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0 (월)

미식의 도시 '홍콩'에는 밤마다 '무지개'가 뜬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12월의 오후 5시. 현지인 반, 관광객 반이라는 홍콩에서는 사람들의 발길이 분주해진다. 젊은 연인부터 아이를 동반한 젊은 부부, 노년의 부부까지 모두가 들뜬 표정으로 바다 가까이 발걸음을 옮긴다. 일몰을 보기 위해서다.

해가 바다에 발을 담그며 하늘이 연분홍빛을 띄기 시작하면 잠시 정적이 흐른다. 그저 조용히 수평선을 바라볼 뿐이다. 침묵도 잠시, 하늘이 더 거세게 타오르고 선홍빛으로 바뀌면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온다. 다들 이 순간을 추억으로 간직하기 위해 부지런히 사진을 찍는다. 그러다 옆사람의 손을 잡는다.

조선일보

12월 홍콩의 밤은 일찍 시작된다. 오후 4시가 되면 관광객들은 일몰을 보기 위해 바다 근처 전망대로 올라간다./홍콩관광청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오후 6시, 해가 자취를 감추면 홍콩은 더 화려해진다. 고개를 살짝 돌리면 홍콩 센트럴에 빼곡히 차 있는 마천루들이 앞 다퉈 야경을 장식하고 있다. 두 팔 벌리고 환하게 웃는 눈사람을 네온사인으로 비추는 곳이 있는가 하면, 크리스마스 트리나 리스, 캔디 지팡이, 산타클로스 등 갖가지 오너먼트를 알록달록한 불빛으로 자랑하는 곳도 있다.

쉴 틈 없는 홍콩의 밤… 크리스마스의 향연


홍콩의 밤에는 무지개가 뜬다. 홍콩의 마천루에서 하늘을 향해 불꽃과 레이저 불빛을 쏘아댄다. 2004년부터 15년째 매일 저녁 선보이는 '심포니 오브 라이트(Symphony of Light)'쇼. 붉은 불꽃과 노란 불꽃, 하얀색, 초록색, 파란색 레이저 불빛이 어우러지며 마치 밤 무지개를 보는 듯하다. 12월 31일 새해맞이할 때는 더 화려하고 웅장한 불꽃놀이와 보다 강렬한 레이저 불빛을 볼 수 있다.거리는 벌써 크리스마스 캐럴로 가득하다. 관광객이라면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사진 스팟이 즐비하다. HSBC은행과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등 홍콩의 대표 마천루에 둘러싸인 '황후상 광장(Statue Square)'에는 길이 10m는 족히 되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있다. 홍콩 최대 쇼핑몰 '하버시티' 근처 선착장에는 10여개의 크리스마스 트리가 줄지어 서있는 계단길이 있다. 과거 해양경찰청을 개조해 만들었다는 쇼핑몰 '1881 헤리티지'에는 크리스마스 트리와 함께 왕이 된 듯한 기분을 낼 수 있는 '왕좌'가 있다.
조선일보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① 하버시티 대관람차 앞에는 철골을 삼각, 사각형으로 이어붙여 만든 이 크리스마스 트리가 있다. 파랑, 초록, 노랑 등 현란한 불빛을 내며 신나는 일렉트로닉댄스뮤직(EDM)도 함께 선보인다. (홍콩관광청 제공) ② 홍콩은 밤 8시가 되면 10여분 동안 빌딩들이 레이저 불빛과 불꽃을 뿜어대는 '심포니 오브 라이트(Symphony of Light)'쇼를 한다. /박현익 기자 ③ 홍콩 쇼핑몰 '하버시티' 근처 선착장에는 10여개의 크리스마스 트리가 줄지어 서있는 계단길이 있다. /박현익 기자 ④ HSBC은행과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등 마천루에 둘러싸인 '황후상 광장'에는 길이 10m는 족히 넘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있다. /박현익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보다 이색적인 것을 원한다면 하버시티 대관람차 앞에 있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찾아가자. 철골을 삼각, 사각형으로 이어붙여 만든 이 트리 앞에 서면 파랑, 초록, 노랑 등 현란한 불빛을 보며 신나는 일렉트로닉댄스뮤직(EDM)을 들을 수 있다.

한겨울 밤의 트리 감상에 추위를 떠올릴 필요는 없다. 12월의 홍콩은 이제 막 여름이 끝난 한국의 가을 날씨다. 낮 기온은 25도를 훌쩍 넘기기도 한다. 면티에 가벼운 점퍼 차림으로 홍콩 거리를 누비면 등에 땀이 흐를 정도다. 덥다고 짧은 반바지에 나시만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종종 눈에 띈다. 가끔 한파가 몰아닥치기도 한다는데 ‘홍콩의 한파’는 영상 10도 수준이다. 어쩌다 현지인들이 길거리에서 자다가 동사(凍死)한다는데, 영하 10도 밑으로 떨어지는 한파도 견뎌내는 한국인에게는 끄떡 없는 날씨다.

감옥이 관광명소로… 홍콩인도 찾는 일상공간

오래된 도시 홍콩은 끊임없이 새로운 볼거리가 생겨난다. 1951년 홍콩 경찰의 기숙사·사택으로 썼던 ‘PMQ(Police Married Quarters)’는 2009년 복합문화공간으로 바꼈다. 영국이 홍콩을 통치하던 시절 만들었던 탄약고는 비영리재단 아시아소사이어티가 2012년 박물관, 극장, 미술관으로 리모델링했다.

조선일보

▲ 지난 5월 말 문을 연 타이퀀은 과거 영국이 경찰서, 감옥, 법원 등을 한 곳에 모아뒀던 공간이다. 사진은 타이퀀 전경을 담은 그. 가장 맨 앞 2층짜리 건물이 경찰서, 바로 뒤 맞은 편에 있는 4층 건물이 막사다. 막사 뒤편으로는 감옥들이 줄지어 있다. /박현익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요즘 가장 ‘핫’한 공간은 지난 5월 말 문을 연 타이퀀(Tai Kwun)이다. 광둥어로 ‘큰 집’을 뜻하는 타이퀀은 과거 영국이 경찰서, 감옥, 법원, 이민국 등을 한 곳에 모아뒀던 공간이다. 홍콩 구도심 헐리우드 로드(Hollywood Road) 동쪽에 있다. 1995년 문화재로 지정됐고, 10여년간의 리모델링을 거쳐 지금의 모습이 됐다. 21개 동으로 구성된 타이퀀은 각 건물들이 10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중국과 영국 분위기가 혼재된 듯한 100년 전 양식으로 지어진 타이퀀 건물들과 그 뒤편으로 보이는 현대식 빌딩이 어우러져 주는 느낌은 오묘하면서도 신선하다.

헐리우드 로드를 통해 타이퀀 정문으로 들어서면 1919년 지어진 2층짜리 경찰서가 맨 처음 보인다. 경찰서 뒤로는 타이퀀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 하나인 막사가 마주보고 있다. 1864년 세워진 4층 건물로 주로 경찰들이 숙식을 해결하거나 사무 공간으로 활용한 곳이다. 이제는 모두 레스토랑, 카페, 바, 기념품 가게 등이 들어서 있다. 두 건물이 마주하는 공간 사이에는 학교 운동장만한 광장이 있다. 홍콩 현지인들도 들어와 잠시 앉아 이야기를 나누거나 산책로처럼 거니는 등 공간으로 활용한다. 정장 입은 직장인, 교복 입은 학생들이 더러 보인다. 타이퀀은 입장료 없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다.

조선일보

▲타이퀀 막사(왼쪽)와 경찰서. 두 건물은 가운데 광장을 놓고 서로 마주보고 있다. 경찰서 뒤편으로는 홍콩의 화려한 마천루들이 둘러싸고 있다. /박현익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막사 가운데로 뚫린 통로를 따라 들어가면 타이퀀의 ‘놀이터’가 펼쳐진다. 알파벳으로 구분한 감옥들이 A~F동까지 빽빽이 들어서 있다. 이곳 죄수들이 썼던 수용실과 화장실, 세면장 등을 생생하게 재현해 놨다. 그 시절의 분위기를 직접 느끼고 싶다면 수용실 안으로 들어가 쇠창살 문을 닫고 잠시 갇혀있어도 된다.

문화재라서 함부로 손대면 안되나 싶지만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감상할 수 있다. 당시 생활상이나 면회실의 분위기를 영상으로 전시한 곳도 있다. 면회실 영상 속에서는 한 여성이 칸막이를 사이에 남성과 손을 맞대며 무언가 간절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계속해서 타이퀀을 가로질러 들어가면 가장 맨 뒤 끝에 F동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머그샷을 찍을 수 있다. 하얀 배경에 50cm 간격으로 검은색 줄이 그어져 있는 조형물이 벽 끝에 자리잡고 있다.

조선일보

▲타이퀀 감옥에서는 당시 생활상이나 면회실의 분위기를 영상으로 전시한 곳도 있다. 면회실 영상 속에서는 한 여성이 칸막이를 사이에 남성과 손을 맞대며 무언가 간절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박현익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타이퀀 바깥에 나와 헐리우드 로드를 거닐면 멋스러운 그래피티(graffiti·벽에 그린 그림)가 줄지어 있다. 이 앞에서 사진을 찍으면 제법 분위기 있는 연출도 할 수 있다. 헐리우드 로드 서쪽에는 다닥다닥 붙어있는 홍콩 건물들을 묘사한 ‘덩라우 벽화’가 있다. 이 밖에도 홍콩 구도심 전체가 전시장이라고 해도 될만큼 홍콩의 생동감을 느낄 수 있는 그래피티가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다.

조선일보

타이퀀 바깥으로 나와 헐리우드 로드(HollyWood Road) 서쪽으로 걸으면 다닥다닥 붙은 홍콩의 건물들을 묘사한 ‘덩라우 벽화’가 있다. /박현익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광둥 요리 베이스에 동서양 퓨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홍콩 요리



홍콩에서는 '먹방'을 찍어야 한다. 중국 4대 요리 중 하나인 광둥 요리에 뿌리를 둔 홍콩 요리로 시작하겠지만, 세계적인 셰프들의 레스토랑도 깜빡해서는 안된다.


조선일보

"네발 달린 것 중에 책걸상, 날개 달린 것 중에 비행기 빼고 다 먹는다"는 광둥 요리를 몸소 체험해 보고 싶다면 타이퀀의 '올드 베일리(Old Bailey)' 레스토랑 먼저 챙겨보자.

올드 베일리의 시그니처(대표 요리)는 비둘기 요리. 음식은 새장을 덮어 씌운 접시 위에 놓여 나온다. 새장을 열면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오며 까무잡잡하게 그을린 비둘기가 모습을 드러낸다. 얼핏 보면 바베큐 통닭같다. 주변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이파리들이 심상치 않다. 한 점 집어 입에 넣으면 껍질의 식감이 바삭하고, 살코기는 부드럽다. 살코기에서 나는 비둘기 특유의 향은 호, 불호가 갈리겠다. 간은 달고 짭짤하다. 얼핏 굴소스 맛과 비슷하다. 비둘기 구이의 특색은 다 먹고 났을 때 느낄 수 있다. 롱징녹차와 함께 훈제했다는 비둘기 요리(Longjing Tea-smoked Pigeon)를 다 씹고 목 뒤로 넘기면 입 안에 고소한 롱진 향이 가득 맴돈다. 향긋한 오크향과 비슷하다. 달면서도 뒤끝은 고소한 것이 제법 중독성이 강하다.

전 세계 입맛을 융화했다는 홍콩 요리지만 한국인 입맛에는 다소 짜고 느끼할 수 있다.

보다 한국인 입맛에 들어맞는 홍콩 요리를 맛보고 싶다면 센트럴에 있는 '모트32(Mott 32)'가 제격이다. ‘정용진 호텔’로 유명한 레스케이프 호텔의 중식당 ‘팔레드신’도 이곳에서 노하우를 전수받았다고 한다. 다진 마늘, 식초, 소금으로 만든 오이 절임으로 전채를 시작해본다. 어떤 중국 요리도 먹을 수 있겠다는 의욕이 생긴다.

이곳 딤섬은 홍콩에 산재한 여느 딤섬과는 다르다. 그 중에 '트러플 슈마이'는 가장 사랑받는 메뉴다. 딤섬에 메추리알이 들어간다는 것부터 평범하지 않다. 여기에 부드럽기로 유명한 이베리코 돼지고기가 만두피를 채우고 있다. 입에서 살살 녹는 식감과 코끝에 풍기는 트러플 향이 주는 감동의 여운은 홍콩 여행 내내 잊혀지지 않는다.

뭔가 이색 맛집을 가고 싶다면 미슐랭 가이드 원스타를 받은 스웨덴 레스토랑 '플라잉 엘크(The Flying ELK)'도 좋겠다. 스웨덴에서 미슐랭 3스타 식당을 운영 중인 뵨 프렌즌(Björn Frantzén)이 자매 식당으로 오픈한 곳이다. 여기서 가장 '스웨덴스럽다'고 할 수 있는 메뉴 중 하나인 그라블랙스(gravlax). 생김새는 볼품 없지만 한 번 맛보기 시작하면 게 눈 감추듯 그릇을 비우게 만드는 음식이다. 그라블랙스는 스웨덴 특산품으로 연어를 소금, 설탕, 딜 등과 함께 절여 만든 식품이다. 플라잉 엘크의 그라블랙스는 비린 맛 없이 시원하고 달달한 감칠맛이 난다. 연어 위에 얹은 딜과 곁들이면, 상큼한 맛이 폭발한다.

[홍콩=박현익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