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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한국 정치와 한국 진보는 화석이 되어버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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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반도의 새로운 상상력은 어디로 갔나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 평양을 방문했을 때 가장 눈에 띄었던 장면은 거대한 5.1 경기장에서 그를 응원하기 위해 모인 15만 명의 평양 시민들을 앞에 두고 한 연설이었다. 이 열성적인 남녀 군중한테서 나오는 열정은 그 강도 면에서 놀랄만한 것이었으며, 문 대통령 자신도 이러한 반응에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었다.

문 대통령이 발언하는 모든 단어는 청중들의 무제한적인 환호를 통해 강조되고 부각되었다. 김일성을 인용했을 때에는 문 대통령과 군중들이 '하나의 몸'인 듯 보였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한국에서는 방탄소년단(BTS)이나 아이콘(iKON)의 콘서트가 아니면, 이 정도의 열정에 찬 대중을 결코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나는 문 대통령에게 그 순간이 매혹적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문제는 북한의 음모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한국에서는 정치인들이 축복을 받기 위해 권력과 돈을 가진 사람들 앞에서 절을 하는 공허한 의식이 정치적 관례가 되었고, 그러한 관례는 자신이 얼마나 접근하기 쉬운 사람인가를 증명하고,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정치인들이 전혀 만난 적이 없으며, 향후에도 결코 다시 만날 일이 없을 젊은이들 및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공개적으로 포즈를 취하는 또 다른 의식으로 강조되곤 한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직면한 상황은 달랐다. 그곳에 모인 군중들이 권력의 지배를 받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고, 아마도 그러한 주장이 어느 정도는 사실이겠지만, 군중 자체는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 나는 평범한 북한 사람들의 정치에 대한 헌신을 단순히 독재 정권의 표식으로 일축할 수 없다고 본다. 대규모 집회와 완벽하게 조정된 댄스 루틴 뒤의 모든 쇼맨십과 강압에는 '참여 심리학'을 암시하는 뚜렷한 에너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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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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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그런 공간이 사라졌다는 것은 과장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2016년에 박근혜 정부를 무너뜨린 촛불 집회를 아직 기억하고 있다. 그 항의 시위는 높은 수준의 정치 참여를 나타냈으며, 박근혜 정부를 무너뜨렸다는 좁은 의미의 목표에서 보면 성공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뒤에 숨어 있는 제도적 부패, 국내 경제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역으로 부상한 해외 투자은행들, 트럼프 행정부 지시에 대한 맹종과 집착, 이란과의 전쟁을 위해 미국 내 네오 파시스트 운동에 관련한 완전한 침묵 등의 문제는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 '촛불 혁명' 대통령으로서 갖는 문 대통령의 신화는 사라져 버렸다.

한국에서 정치가 쇠퇴하게 된 것은 인간의 경험에 대한 페티시즘적 접근 방식과 지나친 상업주의에 따른 결과이다. 삶의 모든 측면은 유료로 제공되는 일종의 서비스나 움직이면서 즐기는 일종의 황홀감으로 제공된다. 이러한 건강하지 못한 문화는 한국의 출생률이 절대적 최저점에 도달한 바로 그 순간에 자리 잡았으며, 최근 예멘 출신 난민에 대한 항의에서 표출되듯 이민자에 대한 적개심 결합되었다.

더욱 노쇠해진 사회는 고령자가 정치 과정 대부분을 지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정치 경제의 많은 부분을 결정하는 것은 70세 이상 남성들이다. 이 문제는 부(副)의 집중으로 인해 더욱 악화되고 있다.

대다수 젊은이들은 정치 과정에서 소외되고 있으며, 극히 일부만이 참여하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 많은 이들은 변화에 대한 희망을 포기했다. 대신 게임과 포르노, 기타 현실 도피적 행위에 빠져드는 것과 같은 방종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야말로 정치가 붕괴되었다.

진보주의 운동은 1980년대의 민주화 운동이나 2000년대 초 노무현 정부에 활력을 불어넣었던 열정을 상당 부분 잃어버렸다. 특히 진보적인 정치적 논쟁이 좁은 범위의 상징적 문제들로 한정되었다는 사실이 눈에 띈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인이 성적으로 학대한 '위안부'에 대한 논의는 끝없이 이어지지만, 오늘날 한국 남성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외국인 여성 학대에 대해 관심 갖는 이는 거의 없다. 또한 자유무역이 농업 및 노동자들의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금기 주제가 되었다.

노년에 접어든 진보 정치 지도자 중 다수는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이라는 향수에 빠진 채 현재 한국의 노동 계급 젊은이들이 직면한 진정한 문제를 모르고 있다. 그들은 미국 민주당원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기업과의 긴밀한 협력보다는 좌파로부터의 비판에 더욱 관심이 있다. 결국 그러한 나이 든 지도자들 중 다수는 상당히 부유해졌으며 더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것보다는 자신들의 자녀나 손자를 좋은 대학에 진학시키는 데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다.

최근 영향력이 큰 진보 정치 활동가들이 주최한 책 사인회에 초대를 받았다. 그 자리에서 올해 53세인 내가 참석자 중 최연소자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멸종한 파충류 알로사우루스와 디메트로돈처럼 화석화된 이들은 그곳에 모여서 자신들이 70년대와 80년대에 만났던 학생들의 투쟁에 대해 몇 시간 동안 장황하게 늘어놓은 다음 그 시대의 노래를 불렀다. 그들은 민주주의에 대해 이야기하고 몇몇 보수 정치인들에 대해 비난했지만, 일반 청년들이 직면한 악몽과 같은 세계에 직면한 일반 청년들이 저하된 현대 교육 하에서 살아남으려고 애쓰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일체의 말을 하지 않았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쇠퇴하고 있는 경제 체제의 최전선에서 탐욕스러운 학원들과 그들을 고용해야 하는 기업들의 거만한 무관심 사이에 끼어있는 있는 한국 젊은이들이 그 행사에 대해 전혀 듣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나이 든 진보주의자들이 청년들을 행사에 초대했다면, 행사 참석으로 인해 많은 이익을 본 사람이 거의 없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지난달 진보적인 서점에서 친구를 만나 커피 한 잔을 마셨다. 그곳에 진열된 한국어로 쓰인 교육, 경제, 사회 및 문화에 관한 책들은 훌륭했다. 서점 주인은 현대 사회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는 가장 사려 깊은 지식인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나이 든 지식인들이 만든 지적 공간과 혼란스러운 사회에서 방향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일반인들의 세계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틈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한국 전역의 카페와 편의점에서 일하며 혼란스러워하는 많은 젊은이들은 그 서점에 있는 책의 내용을 통해 큰 이익을 얻게 될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독서하는 습관을 갖고 있지 않겠지만 그러한 글들에서 찾을 수 있는 현대 한국 사회에 대한 정직한 평가는 많은 가치가 있을 것이다.

내가 확신하는 것은 그 젊은이들이 그러한 진보적인 서점의 존재에 대해 알지 못하며 서점이 세워진 것을 매우 낯설게 여길 것이라는 점이다. 애석하게도 그들은 대중가요의 가사에서 자신들이 처해 있는 어려움에 대한 공감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좋은 의도에서 그러한 서점을 운영하는 고등 교육을 받고 부유한 사람들은 무자비한 사회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에게 접근하는 방법을 모른다.

나는 한국에서 살았던 11년 동안 4개의 진보적 비정부기구(NGO)에 참여했지만, 모든 곳에서 참여 문화가 사라진 것을 느껴 그만두었다. 그 NGO들은 내가 월 회비를 지급할 것을 기대했으며, 나는 연례 모임에 초대받았지만, 그 외의 다른 행사에는 참석할 기회가 없었으며, 내가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도움을 제공할 방법이 없었다.

회원 자격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음이 분명해졌다. 오히려 연례 모임에서는 진보적 성향의 부유한 기부자들이 더 중요한 것으로 보였다. 다시 말해 이런 진보적 기부자들은 마치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북극곰을 구하기 위한 캠페인을 하는 것처럼 자신들의 진보적 활동을 바라보고 있다. 그린피스는 북극곰에게 의견을 말하거나 회원이 되도록 요청하지 않으며 진보적 단체들은 노동 계급 사람들에게 가입을 요청하지 않았다.

내가 가장 큰 노력을 기울였던 NGO는 참여연대로, 대전과 서울에서 회원으로 참여했었다. 당시 나는 한국의 외국인 노동자를 포함한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세미나를 개최하여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과 관심사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내게 필요했던 것은 사무실과 참여연대 홈페이지에 이벤트를 게시하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제안은 거절당했다.

4개월 전, 참여연대 측으로부터 회원 탈퇴 이유를 묻는 전화를 받았다. 나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또한 내가 행정 담당자들과 만나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할 수 있다면, 기꺼이 다시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 이후 나는 그들의 답변을 전혀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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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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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한국 보수주의자들의 상황은 어떨까? 불행하게도 그러한 정치의 화석화 과정은 보수 진영이 더욱 심각하다. 광화문 광장에서는 보수 진영의 보수적인 항의 시위가 정기적으로 벌어지고 있는데 여기에 참석하는 이들은 한국, 미국, 이스라엘 깃발을 손에 든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일본과의 긴밀한 군사 협력을 위해 보수 정치인들 간에 정책이 추진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장기를 들고 있는 이들은 찾을 수 없다.

이러한 집회들에서는 주로 반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기독교계의 지원,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국방 정책, 1960년대와 1970년대 한국의 발전 모델에 대한 찬양 등이 주요 주제가 되고 있다.

시위 참석자 중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진이 부착된 배지를 착용한 노인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나는 한국의 국제 무역 의존도를 높이고 농업을 경시하며 화석 연료를 대규모로 수입하기로 한 박 전 대통령의 결정이 큰 실수였다고 생각하지만, 그의 경제 성장을 위한 끊임없는 추진력과 공교육에 대한 공약이 여전히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내가 이해하기 힘든 사실은 이 노인들이 한때 좌익 남로당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고, 경제적 자립을 주요 목표로 삼았던 박 전 대통령을 현재의 보수 정당들과 연관 짓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이었다면, 현재 보수 진영에서 추진하고 있는 수입 식품 및 기타 중요한 물자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고 외국의 투자 은행들이 한국 경제에 직접 간섭하도록 허용하고 있는 황당한 경제 정책을 결코 지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맥쿼리 그룹과 같이 포식성을 갖고 있는 해외 금융 기관에게 자국의 인프라를 기꺼이 팔아넘기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이었으면 민관합작투자 인프라 법(PPI Act)을 수용하거나 한국 경제의 중추 역할을 했던 영세 자영업자들이 망하도록 방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 보수주의자들은 한국의 전통을 파괴하고 카지노 홍보나 성형수술의 장려 또는 광고에서 성적 대상으로 여성의 역할을 국한시키는 것 외에는 어떤 것도 생각하지 않는 파괴적인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만을 고집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보수 정치에서 노인 집단의 가장 중요한 주요 자산은 한미 동맹이다. 한미 관계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선교사들 및 평화봉사단 자원 봉사자들과 한국 전쟁 이전 시대에 민주적 과정을 붕괴시킨 무자비한 군부 인사들이 어우러진 매우 복잡한 관계였다.

노인 시위대는 실제 미국 정부의 정책에 대해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하거나 양국 관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진정하고 실질적인 제안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미국은 급격한 발전보다는 안정되고 예측 가능한 과거를 상징하는 비유가 되었다.

미국에 대한 보수주의자들의 이러한 태도를 통해 가장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은 과거 한국인들이 우수한 문화 및 경제력을 갖추었던 명나라를 형님으로 섬기며 예를 갖추었던 사대주의 방식이다. 결국 명나라는 1592년과 1598년 사이에 조선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이끄는 일본으로부터 침략을 당했을 때 구원병을 보내기에 이르렀다. 양국 관계를 공고히 하는 일련의 캠페인을 통해 깊은 유대 관계가 형성되었다. 당시 대부분의 한국 지식인들에게 있어 명나라는 정치적,문화적 권위의 원천이 되었다. 그러나 이미 가속화되고 있던 명나라의 정치, 도덕 및 제도적 쇠퇴는 17세기 초반 절정에 이르렀다. 명나라 정치 문화의 문화적 특징이 한국에 강하게 남아 있었지만, 명나라 자체는 국내 곳곳에서 일어난 반란으로 인해 갈가리 찢어졌고 결국 1644년 정치 단위로서는 완전히 파편화되어 붕괴되었다.

당시 한국 지식인의 대다수는 그 후 300여 년 동안 명나라의 문화적 권위에 충실했으며, 만주족이 청 왕조를 설립함으로써 한국 보수주의자들의 눈에는 천명이 위태롭게 된 이후에도 한국에 있는 기관을 유지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한국인들은 명 말기에도 쇠퇴하고 있는 징후들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명나라의 권위는 멸망한 이후에도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한국에는 현재까지도 명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1627~1644)의 연호를 계속 사용하는 유교 서원들이 있다.

현재 보수주의 운동가들의 태도는 이와 상당히 유사해 보였는데 나는 미국이 한반도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그만둔 이후에도 미국에 대한 그러한 충성심이 계속 유지될 것인지 여부가 궁금했다. 보수주의자들은 그들에게 이익이 되는 미국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원하지만 그것은 이미 사라졌다. 그들은 문재인 정부가 현실에 직면할 것을 요구하기보다는 오히려 북한의 지도자와 '사랑에 빠졌음'을 말하는 미국 대통령에 맞서 과거에 대한 그들 자신의 신화로 후퇴하고 있다.

노인들에 의한 진보와 보수 담론의 지배 및 좁은 범위로 한정된 주제의 제한으로 인해 한국은 북한의 개방을 잘 활용할 능력이 마비되었다. 북한과 함께할 많은 프로젝트를 제안 및 실행할 수 있는 창조적인 젊은이들이 많이 있지만, 근본적으로 그들은 방관자로 남아있으며 갈수록 살아남기 위해 투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북한은 많은 문제를 갖고 있지만 가장 큰 난제는 한반도의 새로운 가능성을 상상하는 남한 사람들의 능력이다.

기자 :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아시아인스티튜트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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