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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연통 빠졌는데, 만원짜리 가스경보기 하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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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치르고 여행떠난 고3생 참변
다중 이용하는 ‘펜션’인데
경보기 ‘설치의무’도, ‘감독권한’도 없어

고교생 3명이 숨지고, 7명이 의식을 잃은 강릉 펜션 사고 현장에 일산화탄소(CO) 경보기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수능 시험을 마치고 학생들끼리 2박3일 일정으로 현장체험학습을 나온 서울 대성고 3년생 10명이 일산화탄소 누출로 추정되는 사고를 당해 18일 밤 현재 3명이 숨지고, 7명이 의식을 잃은 상태다. 학생들은 전날인 17일 투숙해 18일 새벽 3시까지 인기척이 있었으나, 18일 오후 1시 12분 펜션 주인이 쓰러진 학생들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사고 현장에 도착한 소방당국이 펜션 내부의 일산화탄소를 측정했을 때 농도는 155ppm이었다. 일반적인 수치(20ppm) 8배에 달하는 수치로, 전문가들은 "사고를 당한 시점의 농도는 이보다 훨씬 높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가스 누출’로 사고 원인을 좁혀가고 있는 중이다. 학생들이 투숙한 방은 펜션 201호로 LPG(액화석유가스)를 사용하는 보일러가 단독으로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일산화탄소가 건물 외부로 빠져나가도록 만든 LPG 보일러 연통이 보일러 몸체와 분리된 것을 확인했다. 가스안전공사 관계자는 "보일러 본체와 연통이 분리된 틈 사이로 일산화탄소가 누출된 것 같다"고 했다.

강릉경찰서·국립과학수사연구원·가스안전공사 등은 이날 오후 5시부터 사고가 발생한 경포아라레이크 펜션 내부에서 합동감식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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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에 파는 보급형 일산화탄소 경보기는 1만원 내외로 쉽게 구매할 수 있다./네이버 쇼핑 캡처


연통이 빠져 가스가 실내로 역류됐다 하더라도, 일산화탄소 경보기가 있었다면 희생이 줄었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경보기는 공기 중 가스 농도가 50ppm이 넘으면 60~90분 이내로 경보음이 울린다. 100ppm일 때는 10~40분, 300ppm이 넘어가면 3분 이내로 울린다. 일산화탄소 경보기는 6000~1만3000원에 판매되고 있다. 보급형은 1만원 이내면 산다. 소방 관계자는 "펜션에 일산화탄소 경보기가 설치되어 있었다면, 학생들이 경보음을 듣고 질식하기 전에 대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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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화탄소 경보기는 공기 중의 농도가 50ppm가 넘어가면 60~90분 이내로 경보음이 울린다. 100ppm일 때는 10~40분, 300ppm이 넘어가면 3분 이내로 울린다./헬로우캠핑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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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지어진 건물은 올해 7월 소유주가 바뀌며 펜션 영업 신고를 했다. 7월 신고 당시 강릉시 보건소는 경포아라레이크 펜션에 대해 위생·안전점검을 실시했고, 시설에 하자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당시 보일러 점검은 하지 않았다. 강릉시 보건소 관계자는 "보일러나 일산화탄소 경보기 등을 점검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했다. 현행 농어촌정비법에 따르면 숙박업소에 대해서나 소화기나 취사시설, 단독 경보형(연기)감지기만 안전점검하도록 하고 있다.

또 우리나라 주택·펜션에는 일산화탄소 경보기 설치 의무가 없다. 정부가 지난 9월 야영시설에 연기감지기와 일산화탄소 경보기를 설치하도록 관련 법규를 마련했으나, 주택이나 펜션은 설치 대상에서 포함되지 않았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당시 일가족 3명이 캠핑장에서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숨지는 등 캠핑장에서 발생한 안전 사고가 문제돼 캠핑장만 경보기 설치를 의무화한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나라는 매번 사후약방문식으로 일이 터지고 나서야 제도가 정비된다"고 말했다.

[박현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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