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짓날에는 대문에 말 피나 붉은 팥죽을 문간에 뿌려 사귀(邪鬼)를 쫓고 새로운 날을 맞이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붉은색은 혈색이고 생명을 상징하니까요. 동지(冬至)는 말 그대로 겨울이 갈 데까지 갔다는 말이며, 이날을 기준으로 밤이 줄고 낮이 길어집니다. 즉 밝음이 어둠을 이겨 죽음에서 삶으로 바뀐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따라서 고대에는 동짓날이 설날이었습니다. 그랬다가 음력 1월1일이 설날이 된 뒤로도 동짓날을 따로 기념하기 위해 ‘같이 설’이라고 불렀고, 무슨 뜻인지 희미해지자 비슷한 발음인 ‘까치설’이라 부르게 됩니다.
동짓날은 응당 팥죽이지만 애동지 때는 팥죽을 쑤지 않습니다. 여러 속설들이 있지만, 저는 기온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겨울이라도 초겨울이면 아직 상온일 때가 종종 있고, 게다가 팥죽은 상하기 참 쉬운 음식이니까요(저희 형님은 호두과자 트럭만 보면 여름에 호두과자 사 먹고 배탈 난 이야기를 10년 넘게 하십니다). 그래서 애동지가 들거나 동지 무렵이 푸근하면 ‘동지에 팥죽 쉬겠다’는 속담으로 한겨울에도 팥죽 쉰다며 조심했습니다.
올해는 중동지입니다. 팥죽귀신 손 없는 날인지 기상청 연결해보고 쑤어야겠지만, 팥죽 좀 쉴지언정 그래도 따뜻한 동지섣달이면 참 좋겠습니다.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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