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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한상백의 돌출입과 인생] 당신의 성형수술은 안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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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믹리뷰

작년 가을쯤, ‘일본에서 활동하는 한국 여성 방송인이 한국 연예인이 99% 성형을 했다며 대한민국을 폄하하고, 한국 연예인을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는 기사가 보도된 적이 있다. 그 기사가 나온 이후 그 방송인을 퇴출하고 한국 국적도 박탈해달라는 청와대 청원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성형외과 전문의로서 필자는 이 기사를 보고 조금 다른 관점에서 유감이었다. 정말 연예인의 99%가 성형을 했는지 여부는 차치하고서라도, 과연 성형이라는 것 자체가 곧 비하, 즉 업신여기고 낮추어볼 것인가 하는 점이다. 또한 성형강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 성형수술이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면 그것이 대한민국이 폄하될 일인가도 의문이다.

이런 부정적인 시각의 저변에는 성형을 해서 예뻐진 얼굴은 가짜다, 즉 진짜 자기 얼굴이 아니니 눈속임이고 반칙이다라는 인식이 깔려있다. 또한 성형중독, 선풍기 아줌마, 성형괴물, 강남성괴와 같은 맥락에서, 정상적인 분별력의 범주를 벗어난 특정 부류의 사람들이 계속 성형을 반복한다고 생각하며 악으로 규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한편 정작 자기 자신이나, 자신의 딸이 쌍꺼풀 수술 정도 하는 것은 또 괜찮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성형외과 전문의의 평균 수준이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높은 성형강국에 살고 그 혜택을 직간접적으로 보면서, 사람들은 이렇게 이중 잣대를 들이밀기도 한다.

사실 성형 그 자체가 악은 아니다. 과도한 성형, 불필요하거나 부적절한 성형, 안전하지 않고 무분별한 성형이 문제다. 예쁘게 보이려고 얼굴에 화장하는 것이 악이 아닌 것과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형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데에는 선택 편향(Selection Bias)의 원리가 작용하는 듯하다.

가령 지하철에서 입이 과도하게 합죽이거나, 귀밑 사각턱이 아예 없이 1자이거나(속칭 개턱), 콧잔등이 아바타처럼 높거나, 턱 끝이 마녀처럼 뾰족한, 소위 성괴(성형괴물을 가리키는 신조어)를 봤다고 치자. 그러면 사람들은 ‘아 성형을 하면 저렇게 흉한 모양이 되는구나’ 하고 낙인을 찍게 되고, 이런 낙인효과는 부정적 인식을 지속시킨다. 하지만 그런 결과만 눈에 띄는 것은 그것이 실패작이기 때문이다. 즉 보기 흉한 실패작만 선택적으로 눈에 띄기 때문에 성형수술을 하면 다 그렇게 이상해진다고 성급하게 결론짓게 된다. 선택편향에 이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다. 하지만 사실은 별로 눈에 거슬리지 않고 지나친 많은 얼굴 중에는 자연스러운 성형수술의 결과가 꽤 많이 있었을 것이다. 수술이 자연스럽게 잘된 얼굴은 눈에 거슬리거나 선택적으로 눈에 띄지 않는다.

필자에게 돌출입 때문에 진료를 받으러 온 (환자 아닌) 환자들 중에도, 성형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로 고민이 깊은 사람이 많다. 성괴가 되는 것은 아닐까? 안전할까? 부작용이 생기면 어쩌나? 등…. 사실 이런 걱정은 당연하며, 정상적인 사람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심리적 반응이다. 이 중 돌출입수술을 원하는 환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뭐니뭐니 해도 합죽이가 되는 것, 두 번째는 얼굴이 길어지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모두 결국은 집도의의 눈과 손, 즉 안목과 솜씨에 달려있다. 자연스러움에 방점을 찍는 미적 감각과 정교하고 세심한 수술 테크닉이 중요한 이유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합죽이가 안 되려면 돌출입을 적당히 넣어야 하고, 긴 턱이 안 되려면 턱 끝 길이를 알맞게 조절해주어야 한다. 상식적으로 앞턱 끝 길이와 위치가 딱 좋은 돌출입이란 거의 없으며, 때문에 돌출입 수술을 할 때 턱 끝 절골 수술을 같이 해야 아름다운 입매가 완성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턱 끝 수술은 당연히 추가적인 부담없이 돌출입수술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게 필자의 지론이다.

문득 아름다운 결과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 것은, 오늘 필자의 병원에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온 차분한 인상의 어느 간호사 때문이다. 면접 중 불쑥, 그 간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저, 사실 원장님에게 수술받았어요.”

곧바로 차트를 찾아보았다. 어쩐지 이름이 낯설지 않다 했더니, 필자에게 몇 년 전 수술을 받은 환자다. 이력서를 보니 다른 일을 하다가, 필자에게 수술받은 뒤 간호사가 되었다.

반가웠다. 수술 결과라는 것은 당장 성형수술로 달라진 결과물을 가리키지만, 더 크고 길게 본다면 진정한 수술 결과란 그 달라진 얼굴로 어떤 마음가짐을 갖게 되고, 어떤 관계를 맺으며,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가에 있을 것이다.

필자에게 성형수술받은 환자가 새로운 도전에 성공하고 후일 웃는 낯으로 다시 찾아와 필자 병원의 직원이 된다는 것은 어쩐지 좀 감개무량하다. ‘내게 수술받은 환자가 잘 살고 있었구나, 그리고 이제는 같이 일하며 잘 해볼 수 있겠구나.’ 모르긴 몰라도 자신이 성형수술한 병원을 원망하며 사는 경우도 적지 않을 텐데 말이다. 사실 필자가 돌출입수술을 해준 환자의 청첩장도 여러 번 받았다. 필자의 손을 거친 사람들이 모두 행복하게 잘 살고 있기를 빈다.

“같이 일합시다.”

잠시 고민했던 필자는 내 환자(였다)라는 것을 안 순간 ‘우물쭈물’할 틈도 없이 채용을 결정했다. 192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영국의 극작가 겸 소설가인 조지 버나드 쇼는 95세, 죽음에 이르러 자신의 묘비문을 다음과 같이 써달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2019년 새해다. 돌출입 혹은 유난히 큰 광대뼈, 사각턱 때문에 컴플렉스와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면서도, 우물쭈물하다가 어느덧 흰머리가 빼곡해져서 오는 환자들을 적잖이 만난다. 이 분들이 성형중독은 아닐 것이다. 백세시대고, 한 번 사는 인생, ‘YOLO’다.

한상백 서울제일성형외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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