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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돈만 번다면 실형쯤이야"…범행동기 싹 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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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더M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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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범이면 집행유예, 재범도 징역 2~3년 살고 나오면 주가조작으로 벌어놓은 수십 억원으로 편하게 삽니다. 정부에서 이 돈을 몰수하지 않는 건 주가조작을 하라는 말 아닌가요?"

주가조작에 대해 증권가에 팽배한 인식이다. 실제 주가조작 범죄자들은 주가조작 혐의을 벗지 못하더라도 부당이득 환수만 당하지 않으면 성공으로 여기는 게 현실이다. 정부가 자본시장법상 부당이득산정체계 개정에 나선 것은 주가조작 범죄자의 수익을 제대로 환수하지 못할 경우 허술한 법으로 인해 범죄자 양산을 부추기고 자본시장의 신뢰를 해치는 상황을 더 이상은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13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법원이 주가조작 범죄에 대해 '부당이득금 산정 불가'를 이유로 추징금 0원을 선고하는 사례는 최근 더욱 늘고 있다. 증권범죄를 전담하는 서울남부지검에 따르면 시세 조종 등 혐의로 기소되었다가 부당이득 산정불가 사유로 무죄를 선고받은 사건은 2014년 1건에서 2015년 11건, 2016년 12건을 기록한 뒤 지난해에는 21건으로 2배가량 증가했다. 올해도 약 20건의 유사판결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문제는 기본적으로 부당이득금 산정은 어려운 데 반해 법규정은 구체적이지 못한 데 기인한다. 그간 검찰은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 등과 연계해 부당이득액 산정방법으로 단순차액방식과 이벤트스터디 방식을 써왔다. 위반행위로 인한 총수입에서 총비용을 빼는 방식과 시세조종, 허위공시 등의 주가조작사건이 없었을 경우 주가를 예측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법원 입장에서는 당국의 자의적인 추정액을 정확한 인과관계 없이 인용해주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명확한 산식이 없는 상황에서 추정금액을 인용해 죄를 물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올해 바이오주 주가조작사건이 발생했을 때 부당이득금을 산정할 경우 금감원의 테마감리이슈,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의혹, 대형 제약사의 연구임상결과 등으로 인한 개인·기관·외국인의 투자의향 변화는 제외해야 한다. 해당 범죄와는 독립적인 사건이라는 이유다. 그런데 이런 경우 주가 10원, 100원 단위까지 정확하게 계산해내기는 어렵다.

범죄자들은 법의 허점을 활용해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금액산정에서 크게 반발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실제 경제사건을 전문으로 하는 한 변호사는 "주가조작사건은 피의자가 유무죄를 인정하는 게 핵심이 아니라 부당이득금이나 피해액 산정을 방해하는 게 변론의 핵심"이라며 "여러 가지 주가변수를 감안해 당국의 계산이 잘못됐다는 시각만 확실하게 할 경우 가장 중요한 추징금이 사라지면서 높은 성공보수를 얻게 된다"고 귀띔했다. 그는 이어 "범죄자들이 재판에서 잘못을 빠르게 인정하고 반성하는 식으로 형량을 줄이면서도, 부당이득액 추정치는 너무 크다는 식의 억울함을 주장해 형기는 줄이고 돈을 택하는 방식"이라고 전했다.

결국 법원은 지난 5월 로케트전기 사건처럼 많은 증권 범죄에 대해 징역형이라는 형벌을 내리면서도 부당이득금은 '0'원이라는 판결을 내리고 있다. 올해에도 지난 2월 장병권 전 홈캐스트 회장 등이 이른바 '황우석 테마주'와 관련한 거짓 정보를 시장에 흘려 주가를 올린 뒤 251억원을 챙긴 혐의로 기소된 사건 1심에서 같은 결과가 나왔다. 또 2016년 주가조작으로 41억원을 챙긴 혐의로 기소된 '디웍스 글로벌' 사건, 2015년 시세 조종으로 85억원을 챙긴 혐의로 기소된 '위지트 사건'에서도 법원은 "주가조작이 있었던 것은 맞지만 이익금을 정확히 산정할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과 검찰은 자본시장법 내에 부당이득금을 산정하는 공식을 법령에 넣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아울러 '산정이 어려울 경우 필요시 추정액도 가능하다'는 문구를 넣어 범죄수익환수안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을 계획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여러 방안을 통해 주가조작 범죄자가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을 만들지 않는 게 최선"이라며 "산식을 법에 넣는 방법, 쉽게 수익을 추정할 수 있고 또 집행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검토해 법원에서 비상식적인 판결이 나오지 않도록 법조항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국회에서는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부당이득금 산정 규정을 명문화하는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박 의원 발의안에 따르면, 부당이득액 산정방식은 기본적으로 그 위반행위를 통하여 이루어진 거래로 발생한 총수입에서 그 거래를 위한 총비용을 공제한 차액으로 하되 유형별로 대통령령에서 산정방식을 정하도록 하였다. 박 의원은 "자본시장법에 직접 부당이득 산정기준을 규정함으로써 법적 분쟁의 여지를 줄이고 범죄행위에 상응하는 형사처벌과 함께 철저한 범죄수익 박탈로 불공정거래행위와 시장질서교란행위를 근절하는 효과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다만 정부는 "아직 정부안이 확정되지는 않은 만큼 박 의원 안을 참고해 더 좋은 대안이 있는지 등을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입법화하는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진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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