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이 9일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조재범 전 코치 성폭행 파문 관련 브리핑을 갖고 체육계 성폭력 비위 근절을 위한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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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엔 리듬체조 이경희 코치가 간부 B씨가 2011년부터 3년간 자신에게 성폭력을 가한 사실을 폭로했다. 이 코치는 2014년 탄원서를 제출했고, 가해자는 면직됐다. 그러나 B씨는 몇 년 뒤 다시 임원으로 돌아오려는 시도를 하다 대한체육회 심의위원회 인준을 받지 못했다. B씨는 체육회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이 코치와 자신이 연인 관계였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가해자가 되려 피해자를 공격한 것이다. 이 코치는 이에 분노해 직접 방송에 나와 이 사실을 공개했다.
두 여성 체육인이 용기있는 목소리를 낸 지 1년 가량이 지난 2019년 1월.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22)는 폭행 혐의로 수감중인 조재범 전 코치를 성폭행 혐의로 추가 고소했다. 폭행 뿐 아니라 17살 때부터 4년간 지속적으로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는 주장이다. 조 코치는 성폭력에 대해서는 부인하고 있다.
체육계에서 폭력 및 성폭력이 더 심각하게 나타나는 건 폐쇄적이고 상하수직적인 '갑을관계' 때문이다. 선수는 지도자의 지시를 따라야만 한다. 지도자가 경기 출전 및 진학, 성적과 관련해 절대 권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을'이 목소리를 내기 위해선 더 조심스럽고, 세심한 대처가 필요하다.
조재범 코치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심석희를 지도했다. 폭력은 그때부터 자행됐다. 심석희 측 관계자는 "혼자서 끙끙 앓았을 것이다. 체육회나 연맹은 물론 가족들에게도 털어놓지 못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김은희씨는 "심석희 선수가 성폭력 사실을 공개한 건 보고 마음이 아팠다. 나도 누구에게 털어놓지 못했다. 선수 생활을 더 해야 하는 상황에서 앞으로가 더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했다.
'미투' 열기가 뜨거웠던 지난해 체육계 여성 관련 단체 및 부서들은 체육계 성폭력 근절 대책과 법 제정을 촉구했다. 그러나 스포츠계의 반응은 조용했다. 1년 동안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밝힌 인물은 없었다. 이경희 코치처럼 사실을 밝힌 뒤 2차 피해를 입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정부와 종목 단체 등의 태도도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한 체육계 여성 인사는 "사건이 발생하면 종목단체에선 덮기 급급하다. 가해자 뿐 아니라 단체에 대한 엄벌을 내려야 한다. 지도자들에 대한 교육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빙상경기연맹도 심석희의 폭행 사실에 대해서는 인지했으나 이를 숨긴 바 있다.
정부와 사회가 적극적으로 움직일 필요도 있다. 김은희 씨는 "미투운동을 진행하는 한 여성체육단체를 찾아갔지만 냉소적인 반응이었다. 합의 얘기를 꺼냈다는 이유로 모멸적인 표현까지 들었다. 가슴이 아파 눈물이 났다"고 했다. 김 씨의 싸움은 외로웠다. 문화체육관광부, 대한체육회 산하 스포츠인권센터, 대한테니스협회 등에도 수차례 신고했지만 큰 도움을 얻지 못했다. 성폭력 피해여성을 돕는 한국여성의전화와 몇몇 사람이 도움을 줘 법정싸움을 진행할 수 있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9일 조재범 코치 성폭력 사건에 대한 브리핑을 열고 대책을 발표했다. ^가해자에 대한 영구제명 확대 ^민간주도 성폭력 사례 전수조사 ^체육단체 전담팀과 기구 구성 ^선수촌 합숙훈련 개선 등이다. 요컨대 선수들이 좀 더 편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는 자정의 기회를 한 차례 놓쳤다. "또다른 피해자가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 공개했다"는 심석희의 말을 귀담아 듣고 두 번째 기회는 놓치지 말아야 한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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