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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문화 인&아웃] 문화를 자유케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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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이 칼럼난에서 지칭하는 문화란 도대체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 레이먼드 윌리엄스는 문화의 정의만 170개가 넘는다고 했다. 그러니 문화란 단어의 정체는 쉽고도 어려운 것임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문화에 대한 많은 정의 중에서 요즘엔 인류학자 에드워드 타일러가 주창한, 문화란 특정한 집단의 총체적인 생활양식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문화는 기본적으로 특정 공동체에서 구성원들이 함께 갖는 그 무엇이며 세대를 거쳐 교육되고 쌓인다. 문화는 문화 자체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등 다른 영역과 얽혀 사회 전체의 틀 속에서 움직인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 공동체의 규범과 같은 기능을 하게 된다.

그러니 우리나라의 문화적 활동들이 다른 나라에서 어떤 대접을 받든 우리 입맛대로 함부로 재단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한 해가 가는 마당에 우리와 지정학적으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중국과 일본에서 우리 문화상품들이 겪고 있는 상황은 매우 걱정스럽다. 2016년 7월 사드(THAAD) 배치 후 3년째 지속되고 있는 중국의 한국 문화상품 금지 조치, 이른바 한한령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한중정상회담 이후 곧 풀릴 것으로 기대했으나 1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금수조치 해제 소식은 깜깜무소식이다. 지난달 일본 한 방송에 출연하기로 했던 방탄소년단이 단원의 티셔츠 건으로 출연이 취소된 사건도 나름 이유야 있겠지만 상당히 당혹스럽다. 특히 자율을 구가해야 할 방송국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비문화적인 행태를 보이는 것은 좋아 보이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 문화 또는 좁은 의미의 문화인 예술 영역에서 정부가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팔길이 원칙'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팔길이 원칙은 예술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차원에서 생겨난 지혜의 산물이다. 이 원칙은 원래 정치와 예술의 관계에 적용되는 것이지만 문화와 다른 영역 그리고 다른 지역과의 관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팔길이 원칙에 비춰볼 때 정부에 의해 주도됐든, 방송국 자체에서 결정한 사항이든 모두 문화적이지 못한 조치들임에 틀림없다. 문화는 막는다고 막아지는 것이 아니고 또 극히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막아서도 안 되는 자유체다. 우리는 이미 예술인 블랙리스트 사건을 통해 문화 간섭이 주는 아픈 경험을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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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간 문화 교류와 수입을 막는 것은 문화사적으로 수치일 뿐만 아니라 자국 문화나 문화산업 수준 향상에도 이롭지 않다. 결국은 자국 국민의 문화 향수 권리와 문화산업 발전에 역행하는 처사다. 일찍이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8년 일본 대중문화 개방 조치를 단행했다. 한일 간의 정치·외교적 굴레로부터 문화를 해방시킨 것이다. 이후 일부 우려와 달리 한국 대중문화가 이전보다 더 강해진 것을 역사는 증명한다. 중국 정부는 이제라도 한한령을 풀어주기 바란다. 일본 정부나 특히 문화 플랫폼인 방송국에서도 문화예술 활동은 문화적으로 품어주길 기대한다.

문화는 문화 자체로만 존재하지 않고 다른 요인들이 혼재돼 있기 때문에 국가 간의 문화 문제를 왈가왈부하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각국 정부는 물론 문화예술을 다루는 기관이나 당사자들은 문화를 문화 외적인 요소들로부터 보호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주면 좋겠다. 당장의 정치·외교적 이해관계 때문에 다른 문화를 막는 것은 장기적으로 볼 때 교각살우의 어리석음을 저지르는 것이다. 한·중·일 세 나라는 지정학적·역사적·군사적·외교적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함께 가야 할 이웃이다. 군사·외교·정치적인 문제가 첨예하게 대립할 때라도 문화 영역에서만은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이제 문화는 문화로 풀어가도록 문화에 자유를 주자.

[박양우 중앙대 예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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