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49988028 0362019011249988028 09 0902001 5.18.17-RELEASE 36 한국일보 0

[2030 세상보기] 한 명의 아이가 자란다는 것

글자크기
새벽에 동생에게 갑자기 연락이 왔다. 육아휴직 마치고 첫 출근을 하는 날인데, 아이를 봐주기로 한 동생이 아파서 일어나지 못하는 상태라고 했다. 출근하는 동생과 아프다는 다른 동생의 소식에 나는 서둘러 동생 집으로 향했다.

육아가 현실적인 문제로 와 닿은 것은 조카가 태어나면서부터이다. 동생은 1년 동안 육아휴직을 했고, 무급으로 2개월 더 연장하면서 육아를 전담해 왔다. 그런데 육아휴직이 끝나면서 고민이 깊어졌다. 부모님도 멀리 떨어져 살고, 아이를 돌봐 줄 사람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지난달에 퇴사한 셋째 동생이 두 달 동안 조카를 맡아 주기로 했고, 내가 간헐적으로 육아를 지원하기로 했다. 그렇게 세 자매는 육아에 투입되었다.

출근하는 동생 부부를 보며, 조카는 떨어지기 싫어했다. 동생들은 며칠 전부터 엄마와 떨어지는 연습을 했지만 아무리 연습을 하더라도 이별은 조카에게 늘 어려움이었다. 아이와 떨어져서 일터에 나간 동생도 불안하고, 조부모들도 걱정돼서 영상통화를 걸어왔고, 아이를 보는 우리도 긴장된 하루를 보냈다. 오늘을 위해 예행연습을 하고 준비를 했다지만 혼자 조카를 돌봐야 한다는 긴장감에 셋째 동생도 앓아누운 것이다.

둘째 동생 부부는 엔지니어다. 두 사람은 회사에서 만나 결혼했다. 출산을 앞두고 동생은 육아휴직을 했고, 올해 남편도 육아휴직을 낼 계획이었다. 하지만 구체적인 육아휴직 계획을 세우면서 현실적으로 남성이 육아휴직을 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고 했다. 동생은 육아휴직을 하고 다시 출근하면서, 5년 차 엔지니어로서 경력을 더 쌓아 가기를 원했다. 그러나 기술직에 있는 여성들은 출장 갈 일이 생겼을 때 포기하거나 여러 프로젝트에서 배제되는 것을 경험한다고 했다. 남성들을 선호하는 업계 문화에서 아이가 있는 여성이 현장에 나갔을 때, 여성의 능력을 의심하거나 별로 안 좋아하기 때문이다.

또 어린이집은 3월부터 입원을 하는데 육아휴직이 끝나는 시기와 어린이집에 보내는 시기가 맞지 않을 경우, 아이를 돌봐 줄 수 있는 곳을 찾는 것이 힘들다고 했다. 조카가 어린이집에 들어가더라도 퇴근 시간과 어린이집이 끝나는 시간 사이에 두 시간 정도 공백이 생긴다. 갑작스럽게 야근이 생기면, 아이에게 미안해지고 그렇다고 일을 안 할 수도 없는 딜레마를 경험한다. 짧은 몇 달, 몇 시간이라도 그 공백은 크게 느껴진다고 했다. 동생은 이러한 환경 때문에 여성들이 육아휴직 후에 일터를 그만두거나 아르바이트를 선택한다고 했다.

퇴근하고 돌아온 동생과 조카는 한동안 떨어지지 않았다. 동생에게 출근이 어땠는지 물으니, 일하는 것은 힘들지 않았지만 아이가 엄마 없이 하루를 잘 보냈는지 걱정이 컸다고 했다. 동생은 원고 마감을 미뤄 두고 와준 나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런 마음을 갖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엄마’ 노릇과 역할을 수행하는 동생에게 아이를 맡기는 일은 괜스레 다른 이들에게 미안해지는 일이 되는 것이다. 아이를 돌보는 일뿐만 아니라 육아를 둘러싼 환경이 ‘엄마’에게 집중되고, 부담과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 상황에서 나도 괜스레 동생에게 미안해졌다.

한 명의 아이가 자란다는 것은 하나의 세계가 만들어지는 일이다. 아이는 저절로 자라지 않는다. 가족 단위를 넘어 마을과 사회가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지고 바뀌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육아 정책은 개인의 몫이 아니라 사회의 몫이라는 인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부모의 노동시간을 줄이고, 아이들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고, 개인에게 주어진 독박육아의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러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가장 가까운 어린 존재에게 관심을 기울일 때 인식의 전환은 시작될 것이다.

천주희 문화연구자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