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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이동혁의 풀꽃나무이야기] 겨울되면 잘 보이는 기생식물 '겨우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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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살이는 겨울에 잘 보입니다. 주로 참나무 종류의 낙엽수에 기생하다 보니 여름에는 잎에 가려 잘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얹혀사는 기주목(寄主木, 기생생물에게 장소와 양분을 제공해 주는 나무)의 잎이 다 떨어진 겨울에는 겨우살이만 달랑 남아 쉬이 정체를 들켜버립니다. 겨우살이를 잘 모르는 분들은 아마 겨우살이를 보고도 새둥지인가 보다 하겠지만 말입니다.

조선비즈

겨우살이는 ‘겨울+살이’가 변한 이름이다



겨우살이는 기생식물 중에서도 양심 있는 기생식물로 통합니다. 모든 걸 전적으로 기주목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광합성이 가능한 푸른 잎으로 양분을 자체 생산할 줄도 알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물을 반기생식물이라고 합니다. 반면에 모든 걸 전적으로 기주식물에 의존하는 식물은 전기생식물이라고 합니다.

겨우살이라는 이름에는 상록성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겨울에도 잎을 떨어뜨리지 않고 살아낸다 하여 겨울살이(겨울+살이)라고 하다가 ‘ㄹ탈락 현상’이 발생해서 겨우살이가 됐습니다.

그런데 기생해서 겨우 살아서 겨우살이라고 한다는 식의 ‘썰’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누가 현재의 이름에서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식물명의 유래를 그런 식으로 무책임하게 지어낸 것이 자꾸 통용되다 보면 맞는 ‘설’인 양 문헌자료에 등장하게 됩니다.

그러면 공신력까지 얻어 더욱 널리 퍼지니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실제로 겨우살이의 이름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유명 박사님의 식물명 책에 그대로 실려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말도 안 되는 ‘썰’을 말이 되게 하는 겨우살이 종류가 있으니 바로 꼬리겨우살이입니다. 꼬리겨우살이는 잎이 상록성이 아니라 겨울이 되면 떨어져버리는 낙엽성입니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겨우살이 종류 중에서 유일하게 낙엽성인 나무로, 메마른 몸으로 추운 겨울을 겨우겨우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겨우살이보다는 드문 편이어서 잘 알려지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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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겨우살이는 낙엽성이라 열매가 익을 때쯤에는 잎이 없다



겨우살이가 있다 해서 주변에 꼬리겨우살이가 꼭 있는 건 아니지만, 꼬리겨우살이 주변에는 대개 겨우살이가 함께 있습니다. 그래서 푸른 잎을 달고 열매를 반짝이는 겨우살이 주변에 잎 하나 없이 맨몸으로 열매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는 나무가 있다면 십중팔구 꼬리겨우살이일 겁니다.

두 나무의 열매를 한데 놓고 비교해 보면 꼬리겨우살이의 열매가 조금 작고 색은 더 진한 노란색이며 줄줄이 이삭처럼 달리는 점이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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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겨우살이의 열매(왼쪽)가 겨우살이의 열매(오른쪽)보다 작다



남부지방의 섬 쪽에는 참 희한하다 싶은 겨우살이 종류가 자랍니다. 동백나무겨우살이인데, 다 커봐야 5~30㎝ 정도로 작고 가지가 녹색이어서 바로 옆에 두고도 알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잎은 퇴화돼서 매우 작고 마디의 위쪽 끝에 돌기처럼 달려 있습니다. 잎은 잘 보이지 않지만 줄기가 녹색을 띤다는 건 스스로 광합성을 한다는 증거로, 동백나무겨우살이 역시 반기생식물에 속합니다.

이름대로 동백나무에만 기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동백나무 같은 상록활엽수를 비롯해서 산철쭉 같은 낙엽활엽수, 그리고 계요등 같은 덩굴성 식물에도 마다하지 않고 빌붙어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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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나무겨우살이



꽃은 보통 4~5월에 피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여름까지도 계속해서 피는 것으로 보입니다. 너무 작아서 꽃인지 열매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뿐입니다. 열매는 줄기와 가지의 마디 사이에 작은 이슬방울처럼 붙어 달립니다.

동백나무겨우살이는 기주목을 죽이는 나무라는 썰이 있습니다. 하지만 기주목이 죽으면 자신도 곧 죽는 것인데 어느 식물이 그런 미련한 짓을 하겠습니까? 그것도 체구가 아주 작은 반기생식물이?

그런데 그런 일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건 크지 않은 나무에 동백나무겨우살이가 대량으로 얹혀사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떼 지어 자라면서 계속해서 양분을 가로채 간다면 혹시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보기는 쉽지 않은 일로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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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나무겨우살이의 군생



알려지기로는 한국산 동백나무겨우살이의 약성이 다른 나라의 것보다 좋다고 합니다. 약용식물의 가치가 높아 생약으로의 연구가 진행 중에 있습니다. 민간에서는 다른 어느 나무보다 동백나무에 얹혀사는 것의 약성을 가장 좋은 것으로 쳐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몰래 채취당하는 운명을 지녔습니다.

동백나무겨우살이보다 더 신기함의 진수를 보여주는 것은 참나무겨우살이입니다. 참나무겨우살이는 제주도에서도 서귀포 쪽 바닷가 주변의 나무에서 자랍니다. 그러니 우리나라 남쪽 끝자락의 따뜻한 곳에서 자란다고 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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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나무에 기생해서 자라는 참나무겨우살이



동백나무겨우살이가 너무 작아서 발견하기 어려운 나무라고 한다면 참나무겨우살이는 너무 커서 발견하기 어려운 나무입니다. 기생식물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덩치가 커서 삼나무처럼 커다란 나무에 붙어 자랍니다.

이름만 참나무겨우살이지 실제로는 삼나무에 많이 얹혀사는 편이고 그 외에 구실잣밤나무, 후박나무, 왕벚나무, 동백나무 등등 여러 나무에 염치불구하고 붙어 자랍니다.

참나무겨우살이를 알아보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잎이 동백나무와 닮았다는 데 있습니다. 광택이 나는 모습까지 아주 그럴싸하게 흉내 냅니다. 하지만 참나무겨우살이는 새잎의 양면에 갈색 가루가 덮여 있어서 금세 구분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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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무겨우살이는 어린잎 양면에 갈색 가루가 덮여 있다



참나무겨우살이의 신기함은 잎보다 꽃에 있습니다. 어느 식물사진 동호인이 올린 참나무겨우살이의 꽃 사진을 처음 보았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 우리나라에 저런 꽃을 피우는 나무가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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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무겨우살이의 꽃



컬러풀한 담배꽁초를 묶어놓은 듯한 그 꽃을 보기 위해 곧장 제주도로 달려갔을 때는 조금 늦은 시기였습니다. 참나무겨우살이는 빠르면 9월 중순부터 피기 시작해서 늦으면 11월 초순까지 핍니다. 열매는 다음해 4월 정도에 익고, 점성이 상당히 강해 다른 나무에 붙는 것 하나는 참 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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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무겨우살이의 열매



위의 4종 외에 겨우살이의 품종인 붉은겨우살이가 있습니다. 열매가 연한 노란색이 아니라 붉은색으로 익는 점이 특징입니다. 어느 분이 제게 했던 항의가 떠오릅니다. 붉은색이 아닌데 왜 붉은겨우살이라고 하느냐고. 제가 이름 지은 게 아니니 저한테 그러지 말고 최초 작명자한테 가서 여쭤보시라고 답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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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정읍시 내장산의 붉은겨우살이



주황색과 붉은색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한 최초 작명자에게 문의하면 뭐라고 할까요? 자기가 본 건 아무 진짜 붉은색이었다고 할지 모를 일입니다. 러시아 우수리스크의 것은 정말 붉은색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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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우수리스크의 붉은겨우살이



이동혁 풀꽃나무칼럼니스트(freebowl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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