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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나'를 잃은 조선의 詩, 지금 어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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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나는 나다

정민 지음|문학과지성사|223쪽|1만3000원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가 조선 후기 시인 여덟 명의 시론(詩論)을 현대적 감각으로 풀이했다. 허균·이용휴·성대중·이언진·이덕무·박제가·이옥·정약용이 등장한다. 이 책의 열쇠어는 '나'다. 조선의 한문학(漢文學)이 중국 고전을 답습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나는 누구인가, 여기는 어디인가'라며 독자적 시학(詩學)을 추구한 과정을 재현했다. 저자는 옛글을 유려하고 정갈한 현대어로 옮기고 풀이했다.

허균은 "시를 쓰는 목적은 이백과 두보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다, 바로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덕무는 "규격화된 좋은 시만 따라 하느라 저만의 진짜 시를 잃고 말았다"며 "시는 좋은데 내가 없다. 내가 없으니 허깨비 시에 불과하다"고 자책했다. 이용휴도 "좋은 시란 남들 눈을 놀라게 할 신기한 무엇이 아니라 내 안에서 거짓 나를 몰아내고 참나를 깃들이면서 내가 나와 만나 대화하고, 나를 찾아 내가 되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이옥은 "이곳은 중국이 아니고 일본도 아닌 조선의 한양성이 아닌가"라며 "왜 지금의 나더러 그때를 본뜨고, 여기의 나한테 저기의 나를 흉내 내라고 강요하는가"라고 항변했다.

정약용은 문학과 학문의 일치를 강조했다. 좋은 문장을 원예에 비유했다. "꽃이란 갑작스레 취할 수 없는 것일세. 경전을 궁구하고 예학(禮學)을 연마하여 진액이 돌게 하고. 들음을 널리 하고 예(藝)에 노닐어 가지와 잎을 틔워야 하네. 이에 깨달은 것을 갈래 지워 쌓아두고, 쌓아둔 것을 펴서 글로 짓는 것일세."





[박해현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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