 상담 등의 일을 했다.

은일씨에게 정신질환자·장애인에게 가장 필요한 게 뭐냐고 물었다. ‘주변 사람들의 지지’라는 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에게 무엇보다도 어렵고 부족한 것이 바로 ‘관계’다. 제대로 다니지 못한 학교, 반복되는 입·퇴원, 오래 다니지 못하는 직장 등은 경제적인 어려움과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진다. 그는 “고립되어 있으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가 쉽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으니까”라고 말했다. 고 임세원 교수 사건 피의자도 4년간 혼자 지냈다.

그는 몇 년 전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이 조울증을 앓고 있으며 정신장애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렸다. 페이스북에 사실 ‘진짜 친구’는 얼마 없지만 정신장애인의 존재를 알리고 목소리를 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2017년에는 서울시 인권강사 양성 프로그램 ‘이어달리기’ 과정을 수료해 20차례 이상 자신의 사례를 강연했다. “생각했던 것과 달라서 놀랐다”는 후기가 가장 많다.

이런 은일씨도 사회의 시선이 두려웠다. 지금도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수차례 강연을 하고 기록을 남겼는데도 그는 인터뷰 끝에 “실명은 괜찮지만 얼굴은 공개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친구가 별로 없는 은일씨의 취미는 걷기다. 하루 3만보 정도를 걷는다. “식물만 광합성을 하는 게 아니에요. 햇빛을 쬐면 세로토닌이 분비돼서 우울증에 도움이 돼요. 집에만 있는 당사자들이 있다면 이런 작은 취미라도 만들어 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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