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8 (일)

"북핵 협상보다 긴박한 경험, '전업 주부' 하면서 겪었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육아휴직' 경험한 외교부 '막내' 대사 임상우

스위스 '독박 육아' 2년 경험담 담은 책 펴내

“아빠든 엄마든 일ㆍ가정 양립 중요성 깨쳐”

중앙일보

임 대사가 12일 저녁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 권유진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현직 외교관이 『스위스 아이처럼, 스위스 아빠처럼』이라는 책을 냈다. 2015년부터 2년 간 스위스에서 전업주부 생활을 했던 '체험기'다. 저자는 임상우(46) 주마다가스카르 대사. 해외에 나가 있는 전체 공관장 중 가장 젊은 ‘막내’ 대사로 올해 초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의 초대 한국대사로 부임했다. 동시에 7살, 10살인 두 아들의 아빠이기도하다.

임 대사는 외교부 북미국 과장 재임 시절, 같은 외교관인 부인이 스위스 공관으로 발령받자 과감하게 '육아 휴직'을 신청해 스위스로 함께 떠났다. 아내를 외조하며 ‘독박 육아’한 경험이 준 깨달음은 “엄마ㆍ아빠 역할이 따로 정해져있다고 생각하는 건 고정관념”이라는 것. “아이들에게는 ‘누가 나를 제일 가까이서 돌봐주는가’가 중요하지 그게 엄마인지 아빠인지는 중요치 않더라”라고 말하는 임 대사를 12일 저녁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Q : 외교부 핵심 부서인 북미 과장을 지내다 ‘주부’로 변신했다가 다시 대사로 컴백했다.

A : 전업주부 생활 중에 확실히 느꼈다. '부부가 똑같이 일하는데 한 명만 집안일을 책임지는 건 부당하구나'하고(웃음). 육아 휴직이 끝나고 브라질 공관으로 아내와 나란히 발령이 났는데 그 때는 서로 가사 분담을 했다. 아무래도 아내는 2년간 부엌 살림 등에서 손을 뗐으니까 아이들 챙기는 것과 요리는 내가 하고 그 외 집안일을 아내가 했다. 그 때도 ‘밥권’을 내가 갖고 있어서인지 이후에도 애들이 "밥은 아빠표가 최고야”라고 해준다. 이후 마다가스카르 대사로 부임하게 됐는데 아내는 브라질에서 업무를 마무리하고 합류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학교 문제가 있어서 첫 두달은 내가 먼저 아이들을 데려와 홀로 챙겼다. 이 때가 정말 피크였다. 낯선 곳에서 혼자 학교 알아보고 등록하고, 장 봐서 애들 밥 해먹이고 숙제 봐주고…. 초대 공관이다보니 처리할 일도 많아서 애들 재운 뒤 그 때부터 다시 일했는데, 밤 늦게 자고 아침에 애들 챙겨서 학교 보내기를 반복하다 보니 한 달만에 결국 쓰러졌다. 이후에는 아내가 육아 휴직을 하고 마다가스카르로 와서 전적으로 집안일을 도맡아 한다.




Q : 20년 넘게 외교관 생활을 했음에도 첫 저서로 육아 서적을 쓴 이유는

A : 육아휴직을 할 수 있는 직장이 한정되어 있는 현실에서 내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해 많이 망설인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내 책이 남성 육아휴직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책을 쓰게됐다.




Q : 스위스에서 주부로서의 생활은 어땠나

A : 제네바는 ‘주부의 무덤’이라고 한다. 물가가 워낙 비싸서 외식도 못하고 집에서 다 만들어 먹어야 하고 한국 식료품점도 없다. 요리 레시피를 찾아보면 ‘매실청’을 넣으라고 하던데 그런걸 구할수가 없는거다. 아침ㆍ점심ㆍ저녁을 하면 6시간 이상 걸리고 거기다 빨래, 장보기에 애들 픽업까지 하면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더라. 외교부에 근무하면서 나름 북핵 협상, FTA 협상 다 해봤는데 이렇게까지 긴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은 주부 하면서 처음 겪었다 (웃음) 조금씩 숙달되면서 들이는 시간도 줄고 자신감도 붙었다. 찾는 재료가 없으면 뭘로 대체해야 비슷한 맛이 나는지 바로 알게됐고 잔반 없이 남는 재료만으로도 그럴듯한 요리를 만들어냈다.


중앙일보

임 대사가 부엌에서 아이들을 위한 김밥을 만들고 있다. [사진 임상우 대사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Q : 스위스의 육아는 어떻던가

A : 이건 한정된 나의 경험에서 비롯된것이지만 일단 그들은 아이들을 자연에서 키운다. 스위스가 워낙 자연 환경이 좋은 덕도 있는 것 같다. 우리 가족은 제네바의 외곽 시골 동네에 살았는데 그 곳 교육청의 목표가 ‘성스러운 땅 위에서 자라는 아이들’이었다. 스위스 아이들은 정말 바깥에서 거칠게 큰다. 애들이 땅바닥에서 온 몸으로 놀고 뒹굴고 거칠게 노는데 선생님이 아무런 제지를 안하고 그냥 가만히 보고있더라. 그런데 또 신기한게 애들이 그렇게 놀다가 울거나 다치지 않고 다시 툭툭 털고 일어닌디.


중앙일보

스위스의 포도 밭. 이 곳에서는 자연 환경도 아이들의 '놀이터'가 된다. [사진 임상우 대사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Q : 아이들이 엄마ㆍ아빠 모두가 주부로 지내는 걸 경험했는데 어떻게 받아들이던가?

A : 엄마ㆍ아빠 역할이 따로 정해져있다고 생각하는 건 어른들의 고정관념이다. ‘이제 아빠가 너희들 밥 해주고 챙겨줄거야’라고 하니까 그냥 그런가보다 하더라. 시간이 지나면서 너무 자연스럽게 ‘아빠가 우리를 챙겨주는 사람이구나’라고 인식하게 됐다. 그러다가 다시 마다가스카르에와서 엄마로 바뀌니까 그냥 ‘엄마가 해주는구나’ 하는 것이지 애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엄마ㆍ아빠의 고정된 상에 갇혀서 판단하지 않는 것 같다.




Q : 현업에 복귀했을 때 살림과 육아의 경험이 일에 도움이 되던가.

A : 전업주부, 공동 육아, 독박 육아 등을 다양하게 경험해보니 일에 있어 가정적 요소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됐다. 공관 내에 남자든 여자든 혼자 부임해서 육아를 하는 직원이 있는데 이들의 고충을 잘 알게됐다. 뿐만 아니라 업무 시간 이외에 연락하는 것에 있어 한번 더 거르게되더라. 내일 아침에 해도 되는 일을 굳이 오늘 밤에 연락하지 않는 거다.




Q : 마다가스카르는 1960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했고 절대빈곤층의 비율이 50%에 이르는 젊은 나라로 알고 있다. 마다가스카르에 대한 간단한 소개 해달라.

A : 흔히 ‘마다가스카르’하면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떠올리는데, 사실 포스터에 나오는 동물들은 하나도 없다. 조상이 인도네시아인들이라 마다가스카르 사람들도 대부분 벼농사를 짓고 하루 세 끼 쌀밥을 먹는다. ‘어린 왕자’에 등장하는 바오밥 나무가 상징 같은 건데 워낙 먹고 살기 어려우니까 바오밥 나무를 베어 땔감으로 쓰기도 한다. 마다가스카르의 빈곤은 상상을 초월한다. 세계은행이 정해놓은 ‘빈곤선’이 하루에 1.9 달러인데 이것도 못 버는 사람이 전체 인구의 80%다. 이런 나라에 한국 대사가 처음 부임하니까 굉장히 관심이 많다. 11월에 대통령 선거가 있었는데, 유엔개발계획(UNDP)이 대선을 지원하기 위해 마다가스카르 선거관리위원회와 조직해서 ‘SACEM’이라는 국제 사회의 지원 그룹을 만들었다. 여기에 한국도 들어갔다. 유엔 감시하에 선거를 치렀던 한국이 이제는 도움이 필요한 다른 나라의 선거를 지원하는 그룹의 일원이 된 거다. 그만큼 마다가스카르에게 한국은 ‘꿈의 나라’다.


임 대사는 "책의 수익금 전부를 마다가스카르의 아이와 여성들을 위해 기부하겠다"며 임지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나중에 외교관 생활이 끝났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나라가 어디냐'고 물으면 육아 휴직을 했던 스위스라고 할 것 같다”면서 너털웃음을 지었다.

권유진 기자 kwen.yujin@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