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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노래의 탄생]김현식 ‘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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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프레디 머큐리의 요절이 아쉽듯이 김현식의 죽음도 안타깝다. 우리에게 그는 죽는 순간까지 음악만을 생각했던 가수로 기억된다.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병원에서 탈출하여 녹음을 했던 열정적인 아티스트로 지금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1980년대 초 록과 블루스를 지향하는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의 아지트는 서울 동부이촌동 김현식의 자취방이었다. 이정선, 엄인호, 이광조, 한영애, 이주호 등이 매일 모여 술과 음악에 빠져 살았다. 그렇게 어울리던 멤버 중 한 명이던 서 아무개가 사랑하는 여인과 헤어진 뒤 그 아픔을 신촌블루스의 엄인호에게 털어놓았다.

‘골목길 접어들 때에/ 내 가슴은 뛰고 있었지/ 커튼이 드리워진/ 너의 창문을/ 말없이 바라보았지/…/ 만나면 아무말 못하고서/ 헤어지면 아쉬워 가슴 태우네.’ 엄인호는 그 사연을 듣고 단숨에 노래로 만들어 같은 패거리로 어울리던 가수 지망생 유 아무개에게 주었다. 엄인호는 그녀를 짝사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스캔들로 일찌감치 가요계를 떠나는 바람에 노래의 주인이 없어졌다. 가수 방미 역시 리메이크해서 불렀지만 이 노래가 빛을 본 건 김현식을 만나면서였다. 1989년 신촌블루스 2집 앨범에서 김현식은 이 노래의 맛을 제대로 살렸다. 레게풍의 블루지한 느낌이 김현식의 삼베옷 같은 까칠까칠한 보컬과 어우러져 듣는 이들의 감성을 자극했다.

이 노래가 크게 빛을 본 것은 100만장 판매를 기록한 김현식의 유작 앨범 때문이지만 그 이전에도 많은 인기를 얻었다. 김현식은 유독 이 노래를 좋아해서 자주 불렀다. 강한 비트와 절규하는 듯한 목소리가 어우러져 라이브 무대에서 더욱 빛나는 노래였다.

김현식이 떠난 뒤 유작 앨범의 히트로 영원히 기억할 만한 가수가 됐지만 그의 동료와 후배들은 한동안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가 술을 끊을 수 있도록 도와주지 않고 그를 부추겨서 술을 더 마시게 했던 것이다. 이렇게 추운 날이면 그가 겨울바다 어디쯤에서 ‘깡소주’를 들이켜면서 씩 웃고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오광수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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