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30 (화)

김수영, 현대시의 닻으로 남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시(詩)는 나의 닻이다'란 명제는 김수영 시인의 원고 귀퉁이에 적힌 육필 문구다. 배를 정박시키는 닻(anchor)처럼 김수영 시인은 사후에도 부유하는 현대시를 붙잡는 어떤 신화로 이해되곤 했다. 김수영을 두고 "신비화를 경계하자"는 목소리도 높지만 그를 기리는 독자는 그를 밧줄로 묶어 시의 바다에 오래 머문다. 김수영 시인에게 시가 닻이었듯 김수영 시가 현대시의 닻이기 때문이다.

사후 50주년을 맞아 김수영 시인에게 헌정하는 문인들의 산문집 '시는 나의 닻이다'(창비 펴냄)가 출간됐다. 반 세기 전 시인과 술잔을 기울였던 염무웅 문학평론가부터 고교 시절, 교과서에서 '폭포'와 '눈'을 읽으며 성장한 신철규 시인까지, 세대를 막론하고 김수영을 기리는 문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문학평론가 이어령·김병익·백낙청·염무웅·최원식·임우기, 소설가 황석영·권여선, 시인 김정환·나희덕·최정례·함성호·노혜경·김해자·심보선·진은영·송경동·하재연·송종원·신철규, 학자 김상환·김종엽·김동규 교수 등 21명이 김수영의 '온몸'을 썼다.

이어령 문학평론가는 15개의 메모로 김수영을 환기한다. "시를 쓴다는 건 자기 발에 맞지 않는 거북한 신, 답답한 신발을 벗어던지는 행위라고 할 것"이라고 김수영의 '맨발의 시학'을 거론한다. "남들이 비웃더라도 차라리 맨발로 백주의 거리를 횡단하라고 외칠 것"이란 대목에선 젖은 웃음기 같은 게 감지된다. 김정환 시인은 '긴박한 현재'라는 시를 김수영의 봉분 같은 이 책에 상재하며 "그는 누구보다 더 오랫동안/긴박한 현재일 것이다/그의 시가 그의 현재에/가장 긴박한 현재였다"고 썼다. 김수영 시 '봄밤'과 동명의 단편을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에 발표한 바 있는 권여선 소설가는 "시 '봄밤'을 읽다보면, 여러 번 읽다보면, 어느 순간 무언가를 더듬더듬 강박적으로 정돈하는 주섬주섬한 시인의 불면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고 남겼다. 학부 시절, 선배로부터 김수영 시전집을 선물받았던 신철규 시인은 '사유의 운동성'에 집중한 김수영의 과거를 되짚는다. "나의 시가 매끄럽게 읽히거나 잘 마무리되었다는 느낌이 들 때마다 김수영의 시와 시론을 떠올린다. 그가 지금도 월평(月評)을 하고 있다면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가"라는 시인의 자문은, 오늘날까지 형형함으로 기억되는 김수영의 눈빛을 떠올리게 한다.

[김유태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