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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생물학자 다윈이 '한국의 저출산'을 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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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이재원 기자] [the300]14일 서울대 인구학연구실 저출산 토크쇼…"물리적·심리적 밀도 줄이는 정책 나와야"

머니투데이

서울대학교 인구학연구실과 이마트24 편의생활연구소는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 스타필드 코엑스몰 별마당 도서관에서 '#헬조선 #소확행 #자식농사?' 토크쇼를 개최했다. 강연중인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왼쪽)/사진=백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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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장려금 250만원'으로 대변되는 한국의 저출산 대책. 인구통계학자 토마스 맬서스와, 생물학자 로버트 다윈은 2018년 한국의 저출산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까. 그들의 관점에서 봤을 때 현재의 저출산 대책은 '원인검토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정책'이라는 혹평을 내릴 확률이 높다.

서울대학교 인구학연구실과 이마트24 편의생활연구소는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 스타필드 코엑스몰 별마당 도서관에서 '#헬조선 #소확행 #자식농사?' 토크쇼를 개최했다. 저출산 문제를 들여다보는 자리지만 복지와 관련한 전문가는 없었다. '저출산을 바라보는 학계의 다양한 시각과 견해'라는 주제답게 인구학, 역사학, 심리학, 수의학 등 다양한 학계 전문가들이 모였다.

강연자로는 서울대 장대익 자유전공학부 교수, 주경철 서양사학과 교수, 장구 수의학과 교수, 조영태 보건대학원 교수와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허지원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등이 나섰다. 빅데이터 전문가인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도 연단에 올랐다. 각자의 전공을 바탕으로 저출산 문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소개했다.

인간본성과 생물철학을 연구하는 장대익 교수는 '저출산, 정책의 실패인가, 진화의 결과인가?'라는 주제로 한 강연에서 "저출산은 인구밀도가 높아지고, 경쟁이 심화하는 환경을 지각한 인간 진화의 결과"라며 "주위 환경에 대한 인간 심리의 적응적 반응"이라고 설명했다.

갈수록 경쟁이 심화하는 상황 속에서는 자연스럽게 번식에 투자하기 보다 성장에 투자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출산보다는 '내가 더 성장해 경쟁해서 승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우선하게 된다는 것. 이에 장 교수는 "저출산 정책은 경쟁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우선"이라며 "이런 고민이 없었기 때문에 저출산 대책이 실패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행복심리학을 연구하는 서은국 교수 역시 "행복과 같이 긍정적인 감정이 미래를 고민하게 하는 사고의 확장을 가져온다"면서 "행복감이 높을수록 절대 출산률이 높은데, 한국은 행복마저도 누군가의 공인과 인정을 필요로 한다"고 지적했다. 인정받고, 평가받기 위한 과도한 타인 중심의 삶이 불행으로 이어지고, 결국 출산률 저하로까지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비출산의 심리학적 기능'을 주제로 강연한 허지원 교수는 심리학의 '강화 후 휴지' 개념을 이용해 청년들의 비혼·비출산을 풀이했다. 허 교수는 "엄청나게 노력하고 경쟁하는 한국의 청년들이 또다른 경쟁상태에 놓이는 것 자체를 혐오하는 상황"이라며 "겨우 취업을 한 것 만으로도 지친 청년들은 '내가 또 결혼을 해야할까'라는 심리상태에 놓인 것"이라고 봤다.

주경철 교수는 역사학적 관점에서 출산률 문제를 설명했다. 급격히 인구가 증가했다가, 다시 줄어드는 경우는 세계사적으로도 있었던 일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다만 소련 붕괴 후 사회안전망 붕괴로 급격히 인구가 감소한 러시아의 사례를 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주 교수는 "알콜 소비나, 교육 문제 등 한국과 당시 러시아가 비슷해 보이는 요소들이 있다"며 "인구의 긍정적인 감소를 넘어, 급격히 줄어드는 것에도 대비를 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마지막 강연자로 나선 조영태 교수 역시 다윈의 이론을 빌려 "이것은 일종의 진화"라며 "젊은 세대가 자기 생존에 바빠 재생산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그간의 인구 분석을 통해 "한국의 전체적인 인구 밀도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면서 "하지만 청년들이 다들 서울로 향하면서 공간적·심리적 집중도 모두가 상승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러면서 "다윈과 맬서스가 정책 제안을 한다면 이런 것을 했을 것"이라며 '청년들의 물리적인 밀도를 줄이기'와 '심리적인 밀도 줄이기'를 내놨다. 물리적인 밀도는 서울을 떠나서도 살 수 있는 여건의 조성이다. 심리적 밀도에 대해선 "한국 사회는 8살에 학교를 입학하고, 20살에 대학을 가고, 28살에는 취업을 하는 등 '적령기'에 집착한다"며 "적령기를 두지 않으면 경쟁과 심리적인 밀도도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행사는 코엑스몰의 한 가운데라고 할 수 있는 별마당 도서관의 일부 공간에서 진행됐다. 완전히 개방된 공간에서 행사가 진행된 덕에 오가는 시민들도 삼삼오오 발걸음을 멈추고 강연을 지켜봤다. 1시간으로 예정됐던 질의응답 시간은 시민들의 참여가 활발해지면서 예정 시간을 넘기기도 했다. 이날 토론 과정에서 나온 내용 등은 추후 책으로 엮어 발간할 예정이다.

이재원 기자 jaygo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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