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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사법농단 법관들에 ‘이런 징계’ 내리려고 6개월 장고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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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징계위 회부 13명 중 8명만 ‘정직·감봉·견책’

이규진·이민걸 정직 6개월…2명은 ‘불문’ 3명은 ‘무혐의’

법관 독립성 훼손 심각한데도 ‘큰 문제 안된다’ 인정한 셈

“법원 자정 기회 걷어차…국회가 탄핵소추 절차 돌입해야”

대법원이 ‘양승태 대법원’ 사법농단에 연루된 법관 3명에게 정직 3~6개월, 4명에게 감봉의 징계를 내리기로 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징계절차에 회부한 지 6개월 만에 나온 ‘늑장 징계’다. 법관 독립 저해에 가담했는데도 징계 최대 정직 1년에도 못 미치는 처분을 내렸다. ‘솜방망이 징계’라는 비판이 나온다.

대법원 법관징계위원회는 법관 13명의 징계 심의 결과 이규진·이민걸 서울고법 부장판사에게 각각 정직 6개월, 방창현 대전지법 부장판사에게 정직 3개월 징계를 내리기로 의결했다고 18일 밝혔다.

이규진 부장판사는 ‘양승태 대법원’ 때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일하며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지방의원 행정소송과 관련해 재판부 심증을 파악하고 대응방안을 마련하는 데 관여했다. 이민걸 부장판사는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으로 근무하면서 더불어민주당 유동수 의원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관련 문건을 작성하라고 지시했다. 방창현 부장판사는 이규진 부장판사에게 사건의 심증을 노출하고 선고 연기 요청을 받아들였다.

감봉 처분을 받은 법관 4명은 법원행정처 심의관으로 재직하면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지시에 따라 재판 거래 및 법관 사찰 문건을 작성했다. 박상언 창원지법 부장판사와 정다주 울산지법 부장판사는 감봉 5개월, 김민수 창원지법 마산지원 부장판사는 감봉 4개월, 시진국 창원지법 통영지원 부장판사는 감봉 3개월이다. 문성호 서울남부지법 판사에게는 견책 처분이 내려졌다.

징계위는 나머지 5명 중 2명에 대해선 징계사유는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불문’으로 정해 책임을 묻지 않았다. 다른 3명은 무혐의로 판단했다. ‘양승태 대법원’ 때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실장과 사법정책실장으로 근무하면서 국제인권법연구회 탄압 방안 논의에 참여했던 홍승면·심준보 서울고법 부장판사 등 5명이 책임을 면하게 된 것이다.

징계 결과를 두고 사법농단 사태의 엄중함에 비춰볼 때 납득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법원 안팎에서 나온다. 한 법원 관계자는 “심의관들은 윗선 지시를 받기는 했지만 작성 문건 내용을 보면 법관 독립을 해치는 내용이 상당수”라며 “감봉은 대법원이 이러한 행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해준 셈”이라고 했다. 판사 출신 박판규 변호사도 “사법농단을 보는 대법원 시각이 얼마나 안이한지를 알 수 있다”며 “징계를 안 할 도리가 없을 정도로 명백한 사안에 대해서만 어쩔 수 없이 징계를 했고, (진실을) 밝혀서 사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는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징계위는 위원 7명 중 4명이 법관으로 구성돼 있다.

‘양승태 대법원’이 2014년 원세훈 전 국정원장 1심 판결에 대해 ‘지록위마(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다)’라는 비판글을 법원 내부통신망에 올린 김동진 부장판사에게 법관의 품위를 손상했다며 정직 2개월의 징계를 내린 것과 비교해보면 이번 징계가 얼마나 약한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법관 5명의 관여 정도가 상당한데 어떠한 징계처분도 하지 않은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충격적”이라고 논평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자정의 기회를 법원 스스로 걷어찼다”며 “국회는 즉각 법관 탄핵소추 절차에 돌입하라”고 했다. ‘사법부 블랙리스트’ 피해자 차성안 판사는 ‘탄핵 국회 청원에 동참할 판사를 모집한다’는 내용의 글을 법원 내부통신망에 올렸다.탄핵소추 필요성은 커졌다. 임 전 차장 공소장에 임 전 차장,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의 범죄에 관여하거나 방조한 것으로 적시된 전·현직 판사는 65명이지만 김 대법원장은 추가 징계 청구를 하지 않았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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