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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뉴스분석] “신성철 직무정지 반대 서명운동은 과학계 촛불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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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에 종속돼 온 과학계 폐해

학자들이 극복하고자 나선 것"

네이처, 직무정지 보류 전하며

"KAIST 이사회, 정부 뜻 못 거슬러"

'신 총장 흔들기' 청와대 배후설

직무정지 보류로 공은 검찰로 넘어가

중앙일보

국제학술지 네이처가 KAIST 신성철 총장의 연구비 횡령 의혹과 정부의 고발 문제에 대해 13일 기사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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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네이처의 신성철 총장 사태에 대한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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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태는 KAIST 이사회가 정부의 요구를 거절할 힘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KAIST 이사회가 신성철 총장 직무정지 요청 건에 대해 보류 결정을 한 다음날인 15일(한국시간) 국제학술지 네이처가 소식을 전하며 인용한 표현이다. 한국의 주요 대학이 독립적이지 못하고 정부의 간섭에 휘둘리는 것에 대한 우회적 비판이다. 네이처는 지난 13일에도‘총장을 연구비 유용으로 고발한 데 대해 저항하는 한국 과학자들’이란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네이처가 한국 과학기술계의 소식을 연이어 전하는 것은 2005년 황우석 사태 이후 처음이다.

신 총장 사태는 이제 국내뿐만 하니라 국제 과학계에서도 주목하고 있는 사건이 됐다. 신 총장이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총장 시절 프로젝트를 함께 한 미국 로렌스버클리연구소(LBNL)는 이례적으로 과기정통부와 KAIST 이사회에 서한을 보내 신 총장에 대한 정부의 고발 내용을 전면 반박하면서 LBNL과 DGIST간 계약에는 아무련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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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총장 재임 시 비위 의혹을 받는 신성철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이 지난 14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엘타워에서 열린 카이스트 이사회에서 이장무 이사장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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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처 신 총장 사태에 대한 보도를 당분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정부의 신 총장 직무정지 요청에 항의하는 서명운동은 지난 14일 현재 830명을 넘어섰다. 자연과학 분야의 한 교수는 “이번 사건은 신 총장이 실정법을 어겼는지 여부를 넘어 관료에 종속되어온 그간 한국 과학계의 폐해를 극복해야 한다는 차원으로 이해해야 한다”며“800명이 넘는 과학기술인이 서명을 통해 정부의 간섭을 비판했다는 것은 과학기술계의 촛불시위가 벌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과기계는 과기부의 이후 대응 방식도 비판하고 있다. 과기정통부는 14일 KAIST 이사회의 보류 결정 직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이사회의 신성철 총장 직무정지 재심의 결정에 대한 과기정통부 입장’이란 제목의 참고자료를 배포하고 “신성철 총장이 이번 사안의 본질을 왜곡하고 국제문제로 비화시킨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앞으로 이 같은 행동을 자제하기 바란다”며 “향후 교육자로서 검찰 수사에 성실히 임하고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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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입장발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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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국회의원을 지낸 박영아 명지대 물리학과 교수는 “과기정통부가 발표한 자료는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의 명확하고 투명한 해명을 통한 항의와 과학기술인의 정의와 진실을 위한 용기있는 서명운동을 무시하고 신 총장을 죄인인 양 공개적으로 협박하는 것”이라며 “과학계를 향한 정부의 오만하고 야만스런 자세를 보여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신 총장 사태는 언제, 왜 시작된 걸까. 표면적 시작은 지난 7월이었다. 과기정통부가 손상혁 전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총장에 대한 감사를 진행하던 중 신 총장에 대한 비위가 제보되면서부터다. 과기부는 신 총장에 대한 감사를 진행하던 중인 지난달 28일 서울중앙지검에 신 총장을 업무상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고발한 데 이어 이틀 뒤 KAIST 이사회에 직무정지 요청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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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총장 재임 시 비위 의혹을 받는 신성철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이 14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엘타워에서 열린 카이스트 이사회에 참석해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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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기정통부는 KAIST-LBNL간의 계약이 ‘당사자 간 계약’으로만 체결돼 국가계약법에 저촉된다고 밝혔다. 또 신 총장이 주장한 LBNL의 장비 사용 시간이 연간 2주에 불과했다는 점, 계약 당시 작성한 용역연구협약서와 공동연구과제협약서 중 하나만을 한국연구재단(NRF)에 제출했다는 이유로 신 총장에 업무상 배임ㆍ횡령 혐의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과기계에 따르면 ‘신 총장 흔들기’는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부터 시작됐다는 게 중론이다. 박근혜 정부 당시 임명됐던 과기정통부 산하 직할기관과 출연연구기관의 원장들뿐 아니라 KAIST 총장도 사퇴 압력을 받고 있다는 소문이 지난해 5월 이후부터 퍼져나갔다는 얘기다. 신 총장은 박 전 대통령과 초등학교 동기동창이란 인연 때문에 지난해 2월 총장 선거 당시에도 대표적‘친박 인사’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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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철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이 지난 4일 오후 대전 KAIST 대회의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국가 연구비 횡령과 업무상 배임 등 본인을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사진 프리랜서 김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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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계에서 주장하는 대로 이번 사태가‘문재인 정부의 신 총장 찍어내기’ 라면, 이를 주도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출연연 기관장을 지낸 한 인사는 “과학기술계를 잘 알고 있고, 인사를 흔들 수 있는 곳이라면 청와대 과학기술 보좌관실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병태 KAIST IT경영대학원 교수는 “유영민 장관이 스스로 ‘이번 사안은 내 손을 벗어났다’고 말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KAIST 이사회가 신 총장에 대한 과기정통부의 직무정지 요청에 대한 결정을 보류함에 따라, 이제 공은 검찰로 넘어가게 됐다. 검찰은 이번 사안을 서울지검 특수부에 배당했다가 관할지 문제로 대구지검 서부지청으로 이관됐다. 법조계 관계자는 “사건이 특수부에서 지검으로 넘어갔다는 것은 검찰의 수사의지가 강하지 않다는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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