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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매경이 만난 사람] 투자개방병원 허용이후 보폭 넓히는 원희룡 제주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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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원희룡 제주지사가 최근 제주시 연동 제주특별자치도청 집무실에서 블록체인 허브 등 퀀텀점프 전략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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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 때였다. 부모님이 끌던 리어카에 발이 끼어 보기 흉할 정도로 기형이 돼 버린 오른발 두 번째 발가락을 보며 마라톤에 푹 빠졌다. 그 아픈 발가락이 지금도 쉼 없이 달릴 수 있는 가장 큰 힘이 됐다. 마라톤 풀코스를 여덟 차례나 완주했지만 그는 아직도 더 달려야 한다고 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첫인사로 "꿈이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인생이죠. 꿈을 품고 달리면 희망의 자기부상열차를 올라탈 수 있죠"라고 했다. 2005년 저서 '나는 서브쓰리를 꿈꾼다'에 직접 쓴 글귀다. '서브쓰리(Sub 3)'는 42.195㎞ 마라톤 풀코스의 3시간 내 완주를 뜻하다. 원 지사는 '서브쓰리는 꿈'이라며 "청년들이 꿈을 향해 달리다 보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려 했다"고 설명했다. 심장이 터질 듯한 데드포인트의 고통을 견디며 달리고 있는 원 지사의 '서브쓰리'는 무엇일까. 바로 제주였다.

―첫 투자개방형 병원이 세워지게 됐다.

▷외국 의료기관은 노무현정부 당시인 2005년 11월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2006년 1월 제주특별법 제정을 통해 설립이 가능해졌다. 이후 역대 정권에서 제주도의 새로운 먹거리 산업, 의료서비스 산업 육성 차원에서 추진해왔다.

경제 살리기는 국가적 과제다. 특히 대외 의존도가 높은 제주 지역경제는 경기 침체에 따른 체감온도가 더욱 낮다. 도지사로서 관광 산업 재도약, 건전한 외국인 투자 자본 보호, 지역경제 활성화, 대외 신인도 등을 고려해 다양한 선택지를 놓고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충분히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를 가동하고, 공론조사를 거쳤지만 찬반이 첨예하게 갈리는 상황에서 행정의 최종 책임자로서 실사구시의 결단이 필요했다. 결론은 내국인은 제한하고, 제주를 방문하는 외국인 의료관광객만을 진료 대상으로 하는 '조건부 허가'였다. 조건부 허가라는 차선책은 제주도와 대한민국 미래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이에 따른 비난은 달게 받고, 책임 또한 질 것이다. 외국 의료기관 허가와 관련해 의료 공공성을 훼손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도지사가 허가권은 물론 허가취소권도 갖고 있다. 당초 허가 취지와 목적을 위반하면 허가 취소도 불사하겠다.

―글로벌 중심지로 제주가 꼽히는데.

▷제주도는 서울과 일본 도쿄, 중국 베이징·상하이 등 인구 100만명 이상인 도시 60개가 2시간 비행 거리에 위치해 있는 동북아시아 중심 도시다. 이러한 지정학적 특성을 바탕으로 환경과 에너지, 교육, 회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교류를 추진하고 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유네스코 국제보호지역으로 복합지정(세계자연유산, 세계지질공원, 생물권보전지역, 다수 람사르 습지)된 곳이다. 제주의 환경적 가치를 키우기 위해 제주도와 환경부는 지난 10월 제주를 '동북아 환경 수도'로 육성하기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2030년까지 모든 전력 생산을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고, 모든 차량을 전기차로 대체하는 '탄소 없는 섬'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이는 전 세계 2400여 개 도시에 적용할 수 있어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2005년 '세계 평화의 섬' 지정 이후 후속 조치로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제주국제연수센터가 설립됐다. 이곳에서 운영하는 훈련·연수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 올해만 175개국 1390명이 제주를 방문했다.

―친기업적 제주만의 매력도 눈에 띈다.

▷제주특별법은 제주국제자유도시를 '사람, 상품, 자본의 국제적 이동과 기업 활동의 편의가 최대한 보장되도록 규제 완화 및 규제적 기준이 적용되는 지역적 단위'로 규정한다. 제주도는 제주특별법을 바탕으로 산업구조 다변화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기업 이전과 투자 유치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수도권 기업이 본사나 사업장을 이전할 때 기업 규모에 따라 토지 매입 비용을 최대 40%까지, 설비투자비(건축비 포함)를 최대 24%까지 지원한다. 수도권에 사업장을 그대로 두고 제주에 새로운 사업장을 설립할 때도 설비투자 비용을 최대 24%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이 밖에도 국세·지방세 감면, 수출 보조금 지원 등 제주 투자기업에 대해 다양한 혜택을 제공한다. 건물 임차료, 시설장비 구입비, 고용보조금, 교육훈련비 보조금도 지원한다.

―제주 성장동력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제주의 산업구조는 1차 산업 11%, 2차 산업 18%, 3차 산업 70% 비중이다. 제주가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시대의 흐름 속에 뛰어들어 새로운 먹거리를 찾고, 관광·서비스업 등 3차 산업에 편중된 산업구조를 다변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많은 계획이 성공하려면 제주 청년들에게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청년에 대한 투자는 미래를 위한 투자이고, 제주의 청년이 행복해야 제주가 더 커지고 행복해질 수 있다. 공공 부문 청년 정규직 일자리 1만개 창출을 목표로 한 배경에는 대기업이 없고 영세 중소기업이 대부분인 제주의 산업구조가 있다.

―블록체인 허브 조성 계획은.

▷내년엔 제주를 블록체인 허브로 만든다. 그렇게 되면 변호사, 회계사, 금융전문가 등 제도 운영과 관련된 인력과 기구가 생긴다. 합법적이면서도 공신력 있는 거래소가 만들어지면 당장 중국이나 전 세계에 갈 곳을 못 찾는 블록체인 주체들이 상당 부분 들어올 수 있다. 제주도는 블록체인을 포함한 미래 신산업 전반을 보다 역동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올해 8월 전면적인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기존 1개 과(ICT융합담당관)가 맡고 있던 정보통신기술(ICT) 전 분야를 3개 과가 담당하도록 개편하고, 인력도 대폭 보강했다. 제주는 특별자치도이고 국제자유도시를 지향한다. 타 시도와 차별화된 제도가 있어 각종 정책의 테스트베드로서 최적지다. 블록체인 산업과 관련 글로벌 비즈니스를 꽃피우기에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다. 이런 점에서 제주의 모델을 만들어 가상화폐에 대한 기준과 규제를 명확히 하고, 친화적인 블록체인 산업 여건을 만들어주면 제주가 블록체인 산업에서 국제적 중심으로서 지위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매일경제

―제주국제공항과 해저터널 해법은.

▷제2공항은 도민의 오랜 숙원이자 도민 요구에 따라 시작한 사업이다. 지금 제주국제공항은 이미 이용객이 최대 수용치인 연간 2500만명을 넘어섰고, 항공기와 이용객 안전 문제에 대한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도민사회 일각에서 제기되는 입지 선정 과정 중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타당성 재조사가 이뤄졌다. 국책사업 중 주민 요구를 수용해 타당성 재조사가 이뤄진 사례는 제주 제2공항이 처음이다. 검토위원회 활동은 지난 14일 마무리됐다. 검토위원회가 발표하는 결과에 중대한 결함이 없으면 기본계획 수립을 포함해 향후 절차가 정상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본다. 그렇게 되면 2025년에는 완공과 개항이 가능할 것이다. 앞으로 국토교통부 조사 결과 발표를 지켜보면서 향후 제2공항 추진 과정에서 주민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갈등을 최소화하겠다. 제주 제2공항 건설이 추진되는 상황에서 추가적인 연륙 교통수단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 용역 결과 제주~목포 해저터널을 건설하는 데 예상 공사비만 16조8000억원이다. 제3차 국가철도망구축계획(2016~2025년)에 해저터널이 제외된 것은 경제성·타당성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해저터널을 검토할 이유가 없다.

■ 文정부, 野와 협치를…보수도 포용력 갖춰야

―내년 자유한국당 입당이나 신당 창당 등을 고려하고 있는지.

▷지난 지방선거 당시부터 제주도민의 명령이 있기 전까지는 중앙정치를 바라보지 않겠다고 도민과 약속했다. 민선 7기 도정이 출범한 지 이제 7개월째다. 중앙정치까지 생각이 미칠 겨를이 없다. 지금은 도민과 함께 블록체인을 포함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면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보여줄 수 있는 제주를 만들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할 때다.

―문재인정부는 어떻게 보나.

▷현 정부가 남북 관계 개선과 사법 개혁 등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국민생활에 가장 밀접한 민생경제를 돌보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정부 경제정책의 3대 축은 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공정경제다. 이 중 소득주도성장은 사회경제적 약자의 소득 증대―소비 증가―내부 활성화의 순환구조가 핵심이다. 하지만 고용지표가 날로 악화하고 양극화가 확대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성장론으로는 맞지 않는다. 오히려 (자영업자, 기업 등의) 비용요인을 상승시켜 정부 의도와는 반대 결과가 나오고 있다. 우리 경제가 위기 국면을 맞은 데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등 각 부문 간 격차가 크게 벌어지면서 활력을 잃고 있다는 이유가 있다. 정부는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으로 가고 민간의 창의성을 키우고, 시장의 강점을 세워야 한다. 현재의 정치 지형상 야당의 협력을 얻지 못하면 원활한 국정 운영이 어려운 게 현실인 만큼 야당과 함께 협치에 적극 나서야 한다.

―앞으로 정치적인 계획은.

▷정치 진로를 전적으로 도민에게 위임했다고 말씀 드리고 싶다. 제주에 올인하면서 도정에 성과를 내고 도민 행복과 제주의 미래를 열어 가겠다는 것이 지금 가장 중요한 계획이다. 도정에 전념하면서 도민과 함께 새로운 제주를 만들고, 제주의 변화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보여줄 수 있도록 '더 큰 제주'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힘을 쏟겠다.

―보수의 변화 방향과 역할은.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가 "안보보수, 시장보수, 복지보수 등 모든 면에서 보수의 가치를 지키지 못했다"고 말씀했는데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 새가 한쪽 날개로 날 수 없듯이 정치 발전을 위해서는 건강한 보수와 건강한 진보가 경쟁해야 한다. 보수의 가치를 중심으로 민주화 과정에서 억압받고 고통받은 이들을 끌어안을 수 있는 통합적이고 포용력 있는 보수로 외연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건강한 보수와 진보의 균형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1964년 제주도 중문면(현 서귀포시 중문동)에서 태어났다. 제주제일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대 법과대학에서 공법학 학사를, 한양대에서 뉴미디어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34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서울·수원·부산지방검찰청 검사로 근무했다. 1999년 한나라당에 입당해 정계에 입문했다. 서울 양천갑 지역구에서 16~18대까지 3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2014년 제주도지사(새누리당 소속)로 당선된 데 이어 지난 6월엔 무소속으로 출마해 도지사에 당선됐다. 한림대 의과대학 교수인 부인 강윤형 씨와의 사이에 2명의 딸을 두고 있다.

[대담 = 김경도 전국취재부장 / 제주 = 홍종성 기자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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